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갈노> 하승수의 ‘꿈꾸는 삶’

어제는 좀 여유가 있어서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봤습니다.

자신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타인을 도우려고 하는 인간미 넘치는 주인공들이 나오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은 영국의 관료적이고 비인간적인 복지시스템입니다. 물론 그보다도 더 못한 대한민국의 현실이 영화보는 내내 생각났습니다.

영화 속에서 심장병을 앓던 주인공은 목수 일을 더 이상 할 수가 없어서 질병수당을 신청합니다. 그러나 어이없는 이유로 질병수당 지급을 거절당하고, 생존의 벼랑 끝에 서게 됩니다.

천신만고 끝에 항고를 해서 심사를 받게 되었지만, 항고 당일날 주인공은 심장마비로 사망합니다. 꼭 저렇게 영화를 만들어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영화가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면 그것 또한 현실을 배반하는 것이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다니엘 블레이크)이 말한 대사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존심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지’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자신에게 모멸감을 준 고용지원센터 담벼락에 스프레이로 글씨를 썼을 때, 그 옆을 지나던 또다른 실업자가 보수당을 욕하는 장면도 떠올랐습니다.

누가 ‘다니엘 블레이크’를 죽게 만든 것일까요? 질병수당을 거절한 고용지원센터의 심사관이었을까요? 영국의 관료적이고 비인간적인 복지시스템이었을까요? 아니면 보수당으로 대표되는 영국의 정치였을까요?

물론 그 모든 것이 ‘다니엘 블레이크’를 죽음으로 몰아갔지만, 좀더 들어가보면 영국의 선거제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마거릿 대처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일 당시에 영국 보수당의 득표율은 40%대였습니다. 지난 2015년 총선에서도 보수당은 36.8%밖에 득표하지 못했지만, 국회에서 단독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만약 영국이 네덜란드, 덴마크, 독일같은 선거제도였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영국의 현실이 만들어졌을까?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일을 못하게 된 늙은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는 ‘나는 소득도 연금도 없다’고 얘기합니다. 만약 다니엘 블레이크가 네덜란드나 덴마크에서 살았다면, 그는 만65세부터 기초연금을 월 100만원 이상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선거제도와 같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 정말 중요합니다.

아래의 이미지는 네덜란드의 투표용지입니다. 네덜란드는 100여년전부터 지금의 선거제도를 도입해서, 괜찮은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최저임금이 높고, 노동시간도 짧은 편이고, 만65세 이상이 되면 누구나 월 130만원 이상의 기초연금을 받는 나라입니다.

 

 

원전도 1개밖에 없고, 그 1개의 원전에 대해서도 2006년에 원전회사들에게 2034년까지 폐쇄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면서, 재생가능에너지에 투자하고 최고수준의 안전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 나라입니다.

세계최초로 동성결혼을 법제화했고, 여성의 임신중단을 허용하면서도 성교육과 사회가 책임지는 양육시스템 등을 통해 ‘원치않는 임신’을 줄여 낮은 임신중단율(낙태율)을 보이고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갖고 있습니다.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따라 국회의석을 배분하고, 진입장벽도 0.67%로 낮습니다. 0.67%만 얻으면 국회에 1석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한 ‘개방형 명부’여서 정당이 정한 후보명부의 순위가 유권자들의 선택에 의해 바뀔 수 있는 선거제도입니다.

이런 선거제도를 가진 네덜란드는 행복하고, 인권이 존중되고, 부패가 없는 국가시스템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다니엘 블레이크>를 본 후에도 제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의 국가시스템을 바꿀 것인지? 라는 고민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하루하루 시국은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그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바꿔야 할 것을 바꾸는 계기로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하승수 님은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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