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노동절대회 이후 세월호 유가족·시민들 1박2일 농성

지난 1일 민주노총 주최로 세계노동절대회가 열렸다. 서울시청광장은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을 포함해 약 5만여명(경찰 추산 2만2000명)으로 발 딛을 틈이 없었다. 시청광장에서 다 수용할 수 없어 플라자 호텔과 인근 도로까지 집회 참가자들이 점거했다. 이들은 최저임금 1만원,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 공적연금 강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요구했다.

평화롭게 집회를 마친 이들은 행진을 했다. 시청광장을 출발한 시위대는 사전에 신고한 경로대로 을지로2가, 종로2가를 거쳐 보신각 쪽으로 행진했다. 오후 4시 40분께 선두에 서던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경로를 바꿔 낙원상가를 거쳐 창덕궁까지 행진했다.

광화문과 종로, 안국동 일대는 골목마다 이미 경찰 병력이 배치돼 있었다. 차벽도 설치됐다. ‘원칙적으로 차벽을 설치하지 않겠다’던 경찰은 행진을 하던 민주노총 일부대오가 사전 신고한 경로를 벗어나자 차벽을 설치하고 시위대와 대치했다. 경찰은 처음에는 일대의 시민들의 통행을 허락했지만, 이후 굳게 닫았다. 시민들은 우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종로구 계동 현대빌딩 앞 시위대는 부부젤라 등을 불면서 항의했다. 또한 차벽 틈을 막고 있는 경찰 병력을 힘으로 밀어보려 했다. 일부는 담을 넘어가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특별한 부상자나 연행자는 없었다. 시위대는 50여분 뒤 스스로 발걸음을 돌려세웠다.

비슷한 시각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종각 사거리 공평빌딩 앞에서 조계사 쪽으로 행진을 시도했다. 경찰은 차벽을 설치해 이들을 막아섰다. 시위대들은 징, 장구 등을 치며 막아선 경찰에 항의했다. 경찰 버스를 넘어뜨리기 위해 바퀴에 노끈을 묶기도 했다. 대치상황에서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캡사이신을 뿌렸다.

시민들의 통행은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오토바이를 끌고 지나가려던 배달대행 업체 직원이 20여분 간 발이 묶이는 상황도 벌어졌다. 시위대는 “배달원이 지나가는 동안 물리력을 가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경찰은 요지부동이었다. 마침 아이를 안고 지나가는 시민의 통행이 허용되자 배달원은 “나도 어디서 갓난 아이 하나 데리고 와야하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이 배달원은 오토바이를 세워둔 채 피자 여섯 판을 들고 걸어갔다.

시위대는 종각에서 정리 집회를 했다. 시위대의 일부는 세월호 유가족 등 시민들이 대치하고 있는 안국사거리 쪽으로 향했다. 유가족 150여 명과 민주노총 조합원 등 5000여명(경찰 추산 1300명)은 안국사거리에서 경찰병력과 대치했다. 이들은 ‘시행령을 폐기하라’, ‘진실을 인양하라’, ‘폭력경찰 물러가라’, ‘박근혜는 퇴진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선두에 선 시위대는 막고 있는 경찰 병력을 물리력으로 뚫어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캡사이신을 뿌리며 강경 대응했다. 얼굴 등에 캡사이신을 뒤집어 쓴 시위대는 후방으로 빠지고, 그 자리를 다른 시민들이 메우는 일이 반복됐다. 캡사이신을 맞은 시위대는 괴로움을 호소했다. 시민들은 인근 편의점 등에서 생수를 구입해 세수를 할 수 있게 제공했다.

대치가 장기화되자 경찰은 더욱 강경하게 대응했다. 경찰은 “살수차를 사용하겠다”고 경고했다. “기자들, 어린이, 장애인 및 시민들은 안전지대로 이동하길 바란다”는 안내방송도 했다. 세 대의 살수차가 동원됐다. 오후 10시쯤부터는 실제로 살수차를 사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먼저 물대포를 맞은 것은 기자들이었다. 기자들은 ‘안전지대’로 이동하라는 안내에 차벽 앞에 바싹 붙었다. 몇몇 기자들은 취재를 위해 경찰 버스 위에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경찰은 기자들이 버스 위에서 취재하고 있는 것을 인지한 상황에서 물대포를 쐈다.

기자들이 물대포를 피해 자리를 이동하자 경찰은 본격적으로 물대포를 쐈다. 세 대의 살수차를 통해 시위대를 향해 전방위적으로 물대포를 쐈다. 시민들은 들고 있던 피켓, 우산 등으로 막아섰지만 물대포의 힘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막아서는 시민을 향해서는 어김없이 집중적인 물세례가 쏟아졌다. 물대포를 쏴도 시민들은 해산하지 않았다.

경찰은 물대포에 최루액을 섞었다. 처음에는 매캐한 공기에 목이 따가운 정도였다. 하지만 발포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최루액의 농도는 점점 높아졌다. 50미터 떨어진 후방을 지키고 있던 경찰 병력까지도 연신 기침을 해댈 정도였다.

현장은 아비규환이 됐다. 근방의 모든 시민들이 기침을 하고, 콧물을 흘리는 등 화생방 훈련장을 방불케 했다. 구토를 하는 시민도 보였다. 일부는 호흡 곤란 등을 호소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방송으로 어린이들은 ‘안전지대’로 이동하라고 이야기 했지만 인근에 안전지대는 없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경찰의 대치는 2일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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