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 속 얼굴보다 복면 속 주장에 대해 궁금해야 할 때다!
복면 속 얼굴보다 복면 속 주장에 대해 궁금해야 할 때다!
  • 최근원 기자
  • 승인 2015.12.1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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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복면금지법 논란에 부쳐

 

지난해 초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이 한동안 이슈가 됐다. 법안에는 아동청소년의 성폭력 예방을 위해 아동청소년이 나오는 성인물 시청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후 판결에 의하면 성인이 교복을 입고 나오는 성인물을 보아도 처벌 받는다. 한편 다른 판결에 의하면 청소년과의 성관계는 무죄다. 일관성 없는 기준이 논란이 됐다.

 

 

많은 커뮤니티에서 이를 놓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은 가능성이라도 배제하기 위해 금지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과 1차원적인 발상이라는 의견. 개인적으로 무엇이 맞는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최근 비슷한 논란을 동반한 법률이 주목을 받고 있다. 복면착용금지법(복면금지법). 복면을 쓰면 익명을 등에 없은 폭력성이가 커진다는 이유로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법이다. 여론은 물론 언론도 양쪽으로 갈려 치열한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검찰과 경찰은 불법 시위에 가면을 쓰고 참여하면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폭행 등 불법적인 행동이 없어도 처벌 받는다. 그런데 경찰은 복면(보호구)을 쓴 의경들과 시위를 진압하다 물대포로 한 사람을 중태에 빠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처벌은 받지 않고 있다. 심지어 경찰은 아무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일관성 없기는 두 법이 비슷하다.
 

예방에 빠진 대한민국

2014년 4월 16일. 절대 잊히지 않을 날이다. 어이없는 대처로 수많은 목숨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배의 결함이 이전부터 확인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회는 더욱 분노했다. 사후대처도 문제였지만 충분히 예방 할 수 있는 인재였다는 것이다.

세월호의 충격이 가시지도 않았을 시기, 이번에는 메르스 공포가 대한민국을 뒤덮었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질병의 유입은 어쩔 수 없다지만, 전염의 위험은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두 번의 큰 아픔이 지나가자 예방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너무 심하다. 예방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정말 예방이 필요한 부분인지, 그 방법이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세월호는 결함을 파악하고 출항을 금지시켰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메르스 역시 최초 감염자를 외부와 철저히 차단시켰다면 급속히 번지는 것은 막았을 것이다. 하지만 복면을 금지하는 것이 무력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일까? 무력충돌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처벌 대상을 쉽게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면 맞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복면 쓰면 폭력 행사한다?

복면금지법이 화두로 떠오른 것은 지난 11월 14일 열린 제1차 민중총궐기 이후다. 과잉진압과 폭력시위, 두 주장의 충돌로 떠들썩하던 즈음이었다. 여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을 때, 비슷한 시기 터진 프랑스 테러로 IS가 공공의 적이 됐다. 그리고 정부는 난데없이 IS를 예로 들며 ‘복면’을 중요 화두로 만들어버렸다. ‘복면=폭력’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이후 이 논란은 폭력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글을 쓰면서도 의미 없는 논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로 복면과 폭력의 연결고리부터 잘못됐고, 두 번째로 복면이 시위의 전부로 인식되는 상황이 이상해 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복면의 가장 큰 성능은 폭력성이 아니라 익명성이다. 익명,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이유는 내가 폭력을 저지를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떳떳하게 본인을 밝히며 시위를 할 수 없는가?’라는 반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때 가장 많이 들고 있는 예가 성매매 종사자들의 시위다. 상황이 어찌됐건 성매매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받는 사회다. 그들도 자신들의 권리를 사수해야 한다. 하지만 권리를 찾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 수는 없다. 그때 필요한 것이 익명이다. 이런 익명을 필요한 이들이 비단 성매매 종사자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익명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복면이다. 폭력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12월 5일 열린 제2차 민중총궐기에는 복면금지법을 반대하는 의미로 참가자 대부분이 가면을 썼다. 폭력성이 가중될 것이라는 정부의 의견과는 다르게 수많은 가면 착용자들은 평화적으로 시위를 끝냈다. 제1차 민중총궐기와 다른 점을 찾는다면 차벽, 물대포, 가면의 유무 정도가 아니었을까? 누군가가 우려하던 무력충돌의 이유를 복면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는 듯하다.
 

그들이 하는 말, 우리가 보는 것

민중총궐기 이후 언론을 뒤덮은 것은 과잉진압과 폭력시위, 그리고 복면이다. 결국 그들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는 묻혀버렸다. 1차 민중총궐기에는 58개 단체, 2차 민중총궐기에는 118개 단체가 참여했다. 58개의 의견, 118개의 목소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야당도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한 시위 참가자의 말이다. 제2차 민중총궐기에는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도 참여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것이라 믿었지만 현장에서 야당이 이야기한 것은 ‘과잉진압 금지’, ‘평화시위 실현’에 그쳤다는 것이다. 야당도 ‘폭력’이라는 주제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무력충돌이 일어날 만큼 강경히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 사람의 생명이 위험한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발생 후에야 사회의 관심이 집중됐다. 미리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줬다면 그 누구의 부상도 없었을 것이다.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들이 복면을 쓰고 나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리지 않은 채 노래를 부른다. 그가 노래를 부를 때 사람들은 누구인지를 추측하기보다 노래에 집중한다. 노래가 끝나고 나서야 이렇게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갖는다.

복면시위에 대해서는 앞뒤가 바뀌어있다. 그 복면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처벌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들이 누구인지보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 더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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