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준오의 유학은 그가 초등학교 2학년 다닐 때부터 추진돼온 전 가족적 대사였다. 이미 두 딸과 아들 하나를 서울에 유학 보낸 전력이 있는 아버지가 똑똑하기로 소문난 준오를 그냥 놔둘 리가 없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워낙 서울로 상경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라서 전학을 시킨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준오의 경우도 학교장 추천장을 받아 교육부에 제출하기를 십여 차례, 각방으로의 노력이 이어진 끝에야 간신히 전학 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신청서를 낸 지 5년 여 만에 이루어진 '거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준오에게 전학은 아주 끔찍한 일이었다. 물론 방학 때 한번씩 내려오는 서울 아이들을 봤을 때 그들에게서 어떤 동경심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그들은 온통 하얀색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이 저렇게 하얀 피부를 지닐 수 있을까 할 정도로 한 점 티도 없이 맑은. 어디 그 뿐인가. 그들이 사용하는 그 언어. 국어 책에서나 나오는 세련된 용어들을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내뱉곤 했다. 옷도 그랬고, 들고 다니는 가방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딴 세상에서 온 아이들같이 여겨졌을 정도다. 그들은 준오가 갖고 싶은 것을 모두 갖고 있는 아이들임이 분명했다. 누나들이 어렵게 사서 보내주는 어린이 잡지에 나오는 아주 먹음직스럽게 생긴 핫케익도, 준오가 그렇게 갖고 싶었던 400배와 600배, 그리고 1000배까지 확대가 되는 현미경도, 그들은 전부 갖고 있을 터였다.

그런 것들이 준오가 전학을 가는데 유일한 희망이 됐을 뿐 나머지는 전부 아니었다. 사실 전학 통지서가 날아오고 몇일간 준오는 한껏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앞으로 펼쳐질 새롭고도 아주 색다른 세상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작용했으리라.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계속 암흑이었다. 무엇보다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준오를 사로잡았다. 어떤 때는 밤에 잠을 자다가 가위에 눌려 잠을 깬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전학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이별은 점차 현실이 되었다. 아버지 어머니와, 옆집 친구와, 동네 사람들과, 준오가 올라가 놀던 나무와, 아직도 채 흔적을 지우지 못한 코스모스 울타리와…이 모든 것과의 이별이 현실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준오를 가슴아프게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남순이었다.

왜일까. 가슴 한 쪽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차갑게 밀어닥치는 이 한기는. 아팠다. 입에서는 공허에 찌들은 누린내가 연신 풍겼다. 혼자 있을 때면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한숨이 흘러나와 준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왜일까. 분명 달랐다. 남순과의 이별은, 다른 모든 이들이나 사물들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를 아주 애처롭게 그리고 아주 진하게, 전해주고 있었다.

방안에 있어 들리지 않아야 할 시계소리가 너무도 선명히 들려왔다. 째깍째깍. 초침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치는 북소리 마냥 준오의 심장소리에 맞춰 온통 가슴을 헤집었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호흡이 가빠졌다. 그리고 준오는 어머니가 행여나 눈치라도 챌 새라 잽싸게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냐. 불 좀 더 쬐제"

삐그덕 시위를 하는 부엌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찬바람이, 잔뜩 독이 올라있던 준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이빨이 시려왔다. 불의의 기습을 당한 편도선이 마른 갈증을 토해냈다. 세상을 뒤덮고 있는 눈은 아까보다 훨씬 더 찬란했다. 태양은 아직 보이지 않았으나 바로 옆 아름드리 소나무 잎파리 사이로 그 분신을 갈래갈래 내보내는 걸로 보아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설 채비를 마친 것만은 분명했다. 전봇대에선 지난 가을 밭 가운데 고추하우스에서 찢겨져 나와 매달렸음직한 비닐 종이가, 높다란 국기게양대의 꼭대기에서 펄럭이는 태극기 마냥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나부끼고 있다.

"올 봄에는 코스모스들을 전부 쳐내고 측백나무를 심을 것이여."

얼마 전 아버지가 토해내듯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수년간, 아니 아마 준오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도 울타리 역할을 충실히 해왔음에 틀림없는 코스모스를 전부 캐내고 그 자리에 측백나무를 심겠다는 것인데 준오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던 터라 어떤 대꾸도 하지 못했었다.

코스모스는 오로지 한 철용이었다. 이른 여름 싹을 틔어 여름내 잎파리를 내다가 가을이 되면 단 며칠밖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꽃을 만들어놓곤 소리 없이 날아가는 꽃씨와 함께 훌쩍 떠나버리는. 아름답긴 했으나 박명(薄命)이었다.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는 말도 아마 코스모스를 빗대서 한 말일 것이라는 준오의 생각은 다 그런 연유에서였다.

하긴 코스모스는 그저 쳐다보기만 해도 애처로움과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식물이었다. 가녀린 몸, 바람이 불면 금새라도 꺾여버릴 듯 휘청대는, 결코 굵지 않은 줄기는 꽃이 조금만 많거나 커도 금새 고개를 한 뼘만큼이나 추욱 내려뜨린 채 힘겹게 서 있다가 결국은 그렇게 꺾이고 마는 것이었다.

준오는 언젠가 이런 생각도 했었다. 사람들이 코스모스를 좋아하는 건 바로 코스모스의 그런 나약함 때문일 거라고. 맞다. 자신들보다 더 나약한 대상에 대한 동정일 뿐이라고. 준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만 보기에 코스모스는 너무 청명했다. 순수했다. 차마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코스모스를 전부 파내 버리고 그 자리에 생명력 강하고 사시사철 울타리 역할도 충실히 해줄 측백나무를 심겠다는 것이었다.

준오네 집은 코스모스 울타리 덕분에 한 해의 거의 반은 거의 경계가 없는, 그래서 아무나, 어떤 곳으로나 드나들 수 있는 자유의 집이 돼 있었다. 물론 도둑을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바로 집 앞으로 난 꽤 큰 길에서도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니 준오 조차도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겨울엔 온 집안을 너무도 혹독한 추위 속으로 몰아넣었다.

아버지는 지난 가을 이미 읍내에 나가 측백나무 묘목을 주문해놓았다는 얘기까지 했다. 이제 날이 조금만 풀리고 천지만물이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올 즈음이 되면 아버지는 울타리 공사에 들어가실 것이었다.

준오가 그 일에 대해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이유는 또 한가지 있었다. 바로 준오네 울타리 말고도 코스모스는 사방에 지천으로 있었던 것이다. 동네 전체가 마치 코스모스에 파묻힌 듯 했고, 등교 길에도, 교정에도 코스모스는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그랬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