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였다. 이런 곳에 고아원이 있다니. 십 수년을 고향에서 살았고 또 떠난 이후에도 일년에 서너 차례씩은 줄기차게 드나들어 마치 손바닥 안을 보듯 훤한 그곳인데, 이런 고아원이 있을 줄이야.

하긴 일대에서 가장 높다는 장군산 언저리 으슥한 곳에 위치해 있어서 왠만해선 그 지역 사람들 눈에 잘 뜨이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서울에서 읍내까지 곧바로 오는 고속버스를 탄 준오는 읍내 터미널에서 한참을 물어본 후에야 이곳에 자신이 찾는 고아원이 있다는 걸 알고 택시를 탔었다. 행선지를 얘기하자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을 하는 택시기사와 함께 30여분 간신히 차 한 대가 지나갈 만한 좁은 논둑길과 채 포장이 되지 않아 울퉁불퉁 차가 심하게 흔들리는 산등성이 길을 지나서야 허름한 초가지붕 세 개가 하얀 눈을 무겁게 머리에 올린 채 사이좋게 모여있는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길에는 눈이 소복히 쌓인 채였다. 원래 예정됐던 다소 비싼 요금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선뜻 내밀자 택시기사는 힐끗 준오를 쳐다보며 나갈 땐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고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까 그때 가서 전화를 하겠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택시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돈이란, 참.

소나무들이 우거진 입구에 붙어있는 '석정고아원'이라는 팻말이 그의 눈에 들어올 때까지 준오는 반신반의해야 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곳이 고아원이라는 흔적을 찾긴 힘들었던 탓이다. 이런 다 허물어져 가는 초가집 몇 채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운단 말인가. 단 한번도 고아원이란 데를 가본 일이 없는 준오였지만 이미 여러 방송 등의 매체를 통해서는 몇 차례 본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괴리감은 더욱 커졌다.

어쨌든 틀림없었다. 이미 하루 전 통화를 했고 아이가 그곳에 있다는 확인도 끝낸 상태였다. 발 밑에서 눈 소리가 들려왔다. 가끔 먹이를 찾아 헤매는 장끼의 단말마 같은 울음소리가 산중턱에 부딪혔다가 다시 돌아와 준오의 귀청을 때렸고, 그에 놀란 소나무 가지 위의 눈들이 흩어져 쏟아지는 소요를 일으켰을 뿐 고아원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팻말 옆, 대문조차 없는 공간으로 들어서자 너른 마당이 나왔다. 초가집 세 채가 그것을 가운데로 해서 사이좋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마당 한 편에 나무로 짜여진 듯한 몇몇 놀이기구가 온몸을 그대로 드러낸 채 버려져 있다. 한 겨울 내내 부는 바람과 몰아치는 눈발에 시달렸음인지 색깔이 모두 시커멓게 퇴색된 채. 봄이 되고 눈이 녹으면 분명 본연의 모습을 되찾으리라. 그리고 그 위에서 한 겨울 내내 햇빛이라곤 구경도 못하던 어린 생명들이 저마다 기지개를 켤 것이다. 자신의 머리 위에 꽂히는 어머니를 대신한 따스함에 몸을 내맡기기 위해서.

컹컹하고 어디선지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토담 밑에 마련된 오목한 은신처에서 밤새 몰아닥친 추위에 오들오들 떨다 이른 새벽 간신히 잠에 든 똥개들이 자신들의 달디 단 낮잠을 깨운 이방인의 낯선 발걸음 소리에 쿠데타를 일으키는 모양이었다.

개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언젠가 준오네 시골집에서도 키웠던 것 같은 노란색의 황구였다. 털은 복슬복슬 잔뜩 물이 올라있었지만 왠지 말라 보이는 몸집이 시원스럽지 못하게 짖는 소리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동시에 하얀 색 페인트를 발라 시멘트인지 황토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는 무릎 높이의 토방 위 격자무늬 창살의 창호문이 삐끄덕 소리를 내며 열렸다. 개짖는 소리 사이로 "백구, 조용히 해"라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 직후였다. 어두컴컴한 실내를 비집고 하얀색의 얼굴이 쑤욱, 고개를 내밀었다. 머리가 길다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수녀들이 쓰는 까만 색의 두건 탓이었다.

멀뚱한 눈으로 채 상체를 일으키지도 않은 그녀가 준오를 발견했다. 담백한 눈빛이 준오의 신원을 캐묻고 있었다. 몇 발자국을 더 옮기며 마악 어제 전화했던 김준오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려던 준오를 그녀의 결코 연약하지만은 않은 목소리가 제지했다.

"아, 어제 전화하셨던…, 신문사에 계신다는 그 분 아니신가요?"

"예, 맞습니다."

