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수의 청춘, 생각> 봄은 어리다, 난 추하다

학교에 붙어있는 뒷산이 그렇게 큰 줄 몰랐다. 언덕보다 조금 큰 정도의 뒷산으로 생각했는데 생각 밖이었다. 학교를 다니다가 처음으로 산을 올랐다. 점심을 먹고 캠퍼스를 거닐다가 문득 운동 삼아 올라가볼까 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참을 오르다보니 꽤 큰 산이라는 것을 알았다. 학교가 산을 안고 있는 줄 알았는데, 기껏 해봐야 학교는 산 한 쪽 귀퉁이를 잡고 붙어있을 뿐이었다. 약수터도 여러 개에, 곳곳에 생활체육시설들도 잘 갖춰져 있다. 봄이라서 그런지 등산객이 많다. 사람이 북적인다.

 

 

안산. 학교의 뒷산 이름이 안산이었다. 봄이 온 안산은 따뜻하고 화사하다. 사람들이 북적이니 산에 가득 활기가 차다. 이름이 공교롭게도 안산이라니, 산을 오르면서 봄을 생각했다. 안산의 봄을 생각했다. 샛노란 개나리가 안산을 뒤덮고 있다. 밝고 어린 생명력, 꽃은 늘 산을 오르는 사람에게 기쁨이다. 기쁨어린 눈으로 꽃송이 하나하나를 훑는다. 등산객들은 봄에 취해있다. 산 정상의 작은 정자에는 등산복을 차려입은 아주머니들이 오밀조밀 모여 앉아있다. 정자에 걸터앉아 시끄럽게 수다를 떤다. 웃음이 등산로를 따라 떠내려가고 있었다. 봄은 밝고 어리다.

이처럼 피어나는 봄은 밝고 어리다. 팽목항에서 비보가 들려온 봄도 벌써 두 해를 넘겼다. 고등학교 졸업반, 학교 교실에서 소식을 전해 들었던 때는 지금도 선명하다. 고등학교 교실에서 고등학생들의 죽음을 전해 들었다. 손바닥만 한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이어폰을 꽂고, 자율학습 시간에 종일 뉴스채널을 듣고 있었다. 처음 사고 소식부터 구조 진행 소식과, 결국에는 처참했던 구조 결과의 내용까지. 평소에도 공부 안하고 자율 학습을 핑계 삼아 라디오를 들어왔던 탓에, 우연히도 그 모든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중계방송으로 전해들을 수 있었다. 사고의 첫 소식을 듣는 순간에 들었던, 설마 우리나라 바다에서 난 사고가 더 크게 번지겠냐는, 설마 구조가 이루어지지 않겠느냐는, 그 순간순간의 안일한 마음마저 선명하다. 두 해가 넘어가는 오늘, 그 마음이 너무 선명해서 슬프다.

아직도 아침 뉴스를 듣다보면, 당시의 소식을 전해주던 앵커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교실에서 절망적인 오보와 구조 진척을 중계 받으며, 본래 못하던 공부는 더 집중을 받지 못했고, 자율 학습 시간에 슬쩍 산책을 나가 운동장 주변에 앉아 있곤 했다. 봄이었다. 꽃은 화사하고 밝고 어렸다. 운동장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모래가 소용돌이치고 그 가운데로 축구하는 아이들이 빨려 들어갔다. 커다란 소용돌이는 아이들을 잡아먹고 축구 골대를 잡아먹고 내가 앉아 있는 자리까지 끌어당기고 있었다. 한 달을 넘게 특집 뉴스를 들으며 운동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꽃의 잎이 지고 그것마저 소용돌이가 삼킨다. 봄을 삼킨다. 밝고 어린 봄을 삼킨다.

