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업 ‘인정머리 없는’ 후원보다 개인들 따뜻한 희생과 나눔이 가장 큰 힘”
“정부-기업 ‘인정머리 없는’ 후원보다 개인들 따뜻한 희생과 나눔이 가장 큰 힘”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16.06.20 15:03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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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민들레국수집’ 서영남 대표-1회

“2003년에 가진 것이라곤 300만 원뿐이었습니다. 식탁 하나 놓고 국수를 삶았습니다. 겁도 없이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고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1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나이 육십이 넘어 필리핀에서 또다시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필리핀에는 너무도 배고픈 사람들이 많아서 민들레 국수집을 시작하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밥 달라고 할 텐데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느냐며 모두 말렸습니다.”

달동네인 인천광역시 동구 화수동의 화도고개 가는 길, 1960년대 마을 모습 그대로다. 고갯길 정상에 하얀 색의 2층 건물 ‘민들레국수집’이 있다. 낡은 간판이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우측에 작은 주방이 있다. 좌측에 있는 식당은 한꺼번에 20여명이 들어갈 만한 넓이다. 오전 10시가 되자마자 노숙인들이 줄을 지어 들어와 밥을 먹는다.

 

▲ ‘민들레국수집’ 서영남 대표

 

2003년 4월 1일 단돈 300만 원으로 시작한 ‘민들레국수집’이 문을 연 지 13년이 지났다. 민들레 홀씨는 여기저기로 바람을 타고 날아가 국수집이 자리 잡고 있는 인천 화수동에 ‘민들레 마을’을 이루었다. 민들레꿈 어린이공부방, 민들레꿈 어린이밥집, 민들레책들레 도서관, 민들레희망센터, 민들레 진료소, 민들레 가게…. 민들레 홀씨는 저 멀리 바다 건너 필리핀까지 날아갔다. 2014년 가난한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필리핀의 나보타스, 말라본, 칼로오칸 세 곳에 ‘민들레 국수집’을 열었다. 필리핀 다문화가족모임, 필리핀 엄마들을 위한 한글교실도 열고 있다.

그 ‘민들레국수집’엔 늘 온화하게 웃는 표정의 서영남 대표가 있다. 그는 22세 때인 1976년 천주교 한국순교복자수도회에 입회해 25년간 수사(修士)로 지냈다. 1995년부터 전국 교도소의 장기수들을 찾아다녔고,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에 파견돼 출소자의 집인 '평화의 집'에서 형제들과 함께 살기도 했다. 그러다 2000년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수도복을 벗었다. 환속 후 출소자 공동체 '겨자씨의 집'을 만들어 출소자들과 지냈고, 2003년 4월 1일에는 ‘민들레국수집’을 열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무료로 침식을 제공해왔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행복전도사’라고 부른다.

화수동은 인천에서 가장 낙후된 곳. 서 대표는 “하지만 행복도는 어느 곳보다 가장 높다”고 말한다. 부인 베로니카 여사는 봉사자들과 아침준비로 분주하다. 이곳은 밥과 반찬 모두 무료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출신이나 종교, 나이 상관없이 배고픈 사람은 누구든지 들어와 편안히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안식처다.

“2003년부터 정부기관이나 기업체 지원 없이 이웃의 따뜻한 마음들을 모아 지금까지 해 오고 있다. 간판은 국수집이지만 국수가 아닌 밥이 나온다. 사나흘 굶은 이들이 국수만으로는 건강을 해친다. 그래서 최대한 영양식단을 만들어 건강을 찾도록 해드린다.”

서 대표는 “노숙인들의 최대 고민은 잠자리와 밥이다. 경쟁사회에서 낙오된 이분들이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는가. 어떤 때는 6개월 동안 겨우 1000원짜리 한 장 쓸 정도로 힘들고 배고픈 이들이다”고 했다. ‘민들레국수집’에선 샤워와 세탁은 물론 책과 영화 관람까지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춰놓고 있다. ‘잠자리가 없는 이들에겐 찜질방까지 얻어 준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인근 부천과 서울역, 청량리역 등에서도 찾아온다. 다음은 심층인터뷰 전문이다. 3회에 걸쳐 게재된다.

 

▲ 배식봉사자들과 함께 한 서 대표 부부(맨 왼쪽이 서 대표 부인 베로니카)

 

- 13년간 정부와 시민단체 지원 없이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면서 나눔 실천을 해왔다. 이곳 화수동은 인천에서도 가장 낙후되고 소외된 지역이다. 어떻게 이곳에서 시작하게 되었으며 후원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고 싶다.

▲ 이곳은 어떤 곳보다 행복도가 아주 높은 곳이다(웃음). 수도원에서 나와 달동네인 여기 화수동에 자리 잡으면 좋겠다 싶어서 2003년에 자리 잡았다. 수도원에 있을 때는 많은 수사들이 안정적인 후원을 생각하는데,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국수집을 시작할 때 ‘세상에는 돈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 돈에 의지하지 말고 사람에게 집중하자‘는 의지를 가지고 출발했다. ‘민들레’는 미국 뉴욕의 빈민가에서 가난한 노숙자를 도왔던 여성 사회운동가 ‘도로시 데이(Dorothy Day)’가 롤 모델이다. 평화주의자이자 언론인이던 그녀가 운영하는 ‘환대의 집’에선 실직자와 노숙자를 돌봤는데 우리도 가능하겠다 싶어 시작했다. 그래서 정부기관이나 기업의 ‘인정머리 없는’ 후원보다는 개인들의 따뜻한 희생과 나눔만이 사람을 바꾸는 가장 큰 힘이 되겠다는 뜻을 모아 지금까지 오게 됐다.

