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일꾼> 황인철 칼럼

<점보 와일드(Jumbo Wild)>라는 영화가 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 점보 계곡을 대형 리조트 개발사업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24년간의 싸움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점보 밸리의 야생의 자연을 지키려는 지역주민과 환경단체가 한 축이라면 리조트 건설자 ‘오베르토 오베티’와 그의 후원자인 정치인들이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개발업자들은 점보 글레이셔 스키장을 건설해서 4계절 내내 자연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 박그림 설악산 지킴이

 

한편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북미에서 가장 중요한 야생동물 중 하나인 회색곰이 이동하는 점보계곡의 생태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추나사 원주민들이 “회색 곰의 영혼이 사는 집”이라고 믿는 것처럼, 점보 계곡은 종교적,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다. 점보계곡을 보전하자는 이들은 자연생태와 함께 종교적 문화적 정체성이 훼손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 2015년 리조트 개발계획은 보류되었으나, 사업자는 또다시 추진을 계획하고 있고 싸움은 진행 중이다.
 

미국 국립공원에 케이블카 없는 이유는?

이 영화를 보면 설악산을 떠올리게 된다. 설악산 케이블카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과 갈등은 30년을 훌쩍 뛰어 넘는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의 친인척이 특혜로 독점운영권을 얻어낸 권금성 케이블카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리며 현재까지도 운영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1980년 이후 제2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요구는 지속되고 있다.

1982년 문화재위원회의 2차례 부결, 그리고 2012년과 2013년 국립공원위원회에서의 2차례 부결 결정이 있었다. 그리고 작년 8월, 국립공원위원회는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을 조건부로 허가해주었다. 국립공원에 케이블카가 허락된 것은 덕유산 이후 30년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 현재 환경영향평가와 문화재위원회의 심의가 진행 중에 있다.

케이블카는 전국에 150여개가 설치 운행되고 있다. 이 중 관광용 케이블카는 30여개에 이른다. 케이블카는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어디에 설치되느냐가 중요하다. 케이블카는 대규모 관광객을 실어올리는 관광시설이다. 국립공원, 천연보호구역 등 겹겹의 보호지역으로 보호받는 설악산의 심장부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은 보호지역의 지정 취지를 정면으로 위배한다. 국립공원 제도가 시작된 미국의 국립공원에는 케이블카가 없는 이유다. 유럽도 ‘알프스 협정’ 등을 통해서 기존 시설의 철거 없이는 신규 시설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보호지역 안에서는 관광이용보다 생태계의 보호가 우선하는 가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환경부, 천연기념물 정해 놓고 한편에선 돈벌이 궁리

정부는 1965년 설악산 전체를 천연기념물 171호로 지정하였다. 당시 지정 취지를 보면 자못 비장감마저 느낄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자연 상의 피해가 가장 적다고 할 수 있는 지역이 설악산과 그 외 수개 지역에 불과할 것이니, 이 지역만이라도 우선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의 의지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작년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의 결정이 바로 그 사례다. 자신들이 정한 보호지역에 돈벌이를 위한 관광개발을 허락했다. 자신들이 지정한 멸종위기종 산양의 보금자리 한 복판에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환경영향평가라는 제도가 있다. 제도 자체만 보면 다른 나라에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서 양양군이 작성한 설악산 케이블카 환경영향평가서에서 심각한 문제들이 드러났다. 현장조사를 증빙하는 자료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엉터리로 기록된 경우도 수두룩하다. 조사에 참여하지 않은 전문가의 명의를 도용했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조사데이타는 은폐했다. 이런 거짓작성과 조작행위는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불법이고, 또한 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조치’, 곧 원점으로 되돌려야 하는 사항들이다. 하지만 환경부는 국회의 이런 지적을 모르쇠하고 있다. 사업자의 ‘변명’을 그대로 받아 적은 ‘해명’만을 반복하고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로 "시인의 멸종을 읽는다"

보호지역, 환경영향평가와 같은 좋은 제도도 운영하는 사람에 따라 언제든 허물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장밋빛 환상으로 지역민을 호도하는 정치인, 소신을 내던진 전문가, 국토 어디든 파헤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본, 그리고 대기업과 굳게 손잡은 대통령이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는 자연과 인간,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공존을 망가뜨린다. 지금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 다른 생명과 미래 세대의 권리를 빼앗는 일은 그 자체가 불의다.

“세대 간의 연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우리가 받은 지구는 우리 후손들에게도 속하기 때문입니다.” (<찬미받으소서> 159항)

어느 시인은 설악산 케이블카로부터 ‘시인’의 멸종을 읽는다. “멸종 위기종 산양을 비롯한 뭇 생명이 설악에서 쫓겨날 때 이 땅의 미래가 쫓겨나는 것이다. ‘시인’ 역시 그만 멸종하거나 이 나라를 떠나야 할지 모를 일이다.”(김선우, <부상당한 천사에게>중 ) 눈 앞의 사물, 눈 앞의 사건으로부터 그 너머의 의미와 진실을 읽어내는 ‘시인’의 눈은 어찌 보면 지극히 ‘종교적’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연으로부터 창조주의 손길을 감지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을 만나는 소중한 장소이다.

“산들마다 정상이 있고, 높고 장엄하며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꽃이 만발하고 향기가 넘칩니다. 이 산들은 제가 사랑하는 그분과 같습니다.” (십자가의 요한 “영혼의 노래”, XIV, 6-7, <찬미받으소서> 234항)

영화 <점보 와일드>로 돌아가보자. 리조트 건설자 ‘오베르토 오베티’는 “나에게 리조트는 대성당과 같은 존재다”고 말한다. 개발, 성장, 이윤은 종교적 신념이 되어간다. 사회 곳곳에서 자본숭배의 우상이 자라고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로 잃는 것은 그저 몇 그루의 나무가 아니다. 위협받는 것은, 지금 이 사회의 영혼이다. <황인철님은 녹색연합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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