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버린 몸?” 성폭행 피해자의 굴레
“이미 버린 몸?” 성폭행 피해자의 굴레
  • 구혜리 기자
  • 승인 2015.11.03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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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말한다> 대학생들이 보는 성폭행 사건 판결

 

입양한 동자승을 수년간 성폭행한 60대의 승려가 재판 끝에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부모가 없는 아이를 자신의 사찰에 데려와 입양하고 2011년부터 수년 동안을 성폭행해왔다. 그래, 노후에 임박해 있는 당신에게 6년이란 짧지 않을 수도 있겠다.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도 획기적으로 늘려 80시간 이수해야 한단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우리 학생들은 재판부의 해석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가해자의 사찰 내에서의 절대적 지위, 의지할 데 없는 피해자의 주변 상황, 나이가 어려 상황 판단과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상태 등으로 미뤄 피해자를 위력으로 성폭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해자가 성범죄전력이 없고 부모로부터 양육을 부탁받거나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을 수년간 보살펴온 공덕이 있으나 어린 피해자가 입은 상처와 장래에 끼친 해악은 그 공덕으로도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양부로서 피해자를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장기간 성폭행한 죄질이 상당히 좋지 않다.”

재판부는 A씨에 대해 성범죄자 신상정보 등록을 하도록 고지했으나 신상정보 공개 명령에 대해서는 성범죄 처벌 전력이 없고 공개 정보가 피해자 신분 노출 등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리할 수 있어 공개를 면제했다.

한편 검찰의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청구는 재범 위험성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얼핏 보면 위 판결은 현명한 대처로써 재판부로서 정당한 정의를 구현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일각에서는 감수성 없는 법조계의 판결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건과 관련하여 대한민국 성폭력 사건과 그 조치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대학생들(연세대)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한혁규

“우리나라 법에 실망이 크다. 이번 동자승 성폭행 판결에 있어서는 세 가지 포인트에 충격을 받는다. 첫째, 가해자가 성범죄 전력이 없고 부모로부터 양육을 부탁받거나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수년간 보살펴온 공덕을 감안한 점. 둘째, 신상정보 공개 명령에 대해서 성범죄 처벌 전력이 없고, 공개 정보가 피해자 신분 노출 등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거절한 점. 셋째, 검찰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청구는 재범 위험성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한 점. 심각하다. 자아, 공덕을 쌓으면 처벌이 경감된단다. 물론 성범죄 한정이지!”

▲김다흰

“수년간 아이들을 보살펴온 ‘공덕’은 여러 의미로 끔찍하고 소름끼친다. 왜 예전에 어떤 판사가 강간 피해자에게 ‘이미 버린 몸, 가해자랑 둘이 결혼시켜 잘 살아라’ 했던 거에 비하는 세상 살기 좋아진 건가? 지난 수십 년 세월 쌓아올린 공덕이 무너졌으니 다시 쌓아올리려면 차라리 지난 수십 해만큼의 징역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혜윤

“‘공덕’이라는 단어가 재판정에서 판사가 사용할 수 있는 법률로 구성된 용어이긴 한가? 나중에 혹시라도 재판정에 섰을 때를 대비하여 평소에 공덕을 열심히 쌓아야겠구나! 갈 곳 없는 사람과 이를 위탁하는 사람 사이에는 권력관계가 훨씬 명백해져서 성폭력 사건이 있어도 알리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초범’과 ‘공덕’을 이야기할 게 아니라 다른 피해자는 없는지를 먼저 찾아보는 게 법이 해줘야 할 역할 아닌가.”

▲한혁규

“영화 ‘도가니’를 통해 폭로되었듯이 시설 및 특수학교에서 갈 곳 없는 아동이나 장애인을 맡는 시설 직원 및 교사 사이의 권력관계, 장애 유무에 따른 권력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서 이런 문제들이 많다. 외부로 알려지는 경우도 많지 않고 ‘좋은 일’이라 명명되는 허울 아래 처벌도 경량 처분되거나 전혀 없기도 하다.”

