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봅시다> 34년째 원자력발전소 반대 운동 벌이는 삼척주민들

 

벌써 34년째다. 1982년부터 시작된 삼척원자력발전소 문제는 유치 선정과 반대운동, 백지화가 반복되고 있다. 정부의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시한은 한 달 남짓 남았다. 삼척 주민들은 이번에 원전 백지화를 다시 한 번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원전 반대를 넘어 전 세계의 탈핵을 주장하며 싸우는 중이다. 지난달엔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한전과 주민간에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3년 6월 20일 한전은 154kv 송전탑을 추가 건설하기 위해 토지수용 공고문을 보냈다. 이에 반발한 삼척시 원덕읍 옥원1리 주민들은 ‘옥원1리송전탑반대주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주거환경과 재산권을 요구하며 궐기대회와 충북강원개발지사를 항의 방문하는 등 반대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전이 지난달 11일 옥원1리 마을 뒷산 25번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면서 주민과 충돌한 것이다. 자칫 제2의 밀양사태가 재현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번지고 있는 상황.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주민들을 만났다.

 


주혜숙 근덕노곡원전반대투쟁위원회 공동대표는 원전 반대운동을 삼척에서 가장 오래한 사람이다. 1982년 처음 삼척이 원전 예정지역으로 고시 됐을 때부터 반대운동을 해왔다. 당시 그의 나이는 30대 초반이었다. 두 번의 원전 백지화에 기여했다. 하지만 지난 2010년 말부터 원전 반대 운동에 다시 참여해야만 했다.

“처음 삼척의 덕산이란 마을에 원전 유치가 예정됐을 때, 저도 젊었죠. 30대 초반이었습니다. 그때는 주도적으로 나섰던 것은 아니고 반대 활동에 참여하는 수준이었죠. 당시는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원전 반대에 많이 호응을 해줬어요. 경제적인 부분은 다들 힘들었지만 힘을 모았죠. 반대 집회를 열 때면 생업을 포기하고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 기간이 꽤 길어졌어요. 1998년에야 원전예정구역 고시를 해제시켰으니까요.”

17년의 시간이 지나서야 원전 백지화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하지만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됐다.

 

 

“2005년에는 삼척의 원덕이라는 곳에 방폐장이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돌았어요. 제가 사는 마을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에 그런 것이 들어오면 지역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때도 같이 활동을 했죠.”방폐장 건설 역시 주민들과 시의회의 부결로 막아냈다. 그렇게 끝난 것 같았던 삼척원전 문제는 2010년 12월에 다시 일어났다. 김대수 전 시장이 있던 삼척시가 한국수력원자력에 삼척원전 유치신청을 낸 것이다.

신청과정에서도 많은 잡음이 발생했다. 삼척시의회는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조건으로 삼척원전유치 동의안을 처리했다. 하지만 김 전 시장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또한 당시 작성된 원전유치찬성 서명부가 허위작성 의혹에 휩싸이면서 시와 주민 간의 갈등은 심해져갔다. (원전유치찬성 서명부는 조작된 것으로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2014년 10월.)

원전 유치에 동의할 수 없던 삼척의 원전반대 단체들은 김 전 시장 소환을 요구했다. 2012년 10월 31일 주민소환을 위한 투표가 진행됐다. 하지만 투표율이 25.9%로 유권자의 3분의 1을 넘지 못해 주민소환에 실패했다. 주 대표는 투표과정에서 김 전 시장 측의 방해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주민소환을 한 적이 있어요. 투표를 할 때 (김 전 시장 쪽 사람들이) 투표장에 가는 사람을 못 가게 막기도 했죠. 투표장 앞에서 몸을 쓰기도 했습니다. 시골이라 사람이 적어 누가 반대하는지를 알고 있으니까. 그런 사람은 투표장에 못 가게 막았죠.”

또한 반대운동을 벌인 사람들이 생업에 피해를 본 사례도 있다고 한다.

“지역에서 광고물 제작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현수막이나 간단한 광고물을 주로 맡아오셨죠. 그 분이 원전반대운동에 참여했는데, 어느 날 면사무소에서 계약했던 광고물을 해지시켜버렸죠. 이 지역 광고제작회사가 아닌 다른 지역에 맡겨버리더라고요. 그 원인을 반대운동에 참여했기 때문으로 보는 거죠.”

이외에 삼척자원봉사센터의 어느 간부가 해고된 일도 있었다. 시에서 실시한 감사 결과에 따른 해고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시민단체들은 주민소환투표에 참여한 보복성 해고라고 주장했다. 보조금을 지급하는 시가 센터에 압력을 넣었다는 것. 이후 해고당한 간부는 2년의 재판 끝에 승소해 다시 센터로 복직됐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반대 활동에 선뜻 나서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김 전 시장이 있을 당시 유치가 되면 건설업 같은 경우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에 해당 업종 사람들은 반대 활동에 마음이 있어도 나서지 못했죠. 자기 생업에 관련된 일이니까요. 본인의 이익 때문에 찬성한 사람들도 있고요.”

주 대표는 지난 30년 동안의 반대 활동 중 지난 몇 년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시와 주민 간의 의견차이로 많은 불편을 겪었기 때문이다.

