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해직자들의 외로운 싸움’ 금속노조 하이디스지부 김홍일 사무장-2

<1회에서 이어집니다.>

▲ 하이디스지부 김홍일 사무장

 

- 아직 생산라인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 79명 정리해고 될 때 해고되지 않고 남은 30명이 있습니다. 그 건물에 7층까지 생산현장이 있어요. 공장이 풀로 가동이 되지 않다 보니까 사용하지 않는 층은 임대를 줬어요. 저희가 반도체나 LCD 같이 초정밀을 요하는 작업이니까 그 라인을 새로 꾸미려면 인프라나 유틸리티를 구축하는데 비용이 굉장히 많이 들거든요. 그런데 빈 라인에 들어와서 작업을 하면 훨씬 용이하니까 그 라인을 임대해준 상태였죠. 그런 상황이다 보니 공장을 폐쇄시키면 그 임대라인의 유틸리티나 그 라인을 관리하는 담당자들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쪽 설비를 담당하는 30명은 정리해고 대상자가 아니었어요. 원래 그 층에서 일하는 사람이 46명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정리해고를 하고 이런저런 일이 생기다보니 실제 인원이 30명이 안 되는 거예요. 그때 웃긴 촌극이 벌어진 것이. 4월 중순 즈음 정리해고 된 사람들 두 사람을 해고 무효 시키고 다시 불러들였어요. 사람이 급하니까 그렇게 된 거죠.

그런데 이번에 공장을 빼면서 그 사람들조차도 아웃소싱을 시키겠다고 말하고 있어요. 30명의 손은 필요한데. 임대한 업체와 계약기간이 있으니까 당장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 아닙니까. 하지만 그 인원을 정규직으로 쓰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죠. 그러니 희망퇴직으로 나가서 아웃소싱으로 들어오라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는 상탭니다.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정부”

 

- 노조 측에서 가장 강력히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 현재 회사의 남자 평균 근속은 20년 가까이 됐습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중반들인데, 이 사람들이 희망퇴직을 한다 해도 사실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부양해야 할 가족들은 많고. 그래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고용입니다. 어떻게든 공장을 돌려서 다시 일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사측은 저희를 농락하는 것도 아니고 말도 되지 않는 안을 들고 나왔어요. 3월 말에 희망퇴직으로 나간 사람들과 똑같은 돈을 주겠다, 그리고 저희가 워낙 고용에 대해 강조를 하니 E-ink 대만 공장이나 중국 공장에서 일하게 해주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조건이 어이가 없습니다. 3년 계약직이고. 12년차 생산직 여사원 같은 경우 중국 공장에 가면 연봉이 600만 원 정도 됩니다. 월급이 아니라 연봉이요. 대만 공장은 연봉 1200만원인가 1400만원인가 그래요. 이게 지금 저희를 우롱하는 것이지. 정말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걸었죠. 직전 지회장인 배재형 열사가 돌아가시고 나서 교섭을 매주 1차례 하고 있는데요. 그 교섭 자리에서 이 제안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 4월 1일 투쟁을 시작할 때는 정리해고 된 79명이 주축이 된 건가요?

▲ 네. 사측이 4월 말에 1인당 500만원씩 더 주겠다면서 희망퇴직을 열어놨어요. 하지만 저희가 한 명도 추가로 신청하지 않았죠.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저희의 뜻을 보여준 겁니다.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전자회사다 보니 여성들이 다수 있는데, 대부분 미혼이거나 아직 미취학 아동이 있는 여성이 많아요. 그러다보니 투쟁하는데 육아문제가 생기게 되죠. 그런 이유로 불가피하게 투쟁에 같이 못하고 있는 동지들이 일부 있죠. 그 분들은 주말 집회에 참석하면서 뜻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 3차 대만원정시 지부장과 지회장 단식 모습

 

 

- 어떤 방식으로 투쟁을 진행하고 계십니까?

▲ 주중에는 광화문에 있는 대만 영사관 앞에서 노숙투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산자부와 노동부에 우리의 사정을 알리고, 심지어 대만 E-ink와 영풍위 그룹까지 4차례 원정투쟁도 진행했습니다. 투쟁 중에 극단의 선택을 한 故배재형 열사의 장례를 치르기 직전인 6월 27일부터 대만원정을 진행했습니다. 그 원정이 약 8주 정도 진행이 됐습니다. 8월 23일까지 두 달 정도 릴레이 형태로 대만을 들어가고 나오고 했죠. 주로 타이페이 위주로 원정 투쟁을 진행했어요. 추가로 5차 원정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국내 언론보다 대만 언론에서 훨씬 많은 문제가 부각되고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대만 타이페이 현지 노동청장도 국내를 방문했을 때 저희 노조집행부를 만나고, 광화문 대만 영사관 앞에 있는 농성장을 찾아 격려도 해줬습니다.

타이페이 노동청은 노동청장도 선출직이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 같은 경우 원정 투쟁을 갔을 때도 우리를 지지한다는 보도자료나 성명서를 냈었고, 다른 일 때문에 국내에 왔을 때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 저희 농성장을 방문해 지지해줬습니다. 그때는 우리 국회의원들도 다수 왔어요. 국내 종교단체들도 함께 해줬고요. 하지만 그런 부분들이 부각이 되지 않다보니, 정작 우리 정부는 계속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 우리 정부는 대만 원정투쟁 당시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나요?

