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리뷰>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소설가 한강-1회

▲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소설가 한강 (창비 제공)

 

맨부커상은 노벨 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린다. 소설가 한강 씨가 그 상을 수상했다. 한국인 최초다.

1969년 영국의 부커사가 제정한 맨부커상은 영국 등 영연방 국가 작가에게 주어지는 맨부커상과 비(非)영연방 작가와 번역가에게 수여되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로 나뉜다. 한강 씨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을 수상했다. 후보는 모두 13명이었다. 노벨상을 수상한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와 터키의 오르한 파묵도 경쟁자였다. 브라질, 인도네시아, 앙골라 작가들도 포함됐다. 최종 수상자는 지난 16일 열린 공식 만찬 자리에서 발표됐다. 수상자와 번역가는 5만 파운드(한화 8600만원)를 받는다.

수상작은 ‘채식주의자’다. 영문판 ‘The Vegetarian’. ‘The Vegetarian’은 지난 해 1월 데보라 스미스가 번역, 영국 포르토벨로 출판사에서 펴냈다. 당시 가디언 등 유수의 매체로부터 호평을 받기도 했다.

5명의 심사위원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는 영국 ‘인디펜던트’ 선임기자인 보이드 턴킨(Boyd Tonkin)이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 맨부커상 수상작 소설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는 연작소설이다. 표제작 ‘채식주의자’를 비롯 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몽고반점’과 ‘나무 불꽃’으로 구성됐다. 상처 입은 영혼의 고통을 식물적 상상력에 결합시켰다.

죽어가는 개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점점 육식을 멀리하고 스스로가 나무가 되어간다고 생각하는 영혜를 주인공으로 각 편에는 다른 화자가 등장한다. 첫 번째 ‘채식주의자’에서는 아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남편, 두 번째 ‘몽고반점’에서는 처제의 엉덩이에 남은 몽고반점을 탐하며 예술혼을 불태우는 사진작가, 세 번째 ‘나무 불꽃’에서는 남편과 여동생의 불륜을 목격했으나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혜가 화자로 등장한다.

한강은 2014년엔 5월 광주 이야기를 다룬 ‘소년이 온다’를 발간하기도 했다. 맨부커상 수상 5.18민주화운동 기념일과 맞물려 이 작품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소년이 온다’는 광주민주운동을 직접 체험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데,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동호와 도청에서 상무관에서 시신 관리를 하는 형과 누나들의 이야기다.

연행된 진수는 모나미볼펜과 성기 고문을 받은 후 출소해 자살했고, 5.18이후 데모로 대학생활을 보내다 출판사에 취직했지만 검열 문제로 또다시 경찰서에 서게 된 은숙. 노조활동을 하다 경찰에 연행된 선주까지. 고문과 검열, 데모와 트라우마가 점철된 광주의 청춘들이 등장한다. 고통과 치욕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광주에 한강은 자신의 서사를 통해 국가의 무자비함을, 잔인한 인간의 악행과 본질을 들춰낸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한강이 쓴 광주 이야기라면 읽는 쪽에서도 마음이 준비가 필요하고, 각오한 사람조차 휘청이게 만드는 소설”이라고 추천평을 남겼다.

<위클리서울>은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 기념으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바로 그 2014년 봄 ‘소년이 온다’ 출간을 기념해 이뤄졌던 한강과의 심층인터뷰 전문을 다시 한 번 앙코르 게재한다.

 

“(군인들에게)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

1980년 5월의 광주. 여기서 살아남은 증언자들의 대부분은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라고 답했다. 세월호가 오버랩된다.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있었다면, 그들 역시 비슷한 대답을 했을지도 모른다. “(죽을 수도 있었겠지만) 학생들을 먼저 대피시켜야 할 것 같았습니다.”

광주를 다룬 ‘소년이 온다’는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세월호에서 가장 먼저 탈출한 선장 및 승무원들을 떠올리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오랫동안 품어왔다. 한편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잔혹한 폭력을 행하는 인간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 어떤 이들은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하려고 자신의 몸을 던진다. 세월호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던져 사람들을 구한 이들이 있다. 특히 교사들. 그분들을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왜 아직도 광주인가’라는 질문에 한강 씨는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1980년 광주’ 역시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일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대한민국에 대한 긴 한숨이 이어졌다.

“체르노빌의 피폭이 그 당시의 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이어오는 것처럼, 광주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가까이 용산참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보통명사로서의 광주는 계속해서 얼굴을 바꿔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더 끈질기게 애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당위로서가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잊을 수 있는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일 아닌가, 라는 질문을 되묻는 것이 맞는 방식이라고 느낀다.”

그러면서 한 씨는 냉소와 포기가 가장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했다.

“국가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우리는 민주화되기 전으로부터 얼마나 전진해왔는지, 그 자리로 급격하게 회귀하는 중요한 기점에 서 있지 않은지 하는 고민이 뒤따랐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사건 초기에 이민을 가고 싶다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냉소하고 포기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일이라고 이제 저는 느낀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더듬어 찾으려는 움직임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소년이 온다’를 쓰는 동안 몇 차례 망월동의 묘지에 찾았다는 한 씨. 그는 “간절히 제가 바란 것은 그분들께 누가 되지 않는 것, 끝까지 힘을 다해 애도하는 것이었다. 진심으로 애도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고, 끈질기게 애도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라며 “세월호도 광주도 끈질기게 응시하는 것.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것뿐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한강 씨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 우선 세월호 참사부터 짚어보겠다. 이 문제로 나라가 온통 어수선하다.

