‘투쟁 9년째’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 농성 현장

국내에서 수많은 통기타와 전자기타를 생산해온 콜트‧콜텍 사업장은 노동 탄압으로 악명이 높았다. 노동자들은 100만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하루 15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악기가 통기타 콜트이고 전자기타 콜텍이다. 지난 2007년 인천 부평공장의 콜트와 대전공장의 콜텍은 흑자를 기록하고도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해고에 반발한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9년째 경기도 부평 공장 등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사측은 지난 2009년 부평 공장에 들어가는 전기와 물을 끊어버리기도 했다. 이후 노동자들은 지난해 2월까지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공급하고 겨울엔 연탄을 때며 추위와 싸웠다. 그러다 지난해 3월 공장에서도 쫓겨난 이들 노동자들은 공장 건너편 거리에서 한파와 싸우고 있다. 올해 6월 콜텍 해고 노동자들에게 대법원은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려 노동계는 또 다시 쓴 잔을 마셔야 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버티는 이유는 자신들이 돌아가야 할 곳이 바로 공장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 지난해 겨울 경기도 부평의 콜트 공장 풍경



이제는 그만하라고?

부평공장 앞 농성장에는 콜트.콜텍 노동자 5명이 상주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낮 시간대엔 주로 방종운 콜트지회장과 이인근 콜텍지회장이 이곳을 지킨다. 이들은 특별한 행사가 없는 한 농성장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연이은 한파가 몰아치고 있지만 이들은 견딜 만하다고 했다. 천막농성장엔 연탄난로와 두터운 이불이 전부다. 이 지회장은 “외풍이 심해도 이 정도면 감지덕지”라고 멋쩍게 웃었다.

한 때 노동자가 자살하거나 사망한 쌍용차 사태와 관련 이 지회장은 “요 며칠 추위가 심해 가족들로부터 연락을 자주 받았다”며 “노동자들이 자살하거나 사망하면서 가족들 걱정이 크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춥고 힘들어도 콜트‧콜텍 노동자들에겐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며 “우리 쪽 사람들은 밝고 건강하게 투쟁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했다.

콜트 노동자들의 집은 모두 인천. 반면 콜텍 노동자들의 집은 대전 등지이다. 콜텍 노동자들은 가족들 얼굴 보기가 힘들다. 이인근 지회장은 “어쩌다 한번 차비가 생기면 내려간다. 고향엘 가도 사실 부모님께 면목이 없다”며 “부모님도 아내도 자식들도 이제 그만하면 되지 않았느냐고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농성을 멈출 수 없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 이 지회장은 “9년을 버텼다. 그만두려면 벌써 그만뒀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우리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방종운 지회장은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재벌그룹의 단위 사업장과는 차원이 다른 탄압을 받고 있다”며 “특히 연세 드신 여성노동자들에겐 100만원도 채 안 되는 월급을 주며 15시간씩 부려먹고 잘라버렸다. 그리고 사장은 거기에 반대하는 노조를 부수기 위해 온갖 만행을 자행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어 “대부분의 사업장에선 사주와 노조가 갈등관계를 유지하지면서도 사주가 노동자들에게 최소한 인간적인 예우는 갖춘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곳에선 70년대 청계천이나 산업사회 초기 미국에서나 벌어질만한 야만적인 탄압이 자행돼 왔다”고 꼬집었다.





자살방지책 있어야

콜트‧콜텍은 1973년 서울 성수동에서 자본금 200만원으로 시작한 이래 성장을 거듭, 지금은 6개의 법인으로 확장됐다. 세계 기타 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지난 10여 년 동안의 누적 흑자액만도 1000억원에 육박한다.

회사가 이렇게 성장하게 된 것은 열악한 근무조건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기타를 만들었던 노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인근 지회장은 “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대변되는 사양산업인 목재산업에서 20년이 넘도록 분진과 페인트 냄새에 파묻혀 살아왔다”며 “그야말로 손에 지문이 다 지워질 정도로 일했다”고 했다.

그러나 회사는 어느 날 갑자기 해외에 공장을 만든 뒤 모든 제품을 해외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국내공장엔 더 이상의 주문이 없다는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300여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했고, 국내에 있는 공장은 모두 폐쇄했다.

노조는 이러한 현실에 맞서 법정투쟁을 비롯 공장 앞 천막농성, 15만 4000볼트가 흐르는 송전탑 고공 단식농성 등 목숨을 건 투쟁을 벌여왔다. 박영호 사장 자택, 낙원상가, 국회, 노동청 등에서 항의 집회와 문화제 등을 열어 실태를 알리기 위해 애썼고 미국, 일본, 독일의 악기 박람회 등 6회에 이르는 해외 원정투쟁까지 다녀왔다. 투쟁 과정에서 한 조합원이 분신을 하는 극단의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9년이 다 돼가는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의 연대로 꿋꿋하게 투쟁을 이어 나가고 있다. 시민사회의 연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방 지회장은 “매달 마지막 수요일 밤이 되면 서울 홍대 ‘클럽 빵’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이런 연대가 노동자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며 “일종의 자살방지책이 되지도 않겠느냐”고 했다.

