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여성의 힘 기록하고 싶어”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여성의 힘 기록하고 싶어”
  • 배선영 기자
  • 승인 2016.10.11 1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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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뉴스지금여기> 강정에서 만난 엄문희 씨

엄문희(세실리아, 44) 씨는 자신을 강정지킴이이자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늘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강정지킴이(해군기지를 반대하는 평화활동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포구, 경찰 또는 군인과 대치하는 현장, 어제는 없던 바닥에 써진 ‘평화’라는 글씨, 벽 사이에 낀 채로 삭은 노란 깃발이 그의 카메라에 담긴다.

 

▲ 엄문희 씨 ⓒ배선영 기자

세월호참사, 어른인 나는 뭘 하고 있었나

문희 씨는 육지에서 왔다. 강정에 연고가 없다. 지난 3월 본격적으로 강정에 터를 잡고 초등학생인 아들과 강정 마을회관 근처에 산다. 남편과 딸은 육지에 있다. 그를 강정으로 이끈 계기는 세월호참사였다. 어른으로서 뭘 했냐는 자책이 온몸으로 와 한 달간 끙끙 앓았다. “뭐든 해야 할 것 같았다.”

2015년 10월 그는 광화문광장에서 국정교과서 찬성 집회 중인 어버이연합 노인들에게 맞았다. 노란 리본을 달고 사진 찍는 문희 씨를 본 한 노인이 “저 노란 미친년 잡아”라고 소리치자 여럿이 달려들어 어깨와 등을 때리고 카메라를 뺏으려 했다. 맞은 일도 두렵지만 바로 곁에 경찰을 두고도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에 더 후들거렸다.

“세월호참사에서 느낀 공포감, 그 모든 일이 나를 피할 리 없다는 생각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일이었다.”

이 일로 그는 기록의 힘을 깨달았다. 그들은 기록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뭐든 해야 할 것 같은 막연함이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구체적 확신이 됐다.
 

 

▲ 멧부리 (사진 제공 = 엄문희)

군사주의 저항하는 여성의 힘, 강정의 여성 쓰고 싶어

문희 씨는 강정에서 만난 사람들, 공동체가 가진 묘한 힘에 매료됐다. 이곳에 와 지킴이들과 함께 있으면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사람을 존재로 환대하고 인정하는 것, 이전에 사회와 조직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다.”

직접 와 보기 전, 그에게 강정은 문정현 신부 같은 의로운 성직자들이 있는 곳이었다. 매일 오전 11시 해군기지 반대 미사에 함께하다 보니, 음향을 준비하고, 비옷을 나눠 주고, 경찰의 채증에 맞서 카메라를 들거나 커피를 끓여 주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사제나 수도자들이 보였는데, 직접 와서 보니 강정을 지키는 이들 중에는 여자가 많더라. 군사주의와 대비되는 여성의 힘이 보였다.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강정의 여성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여성들은 프리랜서, 제주 시내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밭에서 일하는 등 적은 수입으로 살며 낮 시간에 미사를 지켰다. 문희 씨는 이들을 통해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싶다. 실제로 얼마 전 여성성으로 군사주의에 맞선 특별한 경험을 했다.

문희 씨는 해군군사기지 옆에 있는 멧부리에 일주일에 한 번씩 간다. 울퉁불퉁한 큰 돌로 된 이 지역이 지금은 강정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그는 숲길을 따라가다 열리는 이곳의 사계절을 기록한다.

어느 날 사진을 찍다 기지 쪽으로 카메라를 돌리자 “사진 찍지 마세요”라는 고함이 들렸다. 순간 위압감이 들고 무서웠다. 4월에는 멧부리에 새벽에도 혼자 갔는데, 지금은 낮에도 혼자 못 간다. 그는 마을에서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 있던 곳인데 무관심 속에 방치되다가 사람들이 더 이상 멧부리에 가지 못하고 해군들이 쓰게 될까 걱정이 됐다.