▲ 모두가 그랬겠지만, 배가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던 시간의 무력함과 참담함을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어린 학생들의 무고한 죽음을 아직도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인간의 생명을 맨 앞에 두지 않는 야만의 시간을 우리들이 살고 있구나, 참담하게 깨달았다.

강의 때문에 자주 안산에 가는데, 거리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느낀다. 어쩌다 강의에 늦어서 택시를 타면 운전기사분들도 침통한 도시의 분위기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분들은 이 일을 정말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것 같다. 조를 짜서 팽목항까지 대가 없이 유가족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이 일을 지켜보며 나를 숙연하게 한 것은 이 기사분들과 자원봉사자들이었다. 공권력의 의미를 묻게 되는 바로 그 자리에서, 힘을 다해 서로를 껴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도 이번 사태에 충격이 컸을 것 같다.

▲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더더욱, 단 한 명의 아이라도 구조되기를 간곡하게 바랐을 것이다. 그게 불가능하게 됐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예민한 시기인 어린 학생들은 더욱 깊은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오랫동안 무겁고 아프게 들여다봐야 할 일이라고 느낀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가장 앞에 두는 근본적인 전환이 절박하게 필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 신간 ‘소년이 온다’는 80년 5월 광주를 다룬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세월호 침몰 당시 선실 현장을 연상케 하는 인상적인 대목이 나온다. “(군인들에게)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라고 답한다.

▲ 인간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오랫동안 품어왔다. 한편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잔혹한 폭력을 행하는 인간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 어떤 이들은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하려고 자신의 몸을 던진다. 세월호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던져 사람들을 구한 이들이 있다. 특히 교사들. 그분들을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면서, 1980년 5월 광주에서 내가 기존에 알던 것보다 훨씬 잔혹한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비록 소수지만 피 흘리는 시민을 병원까지 업어다놓고 황급히 돌아간 군인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운 양심’ 때문에 도청에 남은 분들이 있었다.

소설의 3장에서, ‘인간이 무엇이 아니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장을 썼다.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존엄함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자료를 읽으며 뼈아프게 느꼈다. 폭력과 야만은 아주 가까이, 우리들의 삶 속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영혼을 지키기 위해, 인간이 야만이 되지 않도록 온힘을 다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료 조사를 마치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 소설이 인간의 존엄에까지만 닿게 하자고 생각했다. 다만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느꼈다.

 

 

- 그간 광주를 담은 소설도, 영화도, 논평도 많았다. 이번 소설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 광주의 열흘을 치밀하게 복원한 임철우 작가의 ‘봄날’을 읽은 후, 더 이상 광주에 대한 소설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밖에도 많은 선배 작가들이 너무나 훌륭하게 오월 광주를 형상화해 놓으셔서, 거기에 더해 내가 광주에 관한 소설을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막상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내면에서부터 왔다. 저는 1994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했는데, 언제나 소설들 속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 그리고 인간을 껴안으려는 내적인 투쟁이 있었다. 2011년 겨울에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을 발표하면서, 어쩌면 이제야 내가 삶을, 그리고 인간을 껴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소설에는 시력을 읽어가는 남자와 말을 잃은 여자가 서로 소통하기 위해 손바닥에 글씨를 쓰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쓰면서,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장면을 쓰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 작품을 발표한 뒤에는 아마도 눈부시고 따뜻한 인간의 지점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2012년 겨울이 올 때까지 다음 소설을 쓸 수 없었다. 왜 쓸 수 없을까, 왜 나는 인간을 껴안을 수 없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내면을 들여다보다가, 어린 시절 간접 체험했던 광주를 마주하게 됐다. 1980년 당시 저는 아주 어렸기 때문에,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을 신군부의 내란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하기보다는 인간의 잔혹성, 세계의 폭력성으로 받아들였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다른 한편으로는 어떻게 인간이 죽음을 무릅쓰고 무엇인가를 행위하려고 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인간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근본적인 의문, 그 알 수 없는 인간의 일원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두려움을 그때부터 함께 품게 되었던 것 같다. 결국 이 이야기를 소설로서 뚫고 나가지 않으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랜 질문에서 더 이상 한 발도 나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선배 작가들이 훌륭한 소설들을 남겨놓으셨기 때문에, 나는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기보다는 1980년 5월부터 현재까지를 잇고자 했다. ‘소년이 온다’라는 제목처럼, 80년 5월이 현재로 ‘오는’ 소설이었으면 했다. 실제로 이 소설의 구성은 1장과 2장이 80년 5월이고 3장은 그로부터 5년 뒤, 4장은 10년 뒤, 5장은 20년, 6장은 30년 뒤이며 7장은 마침내 현재가 된다. 1장과 2장에서 열다섯 살 난 소년 동호와 그의 친구 정대가 죽고, 이후의 장들에서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동호를 기억하며 계속해서 ‘너’로 호명하는 방식을 택했다. <기사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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