 

 

- 하루 평균 몇 명이 찾아오는가. 빈곤한 노인들은 많이 들르는지.

▲ 평균 300~500명 정도다. 노인층은 다행히 경로식당이 많이 있다. 이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평생 자식만 바라보며 고생을 했지만, 내면에 이기심으로 뭉친 분들이 많다. 남은 생각안하고 오로지 자신과 자식뿐이다. 그래서 저희는 노인층보다 되도록 노숙인에게 먼저 양보한다. 물론 형편이 어려운 노인에게도 음식을 제공한다. 보통 무료로 음식을 준다고 하면 한꺼번에 배식하고 끝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 이유는 IMF 이후 실직자가 넘쳐나면서 봉사자들이 선행은 하고 싶은데 자기 돈 쓰기는 아깝고 해서 정부지원을 받아서 하루 한 끼 제공하는데 100인분이다 하면 그것으로 끝내는 거다. 그때 한꺼번에 배식을 하려다 보니 줄 세우기가 관례가 된 것이다. 민들레는 줄을 세우지 않는다. 획일적이 아니라 언제든지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 세워도 맨 끝줄에 있는 분부터 배식을 한다. 노숙인들은 어디 가서 먹을 데가 없다. 양로원에 가서 밥을 얻어먹으려고 하면 욕만 실컷 먹는다. 젊은 놈이 게으르다는 등, 그래서 우리 민들레는 다소 젊은 50~60대 노숙인들이 대부분인데 인천, 부천은 물론 서울 청량리 등지에서도 온다.

 

 

- “밥이 지겨우니 이제 국수를 달라”고 하는 날까지 민들레 국수집을 운영하겠다고 했다.

▲ 바닥을 드러낸 쌀독을 살짝 엿볼 때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가스가 떨어질까 봐 가슴 졸인 일도 허다하다. 하지만 민들레국수집은 하루하루가 기적의 연속이었다. 어떤 때는 있는 모든 것을 다 털어서 손님(노숙인)에게 대접하고 나면, 희한하게도 고마운 분들이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을 가져온다. 아슬아슬하지만, 오히려 더 넘쳐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세상에는 남이 모르지만 착한 사람들이 참 많다. 이 일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 면에서 돈도 많이 든다. 그럼에도 항상 하느님이 모든 것을 충족히 채워주시리라는 섭리를 믿으며 산다. 참으로 스릴 만점이다.

 

 

- ‘민들레국수집’만의 특별한 조리법이 있는가.

▲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아무 때나 오면 뷔페식으로 얼마든지 드실 수 있다. 반찬도 7~8가지로 다양하다. 메뉴도 매일 바뀌며 충분하게 준비를 한다. 간식으로 빵과 토스트, 우유를 드린다. 배식시간에는 줄을 설 필요 없이 언제든지 프리타임으로 오시면 된다. 보통 노숙하는 분들이 사나흘 굶은 뒤 오는 경우가 많다. 국수만 먹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더라. 영양실조가 되면 노숙도 못한다. 그래서 밥을 주더라도 영양가 높게 만들어서 잃었던 건강을 찾도록 늘 신경을 쓴다. 그리고 밥은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다. 먹고 가시는 분들이 밥값도 안 받는데 맛있다고들 그런다(웃음).

 

 

- 필리핀 이야기를 해보자. 한 달의 절반은 인천에서, 절반은 필리핀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민들레 홀씨가 자라 국내외에서 많은 결실을 맺었다.

▲ 2014년 필리핀에 ‘민들레국수집’ 문을 연 후로 한 달에 15일은 수재민이 많은 필리핀에 서 아이들을 돌보며 집도 수리해주고, 나머지 절반은 인천에서 사역을 한다. 13년이 흐른 인천은 현재 화수동 지역에 나눔의 홀씨가 퍼져 ‘민들레 마을공동체’를 형성했다. 이제 민들레집 식구만 30여 명이 넘는다. 이곳 언덕 아래에 있는 민들레꿈 공부방과 민들레꿈 어린이밥집, 민들레책들레 어린이도서관은 딸인 모니카가 관리하고 있다. 조금 더 내려가면 민들레희망센터 내에 민들레 진료소와 민들레 가게를 운영 중이다. 더불어 필리핀 다문화가족모임과 필리핀 엄마들을 위한 한글교실도 열고 있다. 인천에서는 매주 토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고, 한 달에 두 번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아내 베로니카와 딸 모니카와 함께 전국의 교도소 형제들을 방문한다. <기사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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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혜안젤라 2016-06-23 11:41:11
민들레국수집을 보고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나눔... 오래오래 이어가시길 바래봅니다....
진정 소중한 것을 찾아서 저는 너무 다행입니다....

도민엄마 2016-06-23 12:08:19
더욱 낮은 자세로 가난한 이들을 품에 안아주시니,
우리의 이웃들이 희망도 찾는 것 같습니다.
소소하지만, 위대하고, 아름다운 민들레 국수집을 응원합니다.

양성욱라파엘 2016-06-23 18:21:36
민들레국수집 언제나 아름다운 사랑 보여주어 감사합니다.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파이팅~~!

이수정유스티나 2016-06-26 16:58:57
민들레 수사님의 청빈한 마음이 맑은 미소로 드러납니다.
말하지 않아도, 몸짓으로 표정으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매일 기적을 체험하시며 생활하시는
민들레 가족들에게 언제나 기쁨과 희망이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dkstlgus 2016-06-26 19:48:49
사랑으로 낮은 이웃들을 섬기는 베베모 세천사분의 아름다운 마음씨!
우리사회에 밝은 빛을 투여하는 에너지입니다.
민들레 국수집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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