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의원은 장애인 부모들의 진짜 고충을 알까?
나경원 의원은 장애인 부모들의 진짜 고충을 알까?
  • 류승연 기자
  • 승인 2016.04.28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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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그리고 생각> 류승연

장애 아이의 부모로 살다보니 선택을 강요받는 일이 생긴다. ‘개인’이 아닌 개인보다 큰 ‘우리’를 위해 행동에 나서줄 것을 요청받게 되고, 나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정확한 명칭은 까먹었지만 ‘장애인 부모회’ 정도로 추정되는 단체의 존재를 알게 된 건 2년 전이었다. 함께 복지관에 다니는 한 언니로부터 선배 장애맘들의 활약상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로부터 지원받고 있는 2개의 바우처 카드가 선배 장애맘들의 피땀 어린 투쟁의 결과물이란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선배맘들 아이가 어릴 때는 그런 것도 없었어요. 다 자기 사비로 애들 치료시키고 그랬지. 지금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삭발투혼도 감행하고…. 진짜 대단하다니깐. 존경스러워.”

물론 아이의 한 달 치료비에 비하면 나라의 지원이라는 건 보잘 것 없는 정도지만 이만큼이라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건 모두 앞서 장애 아이를 키운 엄마들의 힘이었다.

그 때는 그저 감탄과 존경만 하고 끝.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복지관 언니가 함께 해줄 것을 원하는 눈치가 보인다. 일할 사람이 너무 없단다. 다들 자기 아이 키우느라 바빠서 정작 자기 아이가 살아갈 이 사회의 복지 제도를 바꾸기 위한 일에 힘을 보태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잠시 마음이 동해서 동네에 있는 부모회 사무실도 찾아가보고 상담도 받아보고. 하지만 그걸로 땡. 마침 그 즈음 나 스스로를 찾아가는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해서 장애인 부모회의 일은 뇌리에서 사라졌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알게 된 엄마 한 명. 뇌병변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 엄마는 부모회 일에 열심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온 연락. “내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기자회견이 있는데 머리수를 많이 보여줘야 해요. 부모님들의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2012년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단식농성과 천막투쟁, 삭발 투혼 등으로 일궈낸 발달장애인법이 2014년에 제정되고 실행되었는데, 이젠 법의 제정과 실행에만 머무르지 않고 아이들의 생의 주기에 맞춘 ‘구체적인 정책안’을 마련하기 위해 엄마들의 힘이 필요하다는 호소였다.

마침 다음 날은 일정이 있었던 터라 정중히 거절하고 나중에 차 한 잔 하며 얘기하기로.

며칠 후에 또 연락이 왔다. 그 날 기자회견이 기사화 된 뉴스를 보내왔다. 뉴스를 살펴보니 이 날 모인 부모는 100여명 정도. 서울시 정책책임자 면담을 요청하다 경찰들과 몸싸움까지 일어난 모양이었다. 그 기사를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엄마에게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정말로 솔직한 내 마음을 말하자면, 이런 식의 몸으로 하는 투쟁도 ‘필요’는 하지만 나는 하고 싶지가 않았다.

대치동에 살던 어린 시절부터 “데모는 나쁜 것”이란 부모님의 세뇌를 받으며 자랐다. 대학에 들어가니 과 선배들이 총학생회에 들어올 것을 권유하는데 그들의 말을 들어보니 ‘무조건적인 비난’만 있을 뿐 ‘대안의 제시’는 하나도 없었다.

“데모는 나쁜 것”이란 인식은 더욱 강해졌고, 즐겁게 놀기 바쁜 강남의 여대생에게 학생운동 같은 건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인식이 처음으로 바뀐 건 사회부 기자를 하면서다. 국가보안법으로 고통 받고 있는 피해자를 한 명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인터뷰 내내 눈물이 주르륵. 난 그런 삶이 이 세상에 내 주변에 존재하는지도 몰랐고, 그런 부당한 일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것도 몰랐다. 국보법 폐지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때론 투쟁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삶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 정치부 기자로 발령, 국회를 출입하면서 나는 매일 정문 앞에서 피켓을 걸고 있는 1인 시위대를 만났다. 300여명의 국회의원과 몇 백명의 기자단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투명인간 취급하는 1인 시위대. 가끔 국회 앞에 대규모의 시위대가 올 때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 국회 안에선 그날의 점심 메뉴보다도 관심을 못 받았다.