슬픔이 모여 일 년을 이룬 작년 봄에는 고등학생 교복을 벗고, 광화문의 빈소를 찾았다. 저녁이 되자 바람이 불고 날씨가 쌀쌀했지만 광화문에는 끝이 안 보이는 줄로 가득했다.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부터 정장을 입고 있는 회사원,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까지도 모두 꽃샘추위가 찾아든 봄의 저녁 속에 하얀 국화를 들고 서 있었다. 천막 아래에 서 있는 유가족들의 얼굴에 드리운 깊은 그림자, 영정 사진 앞에, 손에 들린 부끄러운 국화를 놓고 얼른 그곳을 빠져나왔다. 봄은 어리기만 한데, 가져다 놓인 꽃은 너무 시들었구나. 광화문의 봄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날 밤 나는 추했다. 추모를 마치고, 늦은 전철을 잡아타고 돌아온 기숙사에서 나는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하루 종일 그 국화를 놓으러 가겠다고 생각하다가, 그 하루는 너무 쉽게 나를 놓아준 것만 같았다. 동기 녀석들을 불러 모아 편의점 앞에서 소주를 뜯었다. 허기진 마음에 채워 넣을 것은 술 밖에 없다. 울면서 소주를 마셨다. 추하게 울면서 소주잔을 비웠다. 필름이 끊길 정도로 허겁지겁 소주를 삼켰다. 그 하루를 삼켰다. 그날 밤 나는 너무 추했다. 떠나간 봄은 너무 어린데, 그 앞에 선 나는 무성한 여름이다. 여름인 내가 너무 추했다.

 

 

희생자들이 물론 모두 봄이었던 것은 아니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희생과 죽음이라는 것에는 값어치 매길 수 없는 슬픔이 뒤따른다.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이 그럴 수밖에 없다. 아플 수밖에 없고 아파할 수밖에 없다. 또 누군가에 의해서, 우리 사회에 의해서 생겨난 죽음, 즉 희생은 더 아플 수밖에 없다. 그토록 당연한 슬픔과 아픔에 대해, 사회의 이익을 위해 또는 효율을 위해, 빌어먹을 이성과 냉정한 판단력을 위해 눈물을 아예 거두어야 한다는 주장은 절대 설득력 있을 수 없다. 솔직하지 않기를 억압하는 것은 결코 정당할 수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그 당연히 애달픈 희생에 대해서, 그 중 봄의 희생이 갖는 의미를 더 들여다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슬픔에는 덜한 슬픔은 없지만 더한 슬픔은 있다. 파릇파릇하게 피어나, 여름의 녹음을 만들 수 있었던 봄의 신록이 당한 억울한 희생 앞에서 우리는 더 마음 아파하고 괴로워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여름이고 가을이며 겨울이기 때문이다. 더 무수한 계절을 겪은 어른은 아이의 죽음에 더 슬퍼할 수 있다. 더 무수한 사명과 책임감을 지고 있는 어른은 아이의 죽음에 더 많은 죄책감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

팽목항 앞바다에 가라앉은 아이들보다 나는 고작 한 살이 더 많았다. 고작 한 살. 그 한 살의 나이에도 수많은 책임감이 나를 짓누른다. 조금 더 삶을 살아본 사람들이, 더 많은 경험을 해 본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려고 했다면. 추한 것은 소주를 먹고 우는 것이 아니다. 여름이 되고 어른이 되어 뒤따르는 사명과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것이 추하고 부끄럽다. 봄이 피어나지 못하고 바다에게 삼킨 것을 어쩔 수 있었겠느냐고,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났지 않느냐고, 떠들어대는 어른들이 추하고 부끄럽다. 살아가는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냐고, 세상을 거스르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여름을 토닥거리는 계절들이 추하고 부끄럽다. 그리고 그 많은 말들 가운데에서 쭈그려 앉아있는 여름, 그 자신이 추하고 부끄럽다.

작년 겨울에 다시 광화문을 찾았다. 그곳에는 빈소도, 노란색 리본도 여전히 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향을 피우고 부끄러운 영정 사진 앞에서 잠깐 기도를 했다. 겨울의 고독 속에서 나는 지독하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무엇에 떳떳해서 다시 이곳을 찾았을까.

아무것에도 떳떳하지 못하다. 나는 추하다. 추한 나를 알고 있다. 그러나 추하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슬퍼하고 있다는 것이다. 슬퍼서 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 추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계속 부끄러워하기로. 그래야 조금이나마 떳떳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2014년 봄, 그 날의 교실에서 메모해놓은 헌시를 두 해의 슬픔 앞에 겨우 내놓는다.
 

거뭇거뭇해진 바깥에
쓰라리지 않은 어매의 바다가
게 어딧으랴마는
아직은 파도를 일으켜선 안 된다
고운 살골이 부서져 흩어질까
울돌목의 바람도 머뭇이는데
감히 기러기가 우짖고만 가겠는가
진도, 너 큰 섬아
아이의 외침으로 접어 만든 종이배를
수면 위로 뜨어올려라 펄펄-
아직은 동아줄을 놓아선 안 된다

- ‘울돌목1’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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