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갈노> 이수호의 ‘일흔 즈음에’

 

 

2월 중순이 지나면 여러 단체의 총회가 시작된다 
노동조합도 총회를 가름하는 대의원대회가 열린다 
내가 바빠지는 계절이다 
내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전태일재단이나 이주노동희망센터는 
회의 준비에서 진행까지 신경 써야 하니 부담도 크지만 
고문이나 이사, 지도위원 등으로 참여하고 있는 단체들도 
총회 날은 참석해서 최소한 덕담이라도 한 마디 해야 하니 
그 부담도 장난이 아니다 
요즘은 나도 모르게 말을 시작하면 중언부언 길어지고 
말꼬리가 횡설수설하는 경향이라 
5분을 넘기지 않으리라 작심하고 
원고를 미리 작성해서 읽기로 했다 


내 친정인 전교조 대의원대회 격려사를 부탁받고 참석했다 
박근혜정권에 의해 법 밖으로 밀려날 위기 앞에서 
분위기는 무겁고 긴장감이 팽팽했다 
이런 후배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 같은 선배들이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이런 어려움과 고통을 넘겨주진 않았을 텐데 
안타까움과 회오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래도 어떻게 할 거냐 
사회와 역사는 정반의 길항 속에서 
요동치며 몸부림하는 것 
지금 세태가 반사회 반역사가 더 강해서 
우리의 삶이 억압당하고 뒷걸음친다고 
원망하고 한탄하며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니 
부디 사랑하는 후배들이여 
어려울 때일수록 처음으로 돌아가 
근본과 원칙을 중히 여기고 
노동조합의 원칙인 단결을 마음에 새기며 
강고하게 똘똘 뭉쳐 모두 함께 어깨 걸고 
다시 힘차게 나서야 하지 않겠니 하며 
30년 전 전두환 시절 언 땅을 뚫고 솟는 새싹처럼 움텄던 
교육민주화선언의 첫 구절과 
3년 뒤 그 싹이 자라 푸르게 교육현장을 뒤덮었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선언문 마지막 단락을 읽는데 
나는 울먹거리고 후배들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데 
한 편 부끄러우면서도 알 수 없는 뜨거움이 
밀려 올라오고 있었다 
마지막 순서로 위원장을 비롯하여 지부장 등 간부들이 앞으로 나와 
‘단결투쟁’ 붉은 띠 머리에 불끈 매고 투쟁 결의를 다지는데 
앞에 앉아 있는 나에게 누가 다가와 
그 고은 붉은 머리띠를 내밀며 
“선생님도 매셔야죠” 하며 
벗겨진 내 머리에 질끈 동여매주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머리를 맡기며 쳐다보니 
우리 자랑스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위원장 김용섭 
내 신일고등학교 때 제자가 아닌가 
제자가 매준 머리띠를 매고 후배들 사이에 서서 
단결투쟁가를 함께 힘차게 부르는데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고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것이었다

<전태일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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