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기획 : 장기투쟁 농성장을 찾아서> ‘강의 박탈’ 성균관대 류승완 씨


한국사회에서 노동 문제는 오래된,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현안이다. 열악한 환경의 근로현장에서 일하다 부당하게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그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그리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투쟁에 나선다. 그 형태도 다양하다. 사태를 알리기 위해 공장 굴뚝 위를 오르는 등 목숨을 건 농성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여전히 남의 일이라는 듯 무심하기만 하다. <위클리서울>은 혹한의 날씨 속 극한의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노오湄湧� 농성장을 찾고 있다. 이번에는 5년째 성균관대 연구 강사직을 놓고 투쟁 중인 철학박사 류승완 씨를 만나봤다.   







“삼성이 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학풍이 완전히 바뀌었다. 대자보도 함부로 못부치게 한다. 이게 대학인가. ‘김일성대학’과 뭐가 다른가.”

류승완(47. 철학박사) 씨는 ‘강의 박탈’에 맞서 2011년부터 2013년 7월까지 성균관대 본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그 결과 그해 7월 성균관대 동양철학·문화연구소 연구원과 강사로 복직됐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언론과 인터뷰에서 학교와 삼성을 또 다시 비판한 일이 문제가 돼 지난해 9월 연구원직과 강사직을 모두 잃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1인 시위가 아닌 법정투쟁 중이다.

“삼성이란 기업의 이미지 훼손, 품위 유지 위반 등으로 해고됐다. 이제는 시위로는 안 되겠다 싶어 법정으로 갔다.재판중인 상황에서 원고인 제가 시위를 하면 불리할 것이다. 일단은 재판에만 충실하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1심에선 승소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설사 최종 승소한다고 할지라도 다시 강의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실제 그들의 목적은 강의를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기더라도 연구원 자격, 또는 강의자체를 아예 안 줄 수 있다. 그럴 경우 다시 1인 시위를 할 수밖에 없다.”

현재 기득권층은 건들지 마라?

류 씨는 학부때부터 박사과정까지 25년이 넘는 세월을 이 대학에서 보냈다. 사건의 발단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정됐던 ‘동양사상입문’ 강의가 돌연 취소된 것이다. 2010년 1학기에 전공과목인 ‘중국철학사상사’를 강의했고, 1년간 베이징에서 ‘연수 유학’을 마친 뒤인 2011년 2학기부터 강의를 맡을 예정이었다. 그는 강의계획서를 학내 학사과정 사이트에 입력하라는 학과 사무실의 통보와, 강의배정 안내 메일을 통해 강의가 확정된 것으로 판단하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이틀 뒤 강의가 돌연 취소됐다는 소식을 조교로부터 전해 들어야 했다. 지도교수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대학본부에서 뺐다”는 것뿐이었다. 학교의 이 같은 조치에 류 씨는 “현실과 무관한 사회주의 이론을 연구하는 것은 용납이 되는데, 그 이론에 현재 기득권자들을 건드리는 내용까지 포함돼 문제가 된 것"이라고 했다.

진보적 학자들 도태

류 씨는 한국의 사회주의자들을 연구해왔다. 친일파와 해방 이후 한국의 유학자들 등 기득권자들이 대상이 됐다. 하지만 학위를 받는 것부터 어려움이 따랐다. 다 써놓은 박사논문을 수년간 손에 쥐고 다닌 끝에 42세가 되어서야 통과할 수 있었다.    

"수년간 논문이 통과되지 못했다. 사회주의 자체를 연구하는 게 아니었는데, 사회주의는 철학이 아니라며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소리를 질러대기까지 했다.” 

그는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삼성이 성대를 인수하면서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삼성에 인수된 뒤 학교 측은 지난 15년간 진보적인 학자들은 거의 다 도태시켰다고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선 교수들을 수시로 감시한 사실이 공공연하게 드러났음에도 은폐되기 일쑤였다. 제가 연구하는 분야가 한국사상가들이었다. 정치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박헌영, 신남철, 박치우, 김태준 같은 분들이 대상이었다. 그 사람들이 생각했던 사회철학, 정치철학이 무엇인지 연구했다. 물론 남로당과 관련된 연구가 주를 이뤘다. 이런 사람들 사상을 끄집어내니까 기존 학계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친일파 혹은 그 2세대들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문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지만…

류 씨가 자신의 연구과제를 정리한 책 ‘이념형 사회주의’는 2011년 문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 아이러니하게도 학내 유학자들은 그의 업적을 무시하는 실정이고, 국정원에서는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사안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힘들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버티고 있다는 그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학생들도 힘이 돼준다. ‘프로젝트 류’라는 류 씨를 응원하는 성대 학생들의 모임이 꾸려져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지금까지 음성적으로 도와준 학생들에게 고맙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자신들의 이름이 공개되면 학교에서도 바로 불이익 주는데도 꾸준히 돕고 있다. 그런 도움 없이 제가  혼자서 어떻게 버티겠는가.”

1심에서 이겼지만 재판부의 월급과 이자지급 명령은 아직 이행되지 않고 있다. 다른 대학의 강의를 나가면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제가 강의를 하는 다른 대학에서도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었다. 학생들이 강의를 왜 못하게 하느냐며 학교 측과 싸운 끝에 계속할 수 있었다.”   

정치권엔 기대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말의 희망도 있다. 대학 풍토가 조금씩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김대중 정부도 사립학교법은 전혀 개정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오히려 사학이 등록금으로 주식투자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이건 위법이다. 이후 성대나 고려대가 주식에 투자했다가 깡통 차지 않았나. 이게 다 민주정부라고 했던 이들이 자행한 불법이었다. 희망적인 건 학생들이 스스로 깨닫고 등록금을 요구하고, 시간강사 문제에 대해 함께 싸워준다는 사실이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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