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박그림 녹색연합 공동대표

▲ 박그림 녹색연합 공동대표

‘설악산 케이블카 취소’ 현수막이 내걸릴 날이 언젠가 하는 꿈을 꿨었습니다.

설악산은 우리에게 어떠한 존재입니까? 산은 나와 어떤 관계입니까? 설악산은 천연 보호구역,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구역, 백두대간 보존지역,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 등 다섯 개의 법적 보호 장치로 지금까지 그나마 잘 보존이 되어왔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28일 환경부에서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놓아도 좋다고 승인을 했죠. 그것도 동계올림픽과 연계해서 조기에 설치하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환경부가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놓으려고 컨설팅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짓들을 벌이고 있습니다.

설악산은 박근혜 대통령의 산도 아니고 강원도 양양군의 소유도 아닙니다. 설악산이 있으므로 많은 국민들, 또 우리들이 갖는 그 자부심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끊임없이 생물을 품고 길렀던 그 자리에 8인승 곤돌라 53대를 돌려 연 60만 명을 실어 나르겠다는 그 짓들은 반생명이며 자본의 폭력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자본의 먹잇감으로 끊임없이 자연을 내줘야 합니까? 언제까지 우리는 수많은 풍경을 잃어버린 뒤에 후회해야 합니까? 우리 아이들이 이 다음에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든든해집니까.

전 국토의 4%에 지나지 않는 21개의 국립공원, 그 가운데 1.6%에 지나지 않는 자연보존지구 조차도 우리가 지킬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고개를 들고 살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어둠의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자연에 대한 예의와 염치조차 갖추지 않는 이 시대는 어떠한 시대입니까.

끊임없이 저는 저항합니다. 설악산이 늘 아름답기를 꿈꾸며 저항합니다. 살아있는 생명들이 그 자리에서 마음 놓고 살아 갈수 있기를 꿈꾸며 저항합니다. 잘못된 것을 보고 분노하고 저항하지 않는다면 나의 삶은 어떤 삶일까요? 12일로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강원도청 앞에서의 농성 207일째고요, 원주지방 환경청 앞에서 노숙 107일째를 맞았습니다.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끊임없이 바닥에서부터 밀려 올라오는 힘이 언젠가 세상을 바꾸리라고 생각합니다.

 

▲ 무인카메라에 찍힌 산양

 

얼마 전 원주에서 가까운 치악산에 기도드리러 올랐습니다. 물밀 듯이 올라오는 그 녹색의 물결을 바라보면서 제 스스로를 돌아 봤었습니다. 제가 비박 농성장에서 케이블카 반대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자연은 온 세상을 녹색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풍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면서 우리 모두가 간절한 꿈을 갖고 있다면, 우리 한사람 한사람 한그루의 나무가 될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이 봄에 투명한 연둣빛 잎을 내갈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녹색으로 덮이게 되리라는 생각을 해봤었습니다. 생각이 사무치면 꿈은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20년 동안 케이블카 싸움을 해오면서 한 번도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놓여 지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28일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설악산 케이블카가 승인 되면서 전국에 31개의 케이블카가 계획됐고, 지금 강원도에서만 9개의 케이블카가 공사 중이거나 계획 중에 있습니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백두대간 종주를 이제 케이블카를 타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농담하기도 합니다. 그런 시대는 어떠한 시대가 될까. 제가 피켓을 들었던 광화문 넓은 도로에 산양들이 밀려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가 꿈꿨던 철새들이 좀 지나가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설악산 케이블카 공사는 이제 10%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환경영향평가 시행 단계에 있고 환경영향평가협의, 자연경관심의, 공원사업시행허가, 문화재형상변경허가 심의 등도 받아야 되고 아직도 할 것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이미 다 끝난 것 아니냐고 얘기를 하죠. 이제 10분의 1정도만 진행됐을 뿐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모은다면, 우리가 끝까지 분노하고 저항한다면 설악산 케이블카는 막을 수 있습니다.

설악산은 설악산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산지 난개발의 빗장을 여는 것과 똑같습니다. 설악산 케이블카가 놓이는 순간 대청봉에 200명 수용 규모의 4성급 호텔이 지어집니다. 그 자리에 우리 아이들이 섰을 때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향기로운 바람을 맛볼 수 있겠습니까? 코끝에 함박꽃 향기가 매달릴 수 있을까요?

얼마 전 케이블카 설치 예정지에 갔다가 산양들이 쉬었다간 자리에 수북이 쌓인 똥들을 봤습니다. 그 똥 위에 철퍼덕 앉아서 한없이 누그러졌습니다. 그들은 단지 그 자리에 살고 있었다는 것 밖에는 어떠한 잘못도 없습니다. 거기서 살았다는 것 자체가 잘못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삶은 지금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까짓 산양 한 마리가 뭐가 대단하냐고 누군가는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그 생명과 내가 더불어 살수 없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이해해줄 수 있을까?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내가 있으므로 네가 있고,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고 생명이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듭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끝까지 저항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먼 훗날 아이들과 함께 그 자리에 서서 우리가 싸웠던 일을 되 뇌이고 싶습니다. 산양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듯싶습니다. 결코 이루지 못할 꿈은 아닙니다. 그리고 설악산이 아름다워야 될 이유는, 여러분 가슴 속에 해답이 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세상을 끊임없이 나아가 끊임없이 한껏 손잡아 주시길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녹색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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