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으면서 다른 ‘숟가락’과 ‘젓가락’
같으면서 다른 ‘숟가락’과 ‘젓가락’
  • 엄민용 기자
  • 승인 2015.06.30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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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우리말 달인’ 엄민용의 ‘우리말 나들이’

 

▲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보면 여주인공이 국문과 학생인 남자 주인공에게 “나, 어릴 때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왜 젓가락은 ‘ㅅ’ 받침이잖아. 그런데 숟가락은 왜 ‘ㄷ’ 받침이야?”라고 묻는 대목이 나옵니다.

정말 왜 그런 걸까요? 우스갯소리로 숟가락은 퍼 먹기 좋으라고 ‘ㄷ’ 받침을 쓰고, 젓가락은 집기 편하라고 ‘ㅅ’ 받침을 쓰는 걸까요?

아닙니다. ‘수저’는 한 말이지만, ‘숟가락’과 ‘젓가락’은 같으면서도 조금 다른 구조로 이뤄졌습니다. 

우선 ‘젓가락’은 한자말 ‘저(箸)’에 순우리말 ‘가락’이 더해진 말인데요. 그 소리가 [저까락 / 젇까락]으로 나므로, 사이시옷 규정에 따라 사이시옷이 첨가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즉 ‘수저’의 ‘저’ 뒤에 ‘가락’이 붙으면서 [저까락 / 젇까락]으로 소리가 나 ‘젓가락’으로 적는 것이라면, ‘수’에 ‘가락’이 붙어서 [숟까락]으로 소리가 나는 만큼 ‘숫가락’으로 써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숟가락’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수’의 원말이 ‘술’이기 때문입니다. “한 술 뜨고 나가라” 할 때의 ‘술’ 말입니다. 젓가락은 ‘저+가락’이지만, 숟가락은 ‘술+가락’입니다. 그 때문에 ‘숟가락’이 되는 것인데요. 조금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한글맞춤법 제29항은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적에 ‘ㄹ’ 소리가 ‘ㄷ’ 소리로 나는 것은 ‘ㄷ’으로 적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요. 원래 ‘ㄹ’ 받침을 가지고 있던 말이 어느 말과 결합하면서 ‘ㄹ’이 ‘ㄷ’으로 변하고, 그런 말이 사람들의 입에서 아주 굳어진 것이라면, 굳이 어원을 밝히지 않고 그냥 발음대로 적는다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해 원래 ‘숟가락’은 ‘술+가락’의 구조를 가진 말인데, ‘술가락’보다 ‘숟가락’으로 발음하는 것이 편해 예부터 사람들이 그렇게 써 왔으니, 굳이 ‘술가락’으로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말 중에는 원말에 있던 ‘ㄹ’ 받침이 다른 말과 결합하면서 ‘ㄷ’으로 바뀐 것이 꽤 많습니다. 음력 12월을 뜻하는 ‘섣달’이 그렇고, 음력 3월 초사흗날을 가리키는 ‘삼짇날’도 그러하고, 내일을 의미하는 ‘이튿날’ 역시 그러한 말입니다.

음력 11월은 ‘동지’가 들어 있다고 해서 ‘동짓달’로 부릅니다. 따라서 설날과 이어지게 되는 음력 12월은 원래 ‘설달’로 써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두 이를 ‘섣달[섣딸]’로 발음해 이제는 ‘섣달’을 바른말로 삼고 있는 것이지요.

“어느 날의 다음날”을 의미하는 ‘이튿날’ 역시 ‘이틀+날’이 ‘이튿날’이 된 것이고, ‘사흘날’과 ‘나흘날’도 이제는 ‘사흗날’과 ‘나흗날’을 표준어로 삼고 있습니다.

“바늘, 실, 골무, 헝겊 따위의 바느질 도구를 담는 그릇” 역시 ‘반짓고리’가 아니라 ‘반짇고리’로 써야 합니다. ‘바느질고리’의 준말이니까요. 또 “여름에 생풀만 먹고 사는 소”를 뜻하는 ‘푿소’도 ‘풀+소’가 변한 것이랍니다. <경향신문 엔터비즈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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