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쓰레기통 안으로 몸을 숙였다, ‘쪼르륵’ 소리 들려왔다
할아버지가 쓰레기통 안으로 몸을 숙였다, ‘쪼르륵’ 소리 들려왔다
  • 구혜리 기자
  • 승인 2015.06.10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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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간다> 사회복지학 전공 학생이 생각하는 ‘잘사는 삶’

 

시험 기간인데 지방에서 지내고 있는 봉이(여봉이의 줄임말로 지어낸 애인의 애칭)가 서울로 올라왔다. 전날 한바탕 다툼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 5시부터 출근해서 다음날 업무까지 마쳐놓고 부랴부랴 올라왔단다. 봉이의 귀여운 서프라이즈에 서로의 속상함은 이미 풀려있었고 우리 만남은 급작스런 데이트로 변경돼 있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용산역에 도착할 무렵 내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다 떨어져 전원이 꺼져버렸다. 여행 다닐 땐 몰랐는데 용산 기차역이 꽤 넓었구나, 느끼며 많은 사람 속에서 두리번거리며 봉이를 찾았다. 지쳐서 로비 휴게의자에 앉아서 핸드폰을 부활시킬 방법을 궁리하는데 누군가 내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옆을 보니 나이에 맞지 않게 푸석한 검은 머리를 길게 길러 말꼬리 머리로 묶고 자줏빛 상하의를 걸치신 할머니가 다른 곳을 바라보며 대화를 하고 계셨다. 너무 자연스러운 목소리 톤과 그치지 않는 대화에 보이지 않게 이어폰을 끼고 전화통화를 하고 계신 줄 알았다.

그러나 전화 통화가 아니란 걸 알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혹시 주변에 누군가와 대화하는 건가하고 앞뒤, 옆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았지만 할머니는 혼잣말을 하고 계신 거였다. 호기심이 쌓였지만 오싹한 기분이 들어 최대한 시선을 회피하며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봉이와 우여곡절 끝에 만난 뒤 잔뜩 신이 나서 서로의 손을 잡고 지하철을 나섰다. 퇴근 시간의 북적이는 인파 속에 서로를 놓지 않으려고 서로 습기 찬 손을 단단히도 쥐었다. 봉이를 바라보다 그의 어깨 너머로 한 쓰레기통 안으로 허리를 숙이신 할아버지가 보였다.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마시다 버린 빈 음료 컵을 꺼내 남이 몇 번을 물고 씹었을 빨대로 그 안에 얼마 남지도 않은 음료를 마시고 계셨다. 입을 대고 한 모금 채 삼키기도 전에 “쪼로록” 하고 빈 빨대 소리가 들렸다.

한 동안 눈을 떼지 못하자 내 손을 쥐고 있던 봉이가 “뭘 계속 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하고 핀잔을 주었다. 봉이는 나보다 사회복지에서 훨씬 더 많은 해 동안 실무를 해왔다. 이따금씩 특별한 분들을 마주칠 때마다 그에 대해 묘사하면 “그런 분들 많고 많다~” 하고 자연스럽게 여기던 봉이다. 봉이의 다른 쪽 손에는 ‘사회복지법제론’이 들려있었다.

소외된 어두운 사람들에게 모두가 행복한 빛을 보여주겠다는 꿈을 갖고 진입한 나의 전공인데, 막상 불편한 시선을 갖고 사람을 스쳐 지나갔을 뿐인 지금의 나는 그리고 먼 훗날의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도대체 해줄 수 있는 게 있긴 할까 회의감이 들었다.

사회복지학과에 들어오고 나서 사회문제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논문과 서적을 읽고 끊임없이 수업-과제를 반복하지만 생각하고 고민할수록 사회복지는 해답을 찾기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된다.

사회복지는 분명 어려운 사람을 돕고 그들과 함께 사회 전체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희망적인 학문인데, 혹자는 복지가 먹는 사람을 더 살찌우고 먹지 못하는 사람을 더 굶주리는 정치적인 수단이라 얘기한다. 우리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같은 고민을 나누고 있을 친구들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Q: 당신에게 오늘날 사회복지란 무엇인가요?

