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썩이는 ‘한반도 시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둘러싼 한반도의 시계는 한여름에도 멈추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놓고 관련국들의 이해관계는 더욱 복잡하게 흘러가는 양상이다.
최근 폐막된 아세안(ASEAN) 관련 연례회의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연례회의는 미국과 중국을 양대 축으로 불협화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양자회담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직설적인 공격을 표출한 반면 북한 리용호 외무상에게는 이례적으로 친밀감을 보였다. 사드에 대한 국내 불협화음도 시간이 갈수록 표면화되고 있고 정치권도 잔뜩 벼르고 있다. 무더위에도 식을 줄 모르는 ‘사드’ 후폭풍을 살펴봤다.

 

 

‘사드’가 한반도의 운명을 정조준하고 있다.

중국 등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가 자국의 안보이익을 침해한다며 북한과의 관계에 신경을 쓰고 있는 분위기다.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지난 26일 종료된 아세안(ASEAN) 관련 연쇄 외교장관회의는 한중관계의 냉기가 확인되고 북중이 ‘밀월관계’를 형성하면서 한국 외교가에 ‘경보음’을 울렸다.

박근혜 정부는 한미동맹을 기본 축으로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 강화를 꾀하며 북핵 문제 해결을 시도했지만 사드 배치 결정으로 중국과의 마찰음은 커져만 가고 있다. 러시아도 이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고 있어 팽팽한 기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중-러, UN에 공동 서한

중국이 사드에 대해 큰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지만 현실은 달랐다. 중국은 노골적으로 북한과의 관계에 주력했고 한국에 대해선 냉소를 날렸다. 지금까지 팽배했던 낙관론이 힘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사드 배치를 감행하고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를 분명히 하면 중국의 긴장감은 커질 수 밖에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주한미군 사드 배치 결정에 중국이 격렬히 반발하면서 우리 정부가 최상의 관계라고 자평해왔던 한중관계는 새로운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최근 한국 측의 행위는 쌍방의 상호 신뢰의 기초에 해를 끼쳤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이어 한중관계를 수호하기 위해서 한국 측이 “어떤 실질적 행동을 취할지에 대해 들어보려고 한다”고 했다. 사드 배치와 관련된 실제 행동을 지켜보겠다는 얘기다.

한중관계에 찬바람이 불면서 우리 정부로서는 북핵 공조에도 근심거리가 생겼다. 왕이 부장이 북핵 불용과 유엔 안보리 결의 충실한 이행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지만 일단 중국의 대북공조 결속력은 약화된 상황이다.

중국은 사드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분명히 함과 동시에 북한과 노골적으로 밀착하는 모습을 확실히 표시했다. 중국으로선 사드에 대한 견제 메시지와 동시에 미국과의 남중국해 갈등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왕이 부장과 나란히 같은 비행기를 타고 라오스에 도착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2년 만에 북중 외교장관회담을 개최했다. 리 외무상은 기자회견을 통해 ‘책임 있는 핵보유국’을 주장하는가 하면 “어떤 제재에도 대처할 준비가 돼 있다”며 5차 핵실험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한일,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통해 북핵에 대한 공조를 재확인했다. 윤 장관은 “과거 냉전 시대처럼 북중러, 한미일 구도가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과도한 전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사드 문제에 대해 중국과 공조하면서 이 같은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이와 관련 중국과 러시아가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반대 의견을 담은 공동성명을 지난 8일 유엔(UN)에 제출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돼 눈길을 끈다. 두 나라가 유엔에 서한을 보낸 8일은 한미 군 당국이 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을 공식 발표한 날이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 보도에 따르면 유엔주재 우하이타오 중국 부대사와 비탈리 추르킨 러시아 대사 공동 명의로 지난 8일 제출된 이 서한에는 지난 6월 2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명한 공동성명이 첨부됐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당시 성명에서 이지스 미사일 방어망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사드 등을 거론하며 “이는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해 지역 국가들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양국이 사드 문제를 계기로 신냉전 시대까지 염두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우리 정부의 ‘당당한 외교’를 주문하는가 하면 사드 배치 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성주의 반발 여론도 여전하다. 성주 사드배치 철회 투쟁위원회는 최근 변호사 4명의 법률자문단과 계약을 했다. 법률자문단은 투쟁위와 계약에 따라 단순한 자문에 그치지 않고 정식으로 사건을 맡을 예정이다. 김항곤 성주군수는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성주군은 군청 자문변호사 등을 통해 환경영향평가 없이 사드배치 결정을 한 점에서 행정소송이 가능한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성주 반발 여론 ‘여전’

중국이 미군의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해 강력 반발하면서 정치권의 사드 논란도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야당에서는 중국이 사드 배치에 대응해 경제적 보복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제기하며 정부의 ‘외교실패’를 정조준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안보를 수호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라며 야당의 주장을 정치공세로 맞받아쳤다.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은 “중국이 한국산 상품을 상대로 통관 위생검사 같은 비관세장벽을 강화하거나 언론 등을 활용해서 불매운동을 진행할 수도 있다”면서 대비책 마련을 촉구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사드 배치 결정으로 대중 외교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벼랑 끝에 선 북한이 중국과 손잡고 재기하려 한다”며 사드 배치 결정을 철회하라고 강조했다.

반면 새누리당 김정재 원내대변인은 “중국은 탐지거리가 한반도마저 초과하는 레이더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정치권부터 사드를 고리로 한 위험한 공세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드 배치 시기는 내년 연말로 점쳐지기 때문에 차기 대통령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에선 4월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가 미국의 사드 배치를 앞당겼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차기 대선주자들 사이에서도 미묘한 차이가 엿보인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는 당론을 정하지 않으며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고 있다. 반면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와 문재인 더민주당 전 대표는 좀 더 ‘반대’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사드에 대해선 안 전 대표가 더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면 문 전 대표는 조심스런 입장이다.

한반도와 그 주변을 발칵 뒤집어놓고 있는 ‘사드’ 쓰나미가 어디로 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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