▲ 공무원들이나 관계기관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집권 여당의 대표는 강성 노조가 우량 기업을 망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죠. 저희는 회사와 나라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 언론조차도 제대로 부각을 시키지 않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원정투쟁 중에 강제로 추방당하고, 여성분들은 알몸수색도 당하고 했는데. 대한민국 정부는 전혀 대응을 하지 않고 있어요. 대만 정부는 추방당했던 사람들의 재입국을 거부하고 있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대만공항에서 입국허가가 안 떨어져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굉장히 유감스럽습니다. 영사관조차도 수동적으로 움직이고. 출입국 사무소에 1박2일을 감금돼 있을 때도 영사관이나 외교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우리를 보호해 주거나 그런 행동이 전혀 없었습니다.

 

- 대만 정부도 달가워하지는 않는 입장 같습니다.

▲ E-ink의 모그룹은 영풍위 입니다. 이 그룹은 제지업으로 자리 잡은 회사에요. 대만 내에서는 굉장히 규모가 큽니다. 증권이나 은행도 갖고 있고. 대만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영향력이나 명망이 굉장히 크죠. 이미지도 좋습니다. 영풍위 그룹 회장이 대만 총통의 경제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영향력과 대만 정부의 반응이 무관하지는 않겠죠.

 

- 원정 투쟁을 벌일 때 대만 시민들이 많은 참여를 했다고 들었는데요.

▲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 같은 경우 국제사업을 같이 하니까 그 루트를 통해서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1,2차 원정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지는 않았어요. 처음에는 ‘쟤네들 저러다 가겠지’ 생각했겠죠. 직접 와서 저희가 투쟁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저희들도 마음을 다해서 그 사람들을 대했습니다. 그리고 내용을 들여다보니 누가 봐도 영풍위 그룹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거죠. 그 뒤로는 저희들보다 더 강경하게 규탄했죠. 그런 부분들에 대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서로 말도 안통하고 문화도 다르지만 서로 진심으로 대하니까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아요. 저희가 릴레이 원정 투쟁을 할 때는 저희보다 많은 인원이 결합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저희 쪽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대규모로 한국에 넘어 오기도 해요. 다른 건 모르겠고 한국-대만간의 노동활동가들의 교류는 활발해 진 것 같아요. 요즘 여러 가지 소통 수단이 발달하다보니 일정도 공유하고 서로 연락을 계속 주고받고 있습니다. 내년 1월에는 대만 총통선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선이죠. 그 전에 대만에 한 번 가서 저희의 이야기를 이슈화 시키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 2차 대만원정시 대만영풍그룹 본사앞 삭발식

 

쳇바퀴 도는 협상 테이블

 

- 소송도 진행하신다고요?

▲ 지금 현재는 노동부 산하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노동위원회는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가 있는데. 지방노동위에서는 저희의 해고가 부당하지 않다는 결정이 났습니다. 어차피 정부 기관에선 노동조합 보다는 사측 편을 편파적으로 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은 법원이 아니니까. 지방노동위, 중앙노동위 이렇게 2심까지 있는데, 중앙노동위 결정도 아마 금년 중으로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사측과 교섭을 매주 1차례 진행했다고 했는데요. 사측의 태도는 적극적인가요?

▲ 故배재형 열사 장례를 치를 때 분위기가 냉랭했어요. 사측 대표이사도 우리와 이야기를 못하겠다고 말 할 정도였죠. 사측에 법률자문을 해주고 있는 곳이 국내 최대 로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면 대표이사 말고 다른 사람을 내세우라고 한 거죠. 그래서 노무법인 대표가 교섭 대표로 나왔어요. 첫 교섭 자리에서는 자기가 어떻게든 한국 경영진과 대만 E-ink 경영진을 전부 만나서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 좋은 결과를 도출하도록 노력하겠다. 그렇게 이야기했거든요. 그래서 저희도 일정부분 기대했던 것이 사실인데, 시간이 지나고 이야기해보니까 사측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교섭결과를 가져가서 사측 대표이사와 같이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짜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죠.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각오를 말씀해주신다면

▲ 저희의 고용도 중요하지만 현재는 국익을 위해서 싸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싸울수록 점점 애국자가 되는 것 같아요. 진행하고 있는 소송도 지방노동위, 중앙노동위를 거치면 법정으로 갈 것입니다. 민사는 따로 진행을 하고 있고요. 노동위원회는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판단을 하니까. 그렇게 되면 행정소송을 따로 준비해서 법정 투쟁을 대법원까지 가져갈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파주에 있는 LG디스플레이 공장이 원래 LG-필립스 LCD였습니다. 당시 합작 중이었죠. 그곳과 저희 규모가 같았어요. 하지만 공장이 2001년 7월 1일 분사된 상태에서 규모가 더 이상 커지지 않은 겁니다. 15년 동안. 매각 과정 중에 정부에서 제대로 된 판단만 했어도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 하이디스만 망하는 게 아니라 부메랑이 돼서 반도체 사업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대만 같은 경우도 특허가 공유돼 들어와 버리면 우리 업체가 단가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기술력으로 버티고 있는 건데 그 특허를 공유해버리면 게임이 안 되죠. 하이디스만 망하는 게 아닙니다. 산업 전체가 망가지는 겁니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