50대 초반쯤은 되어 보이는 여자가 굽혀져 있던 상체를 세우며 준오를 맞았다. 화장기 하나 없는 맨 얼굴엔, 솥에서 튀겨지다 하얀 색 부엌 바닥 곳곳에 떨어져 내린 검은 들깨 같은 점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가 화사하게 웃었다. 그리고 열어진 문틈 사이로 갑자기 왁자지껄하는 몇몇 어린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을 어르는 어린 여자 보모의 목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컴컴한 탓인지, 쌓인 눈빛에 준오의 눈이 부신 탓인지, 안의 모습을 보는 것은 힘들었다.

그녀가 재빨리 토방 위를 걸어 나와 신발을 신었다.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까만 고무신.

"눈이 많이 내렸는데 .어떻게 잘 찾아오셨네요."

"예."

준오는 읍내에서 택시를 타고 왔다는 소리까지 해야 하나 잠깐 망설이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멀리서 온 손님인데, 안이 추워서 어떡하죠? 저기는 아이들이 있는 방이라서 시끄럽고…."

바로 옆에 이어져 있는 또 다른 초가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여자는 입바른 소리를 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조금 있다가 가봐야 되는데요, 뭘."

토방도 없이 바로 흙벽 위에, 아까 것보다 더 조그맣게 자리한 창호문의 녹이 슨 둥그런 손잡이를 당겼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탓인지 몇 번 실랑이를 한 끝에야 문이 열렸다.

"아까 불을 지펴 놓긴 했는데."

여자가 손바닥에 묻은 황갈색 녹을 털어 내며 고마운 얘기를 했다.

그러고 보니 훈훈한 방안의 냄새가 벌써부터 준오의 코끝을 찔러오고 있었다. 앞서 들어간 여자는 방 한 구석에 마련된 전깃불 스위치를 눌러 천장에 매달린 백열등에 불이 들어오게 하더니 준오를 아랫목 쪽으로 앉게 하고서는 차를 가지고 오겠다며 다시 나갔다.

방바닥은 아직 싸늘했지만 춥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추위에 떨었던 몸이 녹으면서 늘어지게 한숨 잤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한쪽 벽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형상이 애처롭게 매달려 있을 뿐 방안은 기분이 나쁘다 싶을 정도로 깨끗하게 정리돼 있다. 거기에는, 정리와는 거리가 멀게 다소 너저분하게 사는 자신의 생활습관도 한 몫 했을 것임이 분명한 것이었지만.

잠시 후 다시 문이 열리더니 아까의 중년 여자가 아닌 앳된 용모의 처녀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얼굴에 살짝 홍조가 피는 걸로 보아 사춘기를 맞은 소녀일거라고 준오는 짐작해 보았다. 그녀는 손에 들린 쟁반에서 하얀 꽃무늬가 그려진 찻잔을 조심스럽게 준오 앞에 내려놓더니 수녀님은 금방 들어올 거라고 들릴락 말락하게 뇌까렸다. 아까 들어올 때 어린 아이들의 울음을 달래던 보모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가녀린 몸, 좀 전의 중년 여인에 못지 않은 하이얀 얼굴. 이렇게 수수해 보일 수도 있을까. 어떤 세상의 손길도 미치지 않은 깊은 산 속 옹달샘 마냥 그녀는 그렇게 투명해 보였다. 그리고 준오는 평생 그녀를 그렇게 기억했을 것이다. 최소한 그 곳을 떠나오는 택시 안에서 돈만 밝히는 택시기사의 얘기를 듣지만 않았더라도 말이다. 그는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거기 쬐끄만 아가씨 봤어요?" 하고 말을 던지더니 "그렇다"는 준오의 대답에 "걔가 얼마나 유명한 아인줄 알아요?" 라며 아주 의외의 얘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바로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출, 전국 방방곡곡의 매춘가를 떠돌며 윤락을 하다 결국은 이곳까지 굴러 들어와 읍내의 다방에서 일하게 되었다는…어느 날 무슨 이유에서인지 손목을 칼로 그었고 그 길로 병원에 실려가 신음하기를 두어 달 여,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이곳 고아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그 청명함 뒤에 그런 세상이 간직돼 있었다니, 얘기를 들은 준오의 마음엔 오히려 신비로움까지 겹쳐 드는 것이었다.

그녀가 쳐다보는 준오의 시선을 의식했음인지 찻잔을 내려놓자 마자 일어나 황급히 자리를 떴다.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창호 문을 비집고 들어온 몇 줄기 햇살 사이로 긴 머리를 풀어 헤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찬 온돌방에 지펴진 군불 때문이리라. 얼었던 몸이 녹으면서 자꾸 눈꺼풀이 내리 깔렸다.

갑자기 덜커덩 소리가 나면서 준오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잠시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그의 시야에 새하얀 눈밭이 보였고 그 광경을 가로막고 시커먼 실루엣 하나가 마악 들어오고 있었다.

준오가 한껏 실눈을 뜨고 눈밭에 반사돼 시각을 괴롭히는 햇볕의 양을 조절하고서야 실루엣의 정체가 드러났다. 아까의 중년 여인이었다.

그리고 활짝 웃는 그녀의 품에 안겨 있는 어린 아이. 찡그려졌던 준오의 눈이 함지박 만하게 커졌다.

"저…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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