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언론=가톨릭뉴스지금여기> 사고 6달째, 전국 200여 명 보성 밀밭 찾아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쓰러진 지 꼭 여섯 달째인 5월 14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200여 명의 시민이 전남 보성군 웅치면 백남기 농민의 집에 왔다. 서울에서 약 360킬로미터. 예정대로라면 2015년 11월 14일 저녁 백남기 농민이 집으로 달렸어야 할 그 길이었다.

보성군에서도 두 번째로 작다는 웅치면 어귀에 들어서자, 광주대교구 가톨릭농민회 회원들이 풍물로 손님들을 맞는다.

흥이 많은 백남기 농민이 마을 잔치에서 꽹가리를 들었던 사진이 문득 스친다. 마을 길을 오르던 누군가는, “저 꽹가리를 남기 형님이 잡았어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네덜란드에서 잠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 온 둘째 딸 백민주화 씨는, “아버지가 사람들이 모여 술 한잔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정말 좋아하셨는데... 오늘이 아버지의 퇴원을 축하하는 잔치였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낮 12시쯤 도착한 백남기 농민의 집 마당에는 벌써 도착한 이들이 북적인다. 동네 주민들과 농민회 일꾼들은 200여 명이 먹을 점심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부지런히 국수를 담던 백남기 농민의 아내 박경숙 씨는, 대책위 사람들을 보자 “(서울대병원 앞) 농성장은 어떻게 하고 왔느냐?”는 말부터 묻는다.
 

 

▲ 낮달맞이꽃이 핀 백남기 농민 자택. ⓒ정현진 기자

 

심청사달(心淸事達), 보가효우(保家孝友), 흠숭천주(欽崇天主). 마음이 깨끗해야 일이 잘 되며, 효도하고 우애 있게 지내야 집안이 잘 되고, 하느님을 흠숭한다는 글과 집터만큼의 넓은 터에 즐비한 장독대는 백남기 농민과 그 가족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얼마나 바지런한 삶을 살았는지 한눈에 보여 준다.

점심을 먹은 뒤, 사람들은 집 윗길에 있는 밀밭으로 올랐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밀’을 지키기 위해 고집스럽게 지켜온 밀농사다. 11월 14일 서울로 올라오기 전날까지 씨를 뿌렸다는 밀밭. 6월쯤 추수를 해야 하지만, 주인 잃은 밀밭은 밀보다 풀이 무성했다.

밀밭을 매다가 힘들면 이웃과 막걸리 한잔 했을 터에 앉은 사람들은, 각자의 인연으로 백남기 농민을 기억하며, 눈길과 손길로 밀밭을 보듬었다.

“이 싸움에서 꼭 이기겠다고, 아빠에게 약속했습니다.”

둘째 딸 백민주화 씨가 말했다. 아버지가 농사일을 할 때면 옆에서 뛰놀던 곳이라고. 어떤 이들은 아버지에게 전문시위꾼이라고 하던데, 그런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외진 곳이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버지는 그저 농민이었고, 나는 그분의 딸”이라며, “아버지를 보고 왔는데, 여전히 깨끗한 모습이셨다. 얼마나 긴 싸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손을 잡고 정의가 돈과 권력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며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 백남기 농민의 둘째 딸 백민주화 씨(맨 오른쪽)는 손잡아 준 이들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정현진 기자

 

가톨릭농민회 정현찬 회장은 “이 밀밭은 백남기 농민이 자신의 혼을 심은 곳”이라며, “칠순의 농부가 왜 서울까지 와서 집회에 참가하고 물대포를 맞아야 했는지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돈을 위한 농사가 아니라 우리밀, 그리고 우리 모두의 생명을 위한 농사이기 때문에 고집스럽게 농사를 지켜왔고 그것이 ‘농심’이라면서, “백남기를 비롯한 우리 농민은 빚을 지고, 수입이 없어도 밀뿐만 아니라 우리 쌀도 끝까지 지켜낼 것”이라고 말했다.

백남기 농민과 고등학교 선후배인 서영춘 농민은 11월 13일, 백남기 농민을 만나 함께 서울에 가자고 한 것이 바로 자신이라면서, “지금도 내가 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그날 옆을 지켰다면....”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남기 형님은 어떻게 하면 우리 농민들이 땀의 대가를 제대로 받고 살맛나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함께 이야기했던 사람”이라면서, “일어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일어나서 이 땅의 농업을 이야기하며 막걸리 마시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대 국회, 약속대로 백남기법 제정과 청문회에 적극 나서야

백남기 농민의 밀밭을 걸어, 문화제가 열리는 보성역으로 향했다. 공연과 발언이 이어진 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은 보성군 시민들을 향해, 국민이 나서서 이 일을 해결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한편, 20대 국회가 백남기법 제정과 청문회 개최에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 밀밭 걷기에 참여한 시민들이, 백남기 농민의 밀밭을 함께 걷고 있다. ⓒ정현진 기자

 

현재 책임자와 관련자 처벌과 관련해, 검찰은 가족들의 고발장 제출, 물대포 금지 헌법 소원, 손해배상청구 등에도 기소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만 담당 검사를 세 번이나 바꿨으며, 조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반면 11월 14일 민중총궐기와 관련한 경찰은 승진 및 전보 인사를 단행하고, 참여한 시민에 대해서는 1000여 명을 소환 조사해, 700여 명을 사법처리했다.

정현찬 회장은 6월부터 시작되는 20대 국회에 대한 기대를 드러내며, “반드시 백남기법을 제정해 앞으로 이렇게 힘없는 농민과 노동자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민주화 씨는, “그동안 희망을 놓은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절망적인 시간이었다. 희망은 단 하나, 새 국회의 역할”이라면서, 그동안 병원을 찾은 국민의당 안철수,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 등이 이 문제를 끝까지 책임지고 해결 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잊지 않고 있다며, “그 약속을 믿고, 지켜질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당선자도 “농업의 가치와 농민의 소중함이 정당하게 평가받고 대우 받을 때, 모든 국민이 지금보다 존중받고 행복할 수 있다”면서, “정치권에서 당연히 이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해야 한다. 분명한 국가폭력 문제로서 국회 안행위에서 다룰 것이며, 개원 즉시 적극 준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 보성역에서 열린 문화제의 마지막. 참가자들은 백남기 농민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농민가'를 함께 불렀다. ⓒ정현진 기자

 

이날 밀밭 걷기에 참석한 가톨릭농민회 초대 회장 이길재 씨(마르티노)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정부의 농업 정책이 단순한 산업논리로 가고 있는 것부터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면서, “농업을 지키는 것은 땅과 전통, 문화, 생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인식하지 않으면 농업 정책은 바뀔 수 없다. 우리의 요구는 농민만이 아닌 모든 민족을 살리자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백남기 농민의 희생이 오늘 우리의 농업과 농민 문제를 다시 국민들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하루속히 일어나 다시 이 기운을 높이도록 함께 할 수 있기를 빈다”고 말했다.

광주대교구 가톨릭농민회원 김경호 씨(예로니모)는 6달이 지나도록 사과와 대책, 책임자 처벌이 없다는 것은 “이것이 과연 국가가 맞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면서, “박근혜 정부는 그동안 국민의 뜻을 무시해 온 결과를 총선으로 확인한 만큼, 이제라도 용서를 빌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백남기 농민 사건과 농업 문제 해결에 국민들의 몫이 여전히 크다면서, “이 사건은 한 농민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이 무참히 짓밟힌 일이며, 누구든 국가의 공권력으로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며, “5.18과 같이 국가폭력에 의해 국민이 희생되는 일을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는 의식을 갖고,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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