지킴이 회의 때 문희 씨가 멧부리를 지키고 싶다는 의견을 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꾸 틈을 벌리는 것이다. 못 들어오게 하면 더 들어가야 한다. 혼자 가기 무서우면 둘이 가고, 떼로 가야 한다.”

그래서 매달 마지막 날은 멧부리의 날이 됐다. 이날은 뭘 하든 멧부리에서 한다.

8월의 마지막 날 여자들은 머리를 풀고 꽃을 달고 치마를 입고 춤을 췄다. 지금은 관광 상품으로 변질됐지만 원래는 대지를 딛고 일어서는 의미가 담긴 슬프고 아름다운 훌라 춤이 멧부리에 퍼졌다.

“그들처럼 견고한 자세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신을 풀어내자 훨씬 안정감 있고 안전했다. 사진 찍으러 들어가면 부대 안에서 사람이 나오기도 하는데, 춤추는 걸 본 군인들은 속수무책이었다.”
 

 

▲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강정마을은 많은 것이 변했다. ⓒ정현진 기자

상처가 된 천주교 제주교구의 해군기지반대 미사 중지

강정을 기록하는 일에는 미사도 포함된다. 매일 하는 미사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다. 기지가 열릴 때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 10월 12일 제주교구는 활동 중점을 강정 평화센터로 옮기겠다며 해군기지 앞 천막미사를 중지한다고 밝혔다. 그래도 길거리 천막 미사는 계속된다. 그러나 제주교구의 길거리 미사 중지와 군종교구가 해군성당에 사제를 파견한 것은 “지킴이들이 만난 어떤 상처보다 가장 큰 상처였다.”

그는 제주교구가 길거리 미사를 공식적으로 중지한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지킴이들에게 천주교는 큰 나무그늘이었다. 성직자들이 앞에 있었기 때문에 깃발을 들 수 있었는데 나무를 치우면 어떻게 하냐며 어떤 이는 울었고, 어떤 이는 며칠을 술로 보냈다. 배신감에 냉담자가 된 이도 있다. 그는 “(미사 중지가) 이렇게 공식적으로 천명할 일이 아니었다”며 “인간적으로 제주교구에 실망했다”고 했다.

군인은 전쟁을 전제로 하고, 어떤 전쟁도 명분이 있을 수 없다. 고로 문희 씨가 보기에 교회에서 군종사제를 파견하는 것은 모순이다.

“강정에 평화센터를 만들어서 군사주의에 저항하겠다는 이들의 행동으로 맞지 않다.”

그는 만약 계속해서 운동이라고 불리는 삶을 산다면 군종교구의 해체와 재정립을 위해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1000원이면 쓸 수 있는 민군복합시설 수영장 절대 못가

강정의 변화 중 눈에 보이는 것은 새로 짓거나 지어질 건물이지만, 이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이미 있는데도, 4월 말부터 지자체와 해군은 마을회관을 짓고 있다.

“우리는 못 간다. (해군기지에) 찬성하거나 동조한 사람만 갈 거다.”

민군복합시설에 1000원이면 쓸 수 있는 좋은 수영장이 있지만, 문희 씨와 아들은 5번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려 중문에 있는 수영장에 간다. “1초간 고민했다. 하지만 갈 수 없다. 절대 못 간다”고 단언하는 문희 씨.

지금은 마을에서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가 가장 높지만, 변화에 속도가 붙은 마을에는 곧 이보다 높은 건물도 생길 것이다. 문희 씨는 도로변에 있는 집들이 용도변경을 하면 밤까지 장사하는 식당이 되고, 마을이 이전과 확연히 달라지며 맥락이 해체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문화가 없어지고, 이전을 기억할 수 있는 것도 없어질 것이다. 처음에는 지키려고 버티지만, 무뎌질 거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잘 가지 않는 포구나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며 문희 씨가 찍은 사진은 그래서 더 뜻이 깊다. 그가 마을지도를 만들고, 강정을 기록하는 이유다. 그가 강정 국제평화영화제의 지원금을 받아 내년 4월을 목표로 만들고 있는 다큐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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