‘클럽 빵’에선 홍대 인디밴드들과 기타노동자들의 연주가 이어진다. 11월 25일에도 행사는 열린다. 방 지회장은 “행사장이 딱딱한 곳이 아니라 즐겁고 신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열렸는데, 몇 안 되는 우리 노동자들에게 큰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생계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올해 2명의 해고노동자들이 생계 문제로 농성장을 떠났다. 이 지회장은 “올해 1월과 6월 노조원들이 농성장을 떠났다. 생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 이인근 지회장



조합원 폭행 등 탄압으로 일관

2012년 고등법원에서는 콜트 해고자들과 관련 부당한 정리해고라고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콜트 악기는 2006년 처음으로 당기순손실이 발생했을 뿐 꾸준히 당기순이익을 유지하고 있었다”며 “유동성․부채 비율 등 당시 재무구조를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더라도 해고할 정도로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콜트 사측는 2006년 8억 50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자 2007년 4월 부평 공장 노동자들을 한꺼번에 정리해고 했다. 하지만 해고 노동자들은 2006년 이전 10년 동안 콜트 악기가 순이익 누적액이 170억원에 달하는 등 경영상의 문제가 없었다며 행정심판을 냈고, 노동위원회는 이를 부당해고로 판정했다. 사측은 불복 소송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 1심에선 판정을 취소하라며 사측 손을 들어줬으나 항소심은 원고 패소 판결했다.

콜트 공장에 대한 대법원의 부당해고 판결 이후 박영호 사장은 부평 공장 부동산을 타인에게 양도, 해고자들의 복직을 사실상 무산시켰다. 노조가 편법이라며 격렬히 반발했지만, 사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사측은 등촌동 본사 앞에서 1인 시위 중이던 방종운 지회장을 향해 차량을 돌진시키는가 하면 조합사무실, 천막농성장을 침탈하고 조합원을 폭행하는 등 탄압으로 일관했다.

콜텍의 대전 공장 폐업 신고로 2007년 직장을 잃은 이 지회장 등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2012년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대법원은 “정리해고에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위법하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는 2012년 노동계에서 ‘최악의 판결’로 불리기도 했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정리해고 판례를 더 나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지회장은 “정리해고라는 ‘지옥의 문’을 대법원이 연 것”이라고 평가했다.

콜텍은 2006년 7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는 등 2000년부터 상당한 이익을 내왔다. 부채비율도 동종업계 평균부채(2006년 168.35%)에 못 미치는 30% 수준이었다. 2심은 이 같은 사정을 들어 해고가 부당하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상황에 따라서는 기업이 전체적으로 흑자여도 일부 사업부문을 폐쇄하고 정리해고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봤다.

고법으로 돌아간 콜텍 재판은 올해 6월 12일 다시 대법 판결을 기다렸다. 결과는 참담했다. 대법에선 “미래에 다가올 경영위기에 대한 정리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 내렸다. 콜텍 법정 싸움은 끝났다. 달라진 점은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콜트․콜텍 기타 불매운동과 문화운동 차원에서 투쟁이다.

이 지회장은 “노동자들은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콜트‧콜텍 공장이 우리 회사라고 믿고 있었다”며 “그런데 법원 판결에서 봐왔듯 요즘은 이런 믿음이 무너진 게 사실”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과거 시민사회에서 불매운동 제안을 한 적이 있지만, 우리들은 이 공장이 우리 회사라고 믿기에 불매운동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며 “하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어, 지난해부터 불매 운동에 돌입했다. 그것은 최후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최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 대한 대법원의 ‘해고 정당’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선 “콜트․콜텍 판결로 사법부가 포석을 깔아놓은 게 아니겠느냐”며 “콜트․콜텍과 같은 상대적으로 작은 사업장에 대해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후 노동계 눈치를 살폈다가 별 반응이 없으니 쌍용차 해고자들에게도 그런 판결을 내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결에 착찹하다는 이 지회장. 이 지회장은 “정리해고 요건을 완전히 무시한 판결인데 사실상 기업의 긴박한 경영상의 사유라기보단 자본가들이 배불려 주기 위한 판결이었다”며 “우리 문제도 문제지만 정리해고를 앞으로 확산시키지 못하도록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연대 투쟁하는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거리에서 9년째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고 있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향후 어떤 싸움을 이어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