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이 지났다 용산, 그날 망루에서는…
7년이 지났다 용산, 그날 망루에서는…
  • 이수호
  • 승인 2016.01.2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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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갈노> 이수호의 일흔 즈음에

 

 

7년 전 일흔둘에 불에 타 돌아가신 
이상림씨를 아시나요. 
시골서 올라와 용산 역 맞은 편 한강로 2가에서 
20여 년을 남의 가게 빌려 음식점 하며 
어렵게 먹고 살며 아이들 공부시키고 나이 들어 
이제 겨우 자리 잡고 막내아들 부부와 함께 
호프집도 운영하며 좀 살게 됐는데 
어느 날 졸지에 허울 좋은 ‘도시환경정비사업 지구’가 되면서 
땅주인 건물주인 모두 보상 받고 사라지고 
세입자만 엄청난 권리금 날리고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삶의 터전마저 빼앗기고 
이전비 몇 푼에 알거지로 쫓겨나게 되었다. 

갈 데도 올 데도 없는 이들 
건물 시공할 때까지라도 편안하게 영업하고 
집 지을 동안 장사할 가건물이라도 마련해 달라는 
소박한 요구로 손이야 발이야 매달렸건만 
발주자는 말할 것도 없고 시공업체도 구청도 시청도 
나는 모른다 내 책임 아니다 발뺌만 하며 
철거용역깡패 보내 욕설에 위협에 못 살게 하는데 
경찰은 오히려 이들을 비호하며 불법을 방조하니 
억울하고 분해서 살 수가 없어 
이 엄동설한에 이대로 물러나 갈 곳도 없으니 
우리도 힘을 모아 싸울 수밖에 없다 하고 
피눈물 흘리며 생존권결의를 다지는데 
누군가는 앞장서 대표가 돼야 하는데 
나이 많고 그곳에서 오래 장사한 
이상림씨 몫이 되었다.
 
졸지에 용산 4지구 철거민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함께 살기 위한 길 찾아 이리저리 뛰던 중 
결국 결사항전의 외길 밖에 없어 
남일당 옥상에 망루를 설치하게 됐다. 
살기 위해 땅에서 쫓겨 하늘로 올라가 
여기 사람이 있다 외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억울한 철거민의 피울음을 듣기는커녕 
옥상으로 올라간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서울청장 김석기를 앞세워 경찰 대테러특공대를 투입 
강제 폭력진압에 나섰다.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웃도는 한겨울 심야에 
얼음물대포를 쏘아대며 크레인까지 동원한 공중침투와 
다량의 인화물질로 심각한 위험이 예측됐는데도 
엄청난 숫자의 전경 체포조를 올려 보내 
가난하고 힘없는 철거민을 대상으로 
잔인한 대테러 진압작전을 펼치더니 
결국 염려했던 화재가 발생하고 
삽시간에 아수라장 되어 
철거민 다섯 명과 전경 한 명이 비명에 가고 
많은 사람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것은 분명 여러 규정과 관례를 어기며 
동절기 야간에 폭력적 강제진압을 자행한 
대한민국 경찰의 미필적고의 살인행위였다. 

그때 일흔둘 이상림씨도 불에 타 돌아가셨다. 
그 밤 망루에 오르면서 이상림씨는 아들에게 
오늘은 내가 가서 밤을 새며 지킬 테니 
너는 좀 편안하게 자라 
나는 이제 잠도 없지 않니 하고 웃으시며 
그래도 아버지가 들어가서 좀 쉬세요 
강권하는 아들 손 뿌리치고 
뚜벅뚜벅 망루로 오르셨단다.

<전태일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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