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언론=전라도닷컴> 봄의 말씀 ③

▲ “하이간 꽃봉우리같이 이뻬. 시푸런 것이 없을 땐디 시푸런께 귀하제.” 곡성장 장점이 아짐이 키운 봄동.

쫄기는커녕 더욱 푸르러진 자유

<일반 포기배추가 정착민의 느낌이라면 봄동은 유목민 같다. 스스로 자기 몸에 저축한 야성의 에너지로 당차고 분방하다. 자기 자라고 싶은 대로 맘껏 잎을 퍼뜨린 채 눈도 비도 서리도 마치 즐기기라도 하듯이, 겨우내 더욱 푸르러진 자유!> (김선우의 ‘봄동 봄똥’ 중)

겨우내 움츠러들거나 쫄기는커녕 더욱 푸르러진 자유라니!

다시금 ‘겨울공화국’을 사는 이들에게 저 당차고 푸르른 낯빛이 건네는 전언.

“눈을 딱 제치문 이것이 나와. 빵긋하니 웃고 나와. 사람이다 허문 아조 강헌 사람이제. 강한께 이 시한에 이라고 전딤서 버티고 있제.”

“하이간 꽃봉우리같이 이뻬. 시푸런 것이 없을 땐디 시푸런께 귀하제.”

“서리도 맞고 눈도 맞고 짠뜩 전딤서 커논께 맛이 기심심허들 안해. 단 맛이 지피 들었어.”

진도 군내면 녹진리 흙밭에 엎드린 어매들의 봄동 예찬이다.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봄을 부르는 주문이 되는 이름 봄동. 춥고 긴 겨울을 견디고 겪어낸 자에게 주어진 합당한 대가인 양 제 이름자에 빛나는 ‘봄’을 얹었다.

“그 추우(추위) 속에 기언치 커나왔단 것이 장하제.”

‘대평채소-여자의 일생’이란 간판을 달고 곡성장에서 채소장사를 하는 장점이(63) 아짐의 말씀. “여자로 사는 일생이란 것이 너모나 힘들제. 인자 아그들도 다 키우고, 내 고생은 거의 넘어갔어. 좋은 날이 인자 오고 있는 중이여.”

‘오고 있는 중’이란 그 믿음으로 그 여자의 일생에 봄날은 올 것이니.

 

 

▲ 한사코 들러붙는 뻘흙과 씨름하며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 초록 실오라기 감태를 길어올리는 중인 박안순 아짐. 완도 고금도 화성리 갯벌.

바닥을 더트며 살아온 자만이 아는 어른의 맛

남녘이라 해도 봄은 미처 당도하지 않아서 산천에 초록이 귀하건만 갯벌 위에 초록 물결 남실거린다.

한껏 허리 숙여 ‘ㄱ’자 몸뚱이가 된 채 그 초록 실오라기를 길어올리고 있는 중인 박안순(69·완도 고금도 화성리) 아짐.

발자국 디뎌진 자리마다 갯벌은 움푹움푹 패여 있다. 오늘의 노동의 자취, 저토록 선연하다.

“푹푹 빠지는 디서 다라이 끄꼬 댕길란께 징해. 여러 사람 생각험서 전디고 허는 것이제. 우리 영감 믹이고 자석들한테도 부치고.”

도시 사는 자식들한테도 전해질 ‘고향의 맛’인 것이다.

“전에 택배 없던 세상은 어찌고 살았으까.”

철철이 바리바리 싸보내는 택배 보따리는 어매에겐 ‘존재증명’과도 같은 것.

“날이 너무 다수와갖고 근가 올해는 감태가 안 질었어. 요거이 끝물이 아니라 인자 시작이여. 근디 금세 뻐셔져불어. 이달 말일이문 못해.”

감태는 날씨나 온도에 예민하다. 또 오염된 갯벌에선 자라지 않는다. 꿀(굴), 매생이에 이어 감태까지 매고 나면 바야흐로 봄.