“30년 전에 반대 운동을 할 때는 당시 시장도 유치 반대 입장이어서 불편한 것이 없었어요. 하지만 이번 같은 경우엔 김 전 시장 본인이 원전 유치 신청을 한 상황이다 보니 제재가 많았죠. 반대 운동을 홍보하러 가정마다 직접 찾아가기도 해요. 문전박대를 당한 경우도 있죠. 인격적인 모욕도 있었고요. 하지만 내 지방에 그런 것이 들어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핵의 위험성 잊지 말아야…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삼척 주민들의 민심은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삼척원전 유치반대 공약을 앞세운 김양호 현 삼척시장이 62.4%의 득표율로 전 시장을 이기고 당선된 것이다. 이에 힘입어 지난 10월 9일, 원전유치 찬반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유권자의 68%가 투표에 참여했고 그 중 85%가 원전유치 반대에 표를 던졌다. 

이옥분 삼척핵발전소 반대투쟁위원회 홍보실장은 김양호 삼척시장이 당선됐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전직 시장이 있던 상황이라면 주민투표 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겠죠. 이번 시장은 중립적인 위치에서 주민투표를 주도했어요, 선거관리위원회를 조직하고 투표를 실시했죠. 85%가 원전유치 반대 의견을 냈잖아요. 이런 것들은 김양호 시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죠.”

이 홍보실장은 핵의 위험성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많은 피해 사례들이 생겼고, 이를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핵은 너무 위험합니다. 재앙이죠. 사람과 핵은 절대 공존할 수 없어요. 일반적인 사고의 위험성 정도가 아닙니다. 모든 생물을 죽음으로 몰 수 있어요. 핵에 대해 공부하면서 이건 재앙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일본의 후쿠시마 같은 경우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잖아요. 원전사고가 난 이후 그 지역 음식을 먹고 내부피폭이 된 사람들이 생기고 있어요. 지금 후쿠시마에는 갑상선암과 같은 방사능에 의한 병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삼척원전 유치반대로 시작한 운동은 전국적인 탈핵운동으로 발전했다. 성원기 강원대 교수의 도보순례가 시발점이 됐다. 혼자 걸으며 탄핵을 위한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도보순례는 지난 2013년 6월 6일 부산 고리에서 시작됐다. 부산-동해안-춘천-서울-서해안-남해안을 돌아 다시 부산 고리까지 4차례에 걸쳐 1609km를 걸었다. 2014년 6월에는 부산 고리부터 대전까지, 올해 2월에는 대전부터 서울 광화문까지 총 647km를 더 걸었다. 

이 홍보실장은 “성원기 교수님이 부산 고리부터 혼자 걷기 시작하셨죠. 그러다 저희도 함께 걷게 됐고, 참여자도 점점 늘었어요. 그 이후로 성 교수님이 움직이시는 곳에 시민단체나 주민, 활동가들이 모였죠. 모인 자리에서 탈핵과 관련된 강의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반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부산 고리부터 광화문까지 걸으셨죠. 그러면서 전국적인 탈핵 바람이 일어났어요. 우리 지역에 오는 것을 반대하자고 시작했다가 세계 어디에도 안 된다고 범위가 확장된 거죠”라고 말했다.

 

 

활동을 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다. 하지만 원전 백지화를 위해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했다. 

“가게 문 닫고 나와서 반대운동 하는 분도 계시거든요. 시간과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어요. 하지만 명분이 있기 때문에 끝까지 견뎠죠. 돈은 나중에 벌 수 있지만 이건 생명이 걸린 문제잖아요. 지금의 희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얻고자 하는 것에 비하면 말이죠. 원전은 우리뿐만 아니라 자손 대대로 위험성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정도는 우리가 감수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홍보실장은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긍정적인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삼척은 원전유치가 유보될 것이라는 것. 하지만 그 결과에 만족하지는 않는다. 

 

 

“이번에 전력수급기본계획 발표하잖아요. 그때는 최소한 유보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결국에는 백지화 시킬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근덕에 원전백지화기념탑이 있어요. 그곳에서 1년에 한 번씩 제사를 지내거든요. 이 싸움을 하면서 스트레스로 돌아가시고 한 분들을 기리는 거죠. 삼척의 원전반대 운동은 단순한 핵반대가 아니라 혼과 정신이 들어있어요. 뿌리가 흔들릴 수 없죠. 처음 원전유치를 막아낼 때 해당지역 주민이 7000명 정도였는데 그중에 6000명이 궐기대회에 참석했다고 해요. 아예 움직이지 못하는 분들 빼고는 대부분 나오신 거죠. 그렇게 두 번을 막아낸 경험이 있잖아요. 그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1998년 삼척 근덕에 세워진 원전백지화 기념비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있다. ‘근덕면민은 결사의 투쟁으로 덕산 원전건설계획을 백지화하였다.’ 현재 원전유치반대 운동을 이어가고 있는 삼척의 단체들은 이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근덕의 한 주민은 “내가 수십 년을 막아냈는데 앞으로 300년은 더 막아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삼척 주민들의 원전유치 백지화 의지는 이처럼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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