▲정혜윤

“피해자가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하기 힘든 것도 물론이거니와 사실 어떤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접했을 때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거나 토론할 집단이 흔치 않다는 것도 슬픈 일이다. 물론 성폭력 뿐 아니라 일상 속 성차별이나 작은 불편함에 대한 경험도 마찬가지. ‘걸고넘어지는’ 일이 많아질수록 예민하고 불편한 사람이 돼 버리기 일쑤니까. 그래서 매체의 힘이 중요한 것 같다. '도가니'도 소설만 나왔을 때보다 영화화 이후 도가니법을 제정시킬만한 엄청난 파급력을 불러일으켰을 정도니 말이다. 역시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지 널리널리 알리는 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냉소가 유효하고 적확할 때도 있지만, 손쉽게 냉소로 치닫는 것보다는 무언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계속 만들어나가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나 역시 냉소의 주역이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한편, 도가니같은 경우는 청각장애 아동학교 성폭력이라 이슈화 된 케이스. 우리 사회에 성폭력에 대한 담론 자체가 과소한 것 같지는 않다. 대신 어떤 방식으로 얘기되고 인지되느냐의 차이가 크다. 가령 ‘공공장소 성추행은 100% 가해자 책임이지만 술에 취했거나 모텔에서 일어난 성폭력이라면 피해자도 20% 정도의 책임은 있어’ 등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든지.

최근 모 대학에도 성폭력 가해에 대한 공론화로 학내가 떠들썩하다. 지난 9월 술자리에서 피해자 여학생이 잠든 사이 동의 없는 신체접촉과 강도 높은 성폭력을 가하였고, 피해자가 먼저 피해사실을 가해자에게 물어보기 전까지 이를 묵살하여 사과하지 않은 채로 수차례 연락을 취했다. 이후 피해자와 대리인단의 요구로 가해자는 사과문을 직접 쓴 대자보를 학내에 공개 게시했다. 그러나 사과문 작성과 게시 전후로 있던 피해자와 가해자와의 폭언과 마찰, 공론화 된 이후 오히려 피해자에게 돌아오는 2차 폭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 얼마나 많은 피해사례가 묻혀 있을까. 이들을 끄집어내어도 “뭘 저렇게까지 한데?” “숨겨도 모자랄 걸 어디 자랑할 게 없어서 유난이다!” 라며 피해자의 신상 안전과 위협이 되는 2차 피해들의 발생…. 한 번 상처받으면 도저히 끊이지 않는 성폭력 피해의 굴레에 착잡할 따름이다.

▲김다흰

“가령 친구이자, 동료이자, 가족처럼 서로 잘 보살펴주거나 나름대로의 관계를 잘 맺고 있던 공동체 또는 관계망 내에서 성폭력이 발생하는 경우, 피해자도 그 관계 내의 평화나 다른 사람까지의 관계를 깨기가 두려워 문제제기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 또는 피해자의 주변인들이 그 평화롭고 가족 같은 공동체를 지켜내기 위해 피해자를 배제해버리는 경우도 많다. 특히 가해자가 그 내부에서 더 많이 사랑받거나 인망이 두텁던 사람이면 그런 양상이 더욱 심각해지기도 한다. 딱히 피해자에게 악감정도 없고, 가해의 해악에 공감을 하면서도 그래도 자신의 관계와 생존을 위해 또는 깊이 있는 어떤 관계망이나 공동체를 지켜내기 위해 작정하고 피해자를 쳐내는 사람들도 있다. 행여 그와 같은 방식으로 공동체가 지켜진다 해도 그 관계는 공동체로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정혜윤

“자신의 고통을 돌보는 데에만 전념해도 다시 일어서기 어려운 상황에서, 공동체의 안위를 걱정해 사건을 덮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또 피해자가 정말 힘들게 용기 내어 사건을 알린다 한들 ‘그런 일 가지고 뭘 그래’ ‘걔가 그럴 애가 아닌데 실수했나보네’와 같은 말들이 너무 쉽게 뱉어지는 안타까운 상황이 많다. 오히려 가해자보다 상처를 주는 사람은 이런 가까운 비가해자이기도 하다. 억울한 일을 당했음에도 자신이 피해자라고 손을 들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한국 성폭력상담소 같은 기관은 피해자가 자기 경험을 스스로 이야기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10년째 진행 중이다. 절대 공론화처럼 모두 알 수 있게 하는 게 아니고, 신뢰할 수 있는 몇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 경험을 나누는 일이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절차도 마련되어 있다. 작게는 몇 사람의 그룹으로, 크게는 아트레온을 대관해서 100명쯤 모이기도 한다. 녹음, 촬영, 외부 유출은 당연히 불가하다.” http://www.sisters.or.kr/ (한국성폭력상담소)

대학생기자 <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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