“봄 되문 할 일이 또 줄을 서제. 미역 하고 나문 또 다시마 해야 하고 철철이 일이 안 끊쳐. 여그 바닥이 걸어서 여그 어매들은 고생이 많애, 일복이 많애.”

섬처녀가 섬으로 시집와서 뻘바닥에 수그리고 쪼그리고 엎지고 기어댕기며 살아온 세월 동안 어느덧 섬할매가 되었다.

“감태는 쌉싸름하니 상깃한 맛으로 묵제. 요새 젊은 애기들은 안 묵어. 어른 맛이여.”

사느라 바닥을 더트며 쓴맛 단맛 짠맛 매운맛 다 봐온 어른만이 알 수 있는 맛. 겨울과 봄 사이에 걸쳐져 있는 감태 맛이기도 하다.

 

 

▲ 콩 몇 알로도 재미 한 섬.

“저 땅이 아까와서 못 간다고 전해라∼∼”

동그랗게 둘러앉은 자리, 여학교 교실마냥 웃음이 와크르 번진다.

곡성장 이용희(75) 할매의 곡물가게에 모태 앉은 이혜자, 김희순, 허경자 할매. 장날마다 오다가다 만나는 ‘닷새 친구’들이다. 난로에 따땃이 손만 쬐는 게 아니라 ‘꺼문콩’ 구워서 옹잘옹잘 한 알씩 깨물어 먹는 고소한 재미가 시방 한창이다.

“요거이 촌에 사는 재미여. 도시에서는 요런 재미 못봐. 도시사람은 요런 거 맛난 중도 잘 몰르고 요런 거 묵고 앙겄을 시간도 없고.”

콩알 반쪽도 항꾼에 나눠먹는 그 다순 마음자리 사이에 봄은 들어앉아 있으니. 가게 앞 기웃거리는 누구든 ‘어서 오쇼’하고 불러들여 다짜고짜 콩알을 입에 넣어준다.

 

▲ 항꾼에 모태니 웃음이 와크르 번진다. 곡성장 이용희 할매의 곡물가게에 둘러앉은 ‘닷새 친구들’.

 

“요놈은 당아 안 뽀까졌네, 요놈 몬차 잡사.”

“근디 엊지녁에 ‘가요무대’ 봤능가. 노래 잘한 사람은 다 나왔더만.”

어매들 사이에 요즘 최대의 인기곡은 ‘못 간다고 전해라’라는 유행어를 낳은 이애란의 ‘백세인생’.

“안 델러온께 못 가제, 나는 언제든 갈 준비가 되아 불었어. 언제든지 오라글문 가야제. 한번 났다 한번 가는 거여. 자석들도 다 여우고, 나 할 일은 인자 다 했어.”

언제든 갈 준비가 되었다는 할매들이지만, “이날평상 농사 지서온 좋은 땅을 내뿔고 갈라문 차말로 아까와”라고 한 목소리.

“내가 가문 땅이 무콰진께(묵혀진께) 나는 ‘저 땅이 아까와서 못 간다고 전해라’라고 말할 참이여.”

“자석들이 누가 엄마아부지 산 데 와서 일할라고 하가니. 인자 농사는 누가 지스까. 우덜은 그 꺽정을 한디, 정치허는 사람들이고 높으신 사람들이고 모다 그 꺽정을 안해. 긍께 꺽정이여.”

장터바닥 한가운데 펼쳐지는 어매들의 우국(憂國).

“나이가 멀어지문 일도 멀어져. 그래도 나는 내 힘 단(닿는) 디까지는 할 판이여. 팔십 살까지는 해야제! 앞으로 사 년 남았어.”

76세 할매의 맹세, 그 애틋한 맹세들로 이 땅의 초록의 평수는 간신히 지켜지고 있나니.

 

사진 박갑철·최성욱·남인희·남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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