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우리말 달인’ 엄민용의 ‘우리말 나들이’

 

문상을 가서 상주에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머뭇거리다가 그냥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을 생각 없이 전한 분이 더러 있을 겁니다. 그중에는 결례의 말도 있겠지요.

문상을 갔을 때 가장 하기 쉬운 말실수는 상제에게 “그나마 호상이라 다행입니다”라며 ‘호상’을 운운하는 것입니다. 호상(好喪)은 “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의 상사(喪事)”를 뜻하는 말로, 대개 화목한 가정을 이끌면서 천수를 다 누린 어르신이 돌아가셨을 때 씁니다.

하지만 이 말은 제3자끼리 “그래도 김 영감님은 호상이야” 따위로 써야지, 상주 등에게 직접 건네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천수를 다 누렸다고 하더라도 부모나 집안 어르신의 죽음을 비통해하지 않을 후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문상을 갔을 때 상주 등에게는 어떤 말을 전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말은 ‘침묵’입니다. 상가에서는 무조건 말을 아껴야 합니다. 말로 슬퍼할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애통해하며, 그것을 얼굴로 보여주면 그만입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어색하다면 ‘얼마나 슬프십니까’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정도로 간단히 전하면 됩니다.

예전에는 부친상을 당한 상제에게는 “대고(大故) 말씀 뭐라 여쭈오리까”로, 모친상을 치르는 상제에게는 “상사 말씀 뭐라 여쭈오리까” 따위로 구분해 썼습니다. 하지만 요즘 이런 말을 하면 상주가 무슨 말인지 몰라 당황해할 것이 뻔합니다. 따라서 이렇게 어려운 한자말을 쓰는 것은 되레 예의에 어긋나는 화법입니다.

다만 부모의 상을 당한 사람에게는 “얼마나 망극하십니까” 정도로 ‘망극’을 쓸 수 있습니다. 원래부터 ‘망극(罔極)’은 부모나 임금에게 상서롭지 못한 있이 생겨 지극히 슬플 때 쓰는 말입니다. 따라서 배우자를 잃은 사람이나 형제자매를 먼저 떠나보낸 사람에게는 ‘망극’을 써서는 안 됩니다.

문상을 갈 때는 부조를 하게 됩니다. 이때 조위금 봉투나 그 안의 단자((單子)에 글을 쓸 적에도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우선 봉투에는 앞면 중앙에 ‘부의(賻儀)’를 적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근조(謹弔)’라고 써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요즘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사람들은 더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처럼 한글로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자에는 그렇게 적을 수 있지만 봉투에 문장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국립국어원의 견해입니다.

부조를 하는 사람의 이름은 뒷면 왼쪽 아래에 적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봉투 앞면에 ‘부의’와 ‘이름’을 쓰고 뒷면 왼쪽 아래에 주소를 적기도 하는데요. 원래 주소는 단자에 적어야 합니다. 특히 요즘에는 단자를 쓰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단자를 쓰지 않고 봉투에 돈만 넣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이것 역시 국립국어원의 공식 견해입니다.

단자는 흰 종이에 씁니다. 이때 조심할 것은 단자를 접을 때 조의 문구나 부조하는 금액, 이름 등이 접히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또 부조하는 금액을 ‘금 ○○○○원’이라고 써야지, 마치 영수증을 쓰듯이 ‘일금 ○○○○원정’으로 써서는 안 됩니다. <경향신문 엔터비즈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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