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호 기자의 살며 생각하며>

 

"커리어우먼은 이 시대의 새로운 노처녀인가? (Is Career woman the new spinster?)"

미국의 허핑턴 포스트(Huffington Post, 2011)의 기사 제목이 참 도발적이다. 기자는 35세 이상의 여성이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경우 으레 결혼 대신 일을 택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며 결혼과 일을 마치 선택사항의 하나라고 보는 시선이 불편하다고 말한다. 결혼과 일을 양립할 수 없다고 보는 사회적 통념이 왜 여성에게만 국한되느냐는 얘기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기사 속 미국 여성들의 현실이 전업이냐 워킹맘이냐를 고민하는 우리네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워킹맘에서 전업주부의 삶을 선택한 저자 에밀리 멧차의 '하우스와이프 2.0

근대화 이후 다양한 일자리가 창출되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결혼과 육아에서 모두 능력을 발휘하는 커리어우먼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어머니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이 새로운 어머니들은 예전 전통적인 어머니들이 가정에 갇혀 희생을 강요받았던 현실을 딛고 일어나 여성의 사회적 가치를 주장한 페미니스트들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러한 워킹맘의 양육을 받은 세대들이다. 그런데 '하우스와이프 2.0'의 저자 에밀리 멧차는 미국의 많은 커리어우먼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직장대신 가정을 택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음에 주목한다. 이전 세대 어머니들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가정을, 요즘 커리어우먼들은 오히려 모든 사회적 지위를 벗어던지고 돌아가고 있다.

얼마 전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동네 마트에서 장보는 모습이 국내 신문사에 찍힌 적이 있다. 그 안에는 메르켈 총리가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직업인이면서 가정에서는 식구들의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평범한 주부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지만 대부분의 워킹맘들에게 그녀는 현실에서는 그 실체가 없는 신기루일 뿐이다. 사실 일과 육아를 제대로 양립하게 할 수 있는 워킹맘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만 13세 미만 자녀를 둔 국내 취업여성들의 평일 평균 육아시간이 3.5시간인 반면 남편은 1.4시간에 불과하다는 통계자료가 있다. 미국의 맞벌이 가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미국 맞벌이 여성의 경우 하루 평균 육아시간이 4시간이라면 남편은 2.2시간이다. 즉, 미국이건 우리나라건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지더라도 육아와 가사의 몫은 여전히 여성에게 집중된다. 당연히 생계활동을 하면서 가사노동을 병행하는 것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생고생을 견뎌낼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워킹맘이 이 문제에 고민하기 시작한 순간 그들은 가차 없이 직장을 내던지고 가정을 택한다.

많은 육아휴직자들이 복직을 앞두고 전업에 대한 고민을 한다. '하우스 와이프 2.0'의 저자가 좋은 직장을 버리고 전업을 결심하게 된 배경도 우리 현실과 비슷하다.

"회사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높은 자리에 올라갔지만 결국 기업은 이윤추구만이 목적일 뿐 개개인의 가정생활의 균형같은 건 신경 쓰지 않더라구요. 사실 이제 저에게 중요한 건 가정과 회사생활의 균형인데 회사는 여전히 저의 모든 시간을 쏟아서 성과를 내기만을 바랍니다."

"회사 일에 바빠서 아이들 먹거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요즘 먹거리의 안전성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어 걱정이죠. 어디서 어떻게 키워서 유통되는지 알 수 없는 먹거리들이 늘어나면서 집에서 직접 키워낸 식재료들을 활용하는 집이 늘어나는 걸 보면 집밥 한번 제대로 못해준 게 마음에 걸립니다."

"아이 교육을 학교공부에만 맡겨둘 수 없어 아이의 적성과 취향을 고려한 사교육 커리큘럼을 짜주는 것도 엄마의 몫이 되고 있는데 전 아이 공부를 신경써주지 않아서 아이가 뒤처지는 게 보입니다. 전업엄마들은 이미 그룹을 짜서 아이들 공부를 뒷바라지를 하고 있던데 그 안에 낄 수도 없더라구요."

 

일러스트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많은 엄마들이 이러한 이유들로 워킹맘을 포기한다. 아이들 먹거리와 교육을 포기하고서까지 일을 택할 엄마는 사실 많지 않다. 대부분의 워킹맘들이 이러한 현실에 부딪치는 순간 전업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차선책으로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파트타임 일을 구한다. 경력단절이니, 사회적 역할이니 하는 명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아이 교육과 관련된 문제가 생기면 더욱 가차 없다.

엄마들이 망설임 없이 일자리를 관두고 가정에 눌러앉는 이유 중 하나는 사실 자녀양육을 오롯이 가정의 몫으로, 여성의 몫으로 두는 사회 공공정책의 실패에도 있다. 요즘 '독박육아'라는 말이 유행이다.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엄마들이 하소연처럼 '독박'이란 말을 쓴다. 아이를 위해서는 둘째도 낳고 싶지만 역시나 육아를 '독박'쓸 게 뻔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들 한다. 여성이 육아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구조다 보니 할 수 없이 전업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고 여성은 더욱 사회와 단절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성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단순히 개인의 선택문제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더 큰 문제는 공공의 영역에서 거론되고 공동의 해결 과제로 자리 잡아야 할 워킹맘의 고된 현실이 워킹맘들 스스로가 문제를 떠안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모든 문제를 사적 영역으로 몰아간다는데 있다. 워킹맘들이 전업주부를 택함으로써 출산과 육아를 전적으로 집안의 문제로 돌려놓는다. 사회가 어느 정도 해결해야 할 일을 각자 알아서 능력껏 하겠다는 얘기인데 과연 이렇게 개인의 몫으로 돌려도 되는 문제일까?

결국 여성의 육아에 있어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계층 간의 문제다. 즉, 워킹맘을 포기하고 외벌이로 살아갈 수 있는 중산층 가정은 본인의 능력껏 출산과 육아를 감당하고자 하겠지만 생계를 위해 맞벌이로 살아가야만 하는 저소득층의 경우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이것이 정당한 요구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위해서는 능력 있는 워킹맘들이 나름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보전하려는 의식 있는 노력을 해야 할 필요도 있다. 여성들이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은 남편과 자녀를 위해서는 상당한 진전일 수 있으나 다음 세대의 여성들과 가정에는 후퇴일 수 있다. 사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가 워킹맘들만 활개를 치는 불평등한 현실을 계속 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워킹맘들이 남녀평등을 위해 죽어라 회사에서 버텨야 한다는 건가? 아니다. 여성이 육아를 등지고 회사 일에 더욱 매진하도록 만들 일이 아니라 남편과 부인 모두 가정으로 돌아와 일과 가정의 균형을 갖도록 사회와 회사가 도와주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즉 남성과 여성, 사회와 기업 모두의 공동 육아부담이 답이다. 이를 통해 여성과 남성 모두 직업인으로서 사회에서 제 몫을 다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물론 전업주부로서 가정과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다.) 교육 복지를 중시하는 독일은 개인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직업교육을 통해 민주시민 역할을 실천하는 시민을 양성하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교육 복지 속에는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데 필요한 실천적 지원이 포함된다. 메르켈 총리가 가사와 일을 병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마도 개인이 사회에서 제몫을 다하도록 사회가 자녀 양육과 교육부분에 충분한 지원을 담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워킹맘들이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 사회가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은 요원하지만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는 절망은 당장 눈앞에 보이기 때문이다. 실체가 없는 희망을 위해 구체적인 절망을 견뎌내기란 역시 쉽지 않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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