그러면서 확실히 알게 됐다. 몇만명 이상이 모인 촛불 시위가 아닌 이상 시위나 투쟁으로는 정치권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걸.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나 역시 시위대에 하등의 관심도 두지 않게 되었다.

내가 장애인 부모로서 시위에 동참하고 싶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시위에 나서는 부모들을 보며 “힘든 일 하시네요. 쉽지 않은 일인데 존경스럽습니다”라고 말은 할 수 있지만 정작 내 자신은 ‘소용없는’ 일에 에너지를 뺏기고 싶지 않은 것이다. 물론 소용없다고 일축해 버릴 수도 없는 게, 그들의 노력을 통해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됐고 지금 내가 받고 있는 각종 복지제도가 확립된 건 분명하지만.

하지만 이런 거다. 그 날 장애인 부모들이 서울시청에서 힘들게 몸싸움까지 벌였지만 과연 박원순 서울시장은 눈이나 한번 깜짝했을까? 어느 한 명의 국회의원이라도 보좌관에게 “장애인 부모들의 요구사항 좀 추려봐. 필요한 일이니 꼭 알아봐”라고 지시를 내렸을까?

장애인 부모로서의 고충을 전면에 내세운 나경원 의원이 마지막으로 관련법을 발의한 건 언제일까? 아니, 알기나 할까? 장애인들이 태어나 사회에 나가기까지 진짜로 필요한 생애 주기별 요소가 무엇인지?

대한민국 99%의 장애부모들처럼 아이 옆에서 24시간 365일 함께 하며 고달파본 경험이 없는 그녀가, “일을 쉬어 본 적 없다”는 말처럼 늘 장애 아이를 돌봐줄 고급인력이 옆에 상주해 있던 그녀가 진짜로 장애인 부모들의 고충을 알기나 할까?

아니 아니, 내 대답은 ‘NO’다. 정치를 하고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시위대는 늘 접하고 살기에 늘 무시를 하고 지나가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인 것이다. 하등의 관심도 없는.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 시위 외에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할 방법이 없는 그런 삶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로 초점이 맞춰진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시위에 참여하기 싫으니 그냥 우리 아들만을 위한 삶을 살다가 내가 죽을 때 아들도 함께 데리고 떠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인가?

아직도 확실히 정하지는 못하겠다. 정책을 만드는 정치권의 현실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이 사회에 기대하는 게 없다. 제도도 복지도 사람들의 인식도…. 나는 아무것에도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열심히 살만큼 살다가 내가 죽을 때 아들을 데리고 떠날 생각이다.

그렇지만 지레 포기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비겁한 일이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위에 나가 몸싸움하고, 단식도 하고, 삭발을 하지는 않더라도 그 사람들과 투 트랙으로 병행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일.

정책을 만드는 건 국회의원이 아니라 정책보좌관인 것도 알고, 그들도 할 일이 많아 요구만 하면 들어주지 않으니 법 내용을 구체적으로 문구까지 다 완성해서 의원이 오케이 사인만 하면 되게끔 만들어 손에 쥐어줘야 한다는 것도 알고, 국회의원들 핸드폰 번호도 원하면 언제든 알 수 있고, 한때 어깨동무를 하고 술을 마시던 의원들도 아직 국회 안에 있으니 아무래도 장애인 부모회에서 하는 것보단 내가 나서서 미팅을 잡는 게 조금이라도 더 빠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한두 번 만에 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정치적인’ 방법은 알고 있으니까 그런 식의 도움이라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뇌병변 아이 엄마와 차를 마실 때 얘기를 해야겠다. 솔직하게 마음을 전해야겠다. 앞으로도 시위에는 동참하고 싶지 않지만 그건 개인적인 이유들 때문이고 대신 다른 쪽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고, 그래도 되겠느냐고, 어서 연락을 해봐야겠다.

<주부/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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