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강행’ VS ‘촛불 정국’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민통합’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쳤다. 여야 수뇌부들과의 회동도,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도 불을 끄기는커녕 오히려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여야의 ‘역사전쟁’이 박 대통령의 연설을 계기로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었다.
정부와 여당은 이날 연설 직후 국정교과서 개발 일정을 밝히는 등 더욱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다. 이에 맞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시민단체들과 공조해 첫 대규모 장외 집회에 나섰다. 여론조사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기식 일방통행을 하고 있는 청와대와 전선이 고착되고 있는 정치권을 살펴봤다.

 

 

이쯤 되면 청와대의 ‘선전포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국회에서 국정화 강행 의지를 내비치자 정치권의 전운은 최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 국정화 행정예고 기간이 다가오면서 여야 모두 여론전에 총력을 쏟고 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긴급 브리핑을 통해 “행정예고 기간에 수렴된 의견 등을 최종 검토한 후 11월 5일 중등 교과서 국․검․인정 구분고시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집필진 구성의 경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위촉과 공모를 통해 11월 중순까지 완료하고 11월 말부터는 교과서 개발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집필진이 비공개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우려하고 있다.

학계 일각에선 “이렇게 만들어지는 국정화 교과서는 이미 누더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더욱이 역사 갈등은 단시일이 아닌 오랜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정연설을 통해 ‘박수부대’라는 비아냥까지 받은 새누리당은 교과서 국정화 추진의 선봉에 선 박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해 야당에 포문을 열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길거리에서 촛불시위를 부추기고 국민 분열을 앞장서는 야당 행태에 숨 막히는 갑갑한 심정”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 너무 멀리 온 듯”

권성동 전략기획본부장은 교육부의 비공개 국정화 태스크포스(TF) 논란과 관련, “중요 정책을 추진할 때 TF를 구성하는 것은 당연한데 그 조직 자체가 잘못된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반해 새정치연합은 전의를 더욱 불태우고 있다. 문재인 대표 등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이 대거 참석하는 ‘국정교과서 반대 결의대회’를 열고,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촛불 문화제에도 동참했다.

이전까지는 의원들의 1인 시위와 서명운동 중심으로 장외 여론전을 벌여왔지만, 이제는 쇠고기 촛불 집회 같은 대규모 장외 집회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다. 문 대표 등 지도부가 교과서 체험 ‘투어 버스’를 타고 지역순회에 나서는 한편 야권 3자 공동주최로 국정교과서 반대 토론회도 연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교육부 국정화TF에 대한 여당의 해명에 대해 “국정화 비밀 작업을 폭로하고 사령부를 밝혀낸 데 대한 적반하장식 태도에 어이가 없다”고 비난했다.

무엇보다 지지율이 안정되어가던 박 대통령의 승부수가 ‘민심’과의 맞불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가 관심이다. 내년 총선 뿐만 아니라 장기간의 이념 전쟁을 대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여당에서 제대로 된 반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도 여권 내 분위기를 보여준다.

박 대통령은 시정 연설에서 현행 역사 교과서의 문제를 시정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며 “당연한 과제이자, 우리 세대의 사명”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또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거 역사는 정치권력이 개입할 경우 위험 소지가 다분함을 보여주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역사 강조가 남길 폐해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 여론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역사학계와 민심의 외면 속에서도 ‘날 선 강행’을 외치고 있는 박 대통령과 여권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 ‘역풍의 부메랑’ 파고가 어떻게 진행될지도 향후 정국을 가르는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미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가 너무 멀리 온 것 같다”며 “독재는 그 어느 것보다 민감한 우선순위다. 지나친 교만은 자충수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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