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농성노동자들을 찾아서>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쓸쓸한 가을

 

벌써 9년이다. 하지만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다. 회사는 아예 문을 닫아버렸다. 공장은 인도네시아로 옮겨버렸다. 하루아침에 거리로 쫓겨난 노동자들은 극악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사측도, 정부도, 정치권도 누구 하나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오히려 손가락질을 해댈 뿐이다. 강경노조 때문에 회사가 문을 닫았다며. 기나긴 세월 동안 해외 원정 투쟁까지 감행해가며 싸워온 해고노동자들에겐 분노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다. 수많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삶이, 목숨이 걸린 일이기에. 그래서 급기야 단식투쟁까지 돌입했다. 여전히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세계 최정상의 기타 메이커’라는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 얘기다.

 

 

“어려울 때 고통을 분담하기는커녕 강경한 노조가 제 밥그릇 늘리기에만 몰두한 결과 건실한 회사가 아예 문을 닫은 사례가 있다.”

“테트라책, 발레오공조코리아, 콜트 악기와 콜텍 이런 회사는 모두 이익을 많이 내던 회사인데 강경노조 때문에 아예 문을 닫아버렸다.”

지난 9월 3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노동시장 개혁’을 강조하던 중 이 같은 발언이 나왔다.

2007년부터 9년간 투쟁을 이어온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은 김 대표의 발언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지난 9월 8일에는 금속노조 콜텍지회와 민주노총대전지역본부 등은 새누리당 대전시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대표의 사과를 촉구했다. 3주 넘는 기간 동안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 1인 시위도 진행됐다. 하지만 아무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지난 5일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와 함께하는 공동행동’은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다시 한 번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김무성 대표와 새누리당의 잘못된 노동관과 왜곡된 정치 행위를 바로잡기 위해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기자회견 직후 방종운 금속노조 콜트악기 지회장이 무기한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콜트‧콜텍 공동행동은 새누리당에 국회 차원의 대책 마련을 위한 대안 제시를 촉구했다. 사회적 협의기구 설치 등이 포함됐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김무성 대표의 답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기 위해 이후 ‘답’이란 모양의 우체통을 만들었다. 또한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거리음악회도 연다.

 


잘나가던 회사의 폐업?

콜트‧콜텍은 기타를 만들던 회사다. 인천과 충남 계룡에 공장이 있었다. 이 회사는 전 세계 전자기타 시장의 30%를 점유할 만큼 소위 잘나가는 기업이었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매년 흑자를 기록했고, 직장 폐쇄가 이뤄진 2007년 역시 흑자였다. 하지만 회사는 돌연 정리해고와 폐업에 돌입했다.

2007년 4월 인천 콜트악기 노동자 56명이 정리해고 됐다. 같은 해 7월에는 계룡시 콜텍 악기 폐업으로 67명 전원이 정리해고 됐다. 2008년 8월에는 인천 콜트악기도 폐업에 들어갔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이전한 것이다. 물량을 해외 공장으로 빼돌려 서류상 경영위기라는 명분을 만들었다. ‘먹튀자본’, ‘위장폐업’ 등의 논란을 일으키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공장을 해외로 이전한 회사는 홈페이지에 ‘세계 최정상의 기타 메이커’라는 문구를 적어놓은 채 여전히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그렇다면 김 대표가 말한 강경 노조는 콜트‧콜텍에 있었을까? 콜트‧콜텍의 해고 노동자들은 2006년 노조를 결성한 후 회사 폐업 전까지 총파업은 단 한 차례도 단행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또 있다. 바로 지난 2010년 서울고등법원에서 나온 판결이다.

“콜트악기의 폐업에는 원고의 파업으로 압축해서 표현하고 있는 노사문제뿐만 아니라 생산기지의 해외이전이라는 경영상의 판단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이는데도 콜트악기의 폐업이 순전히 노조의 잦은 파업이라는 기사는 허위라고 보는 게 맞다.”

이 판결은 콜트‧콜텍 노조가 동아일보를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한 것이다. 2008년 8월 동아일보는 한 기사에서 콜트 악기의 모기업 부평공장이 노조의 장기 파업으로 인한 경영악화로 문을 닫았다는 내용을 담았다. 2011년, 위와 같은 판결로 동아일보는 2008년 기사에 대한 정정보도문을 실었다.

이처럼 김 대표의 발언은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오히려 회사의 폐업으로 콜트‧콜텍의 모든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을 뿐이다.

 


2007년 회사의 폐업, 그 이후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를 당한 지도 3,200일 가까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40건이 넘는 관련 재판이 열렸다.

복직투쟁 6년이 지난 2012년 2월에는 콜트악기 측의 해고가 부당하다며 사측에 해직 노동자들을 원직복직 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그해 5월 회사는 노동자들을 다시 해고했다. 복직 판결을 받은 노동자들이 돌아갈 공장을 폐업해 일할 곳이 없어졌다는 것.

2014년 대법원 판결은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콜텍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무효소송에 대해 ‘미래에 다가올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를 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정리해고로 노사 간의 갈등이 극심하던 당시 회사는 임원진에게 성과금 300%를 지급하기도 했다. 정리해고가 가능하다는,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가 이 회사의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지 의문을 남긴 판결이었다.

분신을 했던 조합원도 있었다. 양화대교 아래 송전탑에도 올랐다. 폐업한 공장과 본사를 점거해 농성도 벌였다. 미국‧독일‧일본 등으로 6차례 해외원정을 떠나기도 했다.

'콜트콜텍 밴드(콜밴)'를 구성해 거리공연과 콘서트도 열었다. 홍대 앞 클럽 ‘빵’에서는 7년째 매달 한 번씩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을 위한 콘서트’를 열어주고 있다.

또한 이들의 이야기는 ‘기타이야기’, ‘꿈의 공장’ 등 다수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됐고, 직접 배우로 참여해 연극을 제작하기도 했다.

 


3000일,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

지난 4월 19일 정리해고 투쟁 시작 3000일을 맞은 날이었다.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은 이 시기에 맞춰 4월 20일부터 전국을 돌았다. 기타를 들고 진도 팽목항, 제주도 강정마을, 부산시청 앞 고공농성장 등을 다니며 아픔을 겪는 이들을 위로했다.

지난 5월 9일에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이들의 모임 '콜친 3000+ 페스티벌'이 열렸다. 많은 이들이 현장을 찾았고, ‘콜밴’, ‘단편선과 선원들’, ‘야마카타트위스터’ 등의 공연으로 축제가 이어졌다.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도 공연을 지켜보며 축제의 의미를 알게 됐다.

9년이라는 시간동안 수많은 형태의 투쟁을 진행했다. 하지만 그들의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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