▲배수연(사회복지학과 13학번) :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처럼 거론을 반복하고 있고, 누군가는 ‘복지’에 대해 소재를 꺼낼 때면 코웃음을 치기도 하지만 아직 한국 사회에서 사회복지를 긍정적 부정적으로 평가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마치 학교에서 우리에게 늘 주어지는 과제들처럼 사회복지는 매 순간 처리해야할 일들이 하나씩 늘어나고 엄연히 마감기한까지 주어진 시급한 문제가 아닐까. 선진국에 가까워지고 있는 자본사회 한국이지만도 아직까지 극심하게 양극화된 빈곤 계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논란이 되거나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급한 불만 끄는 추세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관점과 계획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깊게 파고드는 정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강우성(사회복지학과 14학번) : 사회복지는 기본적으로 타인을 향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종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친구들이 자기 세계에 갇혀 사회복지에 대해 회의적인 고민을 갖곤 하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곳으로 나가 있다는 걸, 나가야 한다는 걸 깨닫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배워가는 과정 중에 있지만 사회복지학도로서 직접 어려운 분들과 대면하고 소통하는, 예컨대 당장 집 앞에 복지센터에 봉사활동을 나가보는 실천적인 노력이 사회복지적인 고민을 성장으로 변화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어요. 저는 매주 한 번씩 주간보호센터에서 봉사활동을 다니고 있는데, 저로 인해 클라이언트(Client)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볼 때 ‘사회복지’라는 단어가 와 닿는 것 같아요. 뇌병변장애를 앓고 계신 분들을 만나는데 처음에는 낯도 많이 가리시고 말투도 어눌하셔서 거부감이 있었지만 세 달이 지난 지금은 먼저 와서 말도 걸어주시고 본인들의 얘기도 해주실 정도로 친해진 걸 보면 뿌듯하죠. 그런 의미에서 복지는 학문과 비학문 간의 경계가 적은 것 같아요.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일상생활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복지의 수용자가 또는 전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고대 철학이 움트던 그리스 아테네 시대부터 ‘잘 사는 삶’에 대한 고민은 수천년 동안 이어졌다. 고대 사회에서는 잘 사는 삶이 철학으로써 진리를 탐구하며 개인의 안녕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었고, 중세 시대로 넘어와서는 신앙과 믿음으로써 신에게 귀의하는 삶이 참된 사회를 만드는 길이었다.

계몽 혁명이 일어난 16세기 근대 사회에서는 이성적인 관찰과 실험으로 검증된 ‘팩트’를 추구하는 삶을 중시했고, 근대 계몽 사회의 부작용으로 생긴 사실주의의 폐단이나 계층 간의 차별을 해체하려는 운동이 일면서 르네상스와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을 거쳐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 했다.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는 노동을 통한 생산물을 가장 값진 것으로 치부하였고, 아녀자들의 행복은 알뜰한 살림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가정에 저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소유’가 사라지고 ‘소비’가 목적이 된 자본주의 시대로 변화를 보인다. 사람들은 시장이 만들어낸 아름답고 비싼 상품에 대한 욕망을 소비하며 ‘잘 살고 있다’는 만족감을 얻는다. 황금만능주의 시대의 우리 사회에서 ‘잘 사는 삶’이란 경제력과 소비 생활의 잣대로 평가된다.

최근에는 이 ‘잘 사는(buy) 삶’을 거부하며 모두가 ‘잘 사는(live) 삶’의 프레임을 걸고 등장한 것이 사회복지다. 흔히 ‘복지’ 하면 국민연금, 무상급식 등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사회복지는 정치 수단으로 거론되는 작은 이슈들을 포괄하여 국민 모두에게 적용되는 문제이다.

빈곤층부터 시작해서 부유층 역시 넓은 의미의 사회복지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웃이 병든 사회에서는 나 역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구혜리 기자는 연세대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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