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이념논쟁

 

가을 바람을 맞아 정치권이 ‘역사교과서’ 문제로 들석이고 있다. 한동안 밀월 관계를 맺어왔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다시 정면 충돌 양상을 연출하는 등 갈등은 깊어지고 있다.
두사람은 지난 추선 연휴 부산에서 전격 회동하며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합의하는 등 잠깐동안의 ‘밀월 관계’를 맺어왔지만 안심번호 국민공천제가 새누리당 내 계파 갈등으로 사실상 좌초되면서 전운은 다시 시작됐다. ‘역사교과서’ 논쟁의 파장을 전망해 봤다.

 

 

또 다시 이념 논쟁으로 귀결되는 것일까.

김 대표는 최근 현행 중․고교 역사교과서에 대해 “출판사별로 일관되게 우리의 역사를 부정하는 반대한민국 사관으로 쓰여 있다”며 “좌파적 세계관에 입각해 학생들에게 민중혁명을 가르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특히 대선 정국마다 불거졌던 진보와 보수 논쟁을 겨냥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김 대표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분단의 책임이 있다고 가르치고, 산업화 성공을 자본가의 착취로 가르치고 있다”며 “학생들이 배우면 배울수록 패배감에 사로잡히고 모든 문제를 사회 탓, 국가 탓으로 하는 국민으로 만든다”고 주장했다.

공천룰을 놓고 김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던 이인제 최고위원도 “중․고교 학생들의 마음 속에 올바른 역사․국가․가치관을 심어주는 일은 처음에 잘못 그려지면 바로잡기가 힘들다”면서 “올바른 역사 교육을 통해 젊은이들이 위대한 나라를 만드는 역사관과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면서 국정화 방침에 힘을 실었다.

교육부는 조만간 초 국정교과서 추진을 공식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속도전을 벌일 것이란 소식이 전해진다. 이에 따라 ‘공천룰’을 놓고 내홍을 겪던 새누리당이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는 등 전열재정비가 한창이다.
 

야권 “유신독재의 향수”

새정치연합은 이에 대해 ‘과거로의 회귀’라며 맹비난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긴급 의원총회를 통해 “박근혜 정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고 하는 모든 망동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결의문을 발표하는 등 강력히 반발했다.

문 대표는 의총에서 “정부 여당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강행한다면 유신독재의 향수를 느끼는 유신잠재세력으로 규정짓고 저지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음을 경고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왜곡을 넘어서 이제는 친일, 독재의 후손들이 친일, 독재를 정당화하려고 한다”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도하고 있는 김 대표를 정조준하기도 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유기홍 위원은 “보수결집을 위해서 새누리당과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대단히 불리한 정국이 조성될 것”이라며 “전당적으로 거당적으로 철저하게 단호하게 대응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때 아닌 ‘이념 논쟁’은 ‘불협화음’으로 시끄럽던 여권의 내부 갈등을 잠재우기 위한 시도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새누리당은 그 동안 야권에서 제기해 온 ‘친일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역사교육에서도 불리하다는 피해의식이 적지 않았다.

친박과 비박의 갈등을 잠재우는 동시에 야권을 압박하는 갈등을 만드는 데 ‘국정교과서’ 문제가 사용된 것 아니냐는 얘기다.

당장 김무성 대표조차 부친(고 김용주 전남방직 회장)의 친일 의혹으로 한바탕 몸살을 겪은바 있다.

광복 이후 역사교과서는 검정으로 발행되긴 했지만 유신체제 아래였던 1974년 이래 군부 독재가 종식된 지 오래인 2010년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는 장기간 국정 역사교과서 체계를 유지해왔다.

이번에 국정화 조치가 단행된다면 역사교과서가 완전 검정으로 바뀐 지 불과 5년 만에 과거로 회귀하게 되는 셈이다. 야권에선 현재 OECD국가는 물론이고 선진국에선 검정 교과서 체계를 유지하거나 출판사 자율에 맡기는 기조라는 점을 강조하며 국정 교과서를 쓰는 나라는 북한, 방글라데시, 베트남, 몽골 등 극소수 개도국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17개 시․도 교육감 중 울산과 경북을 제외한 15명도 국정화 반대 입장을 공개 표명한 바 있다. 역사 교사의 80%는 물론 재야 사학계까지 나서서 반대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EBS 수능 역사교재에까지 교육부가 개입해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공포’ 사실을 삭제하는 등 일련의 움직임도 과거 회귀라는 비판의 소재가 됐다.

때 마침 MBC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고영주 이사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말해 파장이 일기도 했다. 고 이사장은 이와 관련 “민중민주주의자로,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봤다”며 김문수 경기지사와 이재오 의원에 대해 “과거 공산주의 활동을 하다가 전향했다”고 말했다.

정치권을 휩쓸고 있는 ‘국정교과서’ 논란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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