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김태동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2회

<1회에서 이어집니다.> 

▲ 김태동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 탄핵정국, 향후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이는가.

▲ 촛불과 분노의 감정표현은 개별적으론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향후 대선을 지나 개헌을 놓고 국민투표를 하게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시국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거시적 판단을 잘해야 한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현재까지 국회청문회와 특검, 헌재 심리과정 등을 통해 밝혀진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보여준 진행수준도 문제지만 얼마나 비효율적인 제도인가 하는 점도 알게 되었다. 물론 일부분이라도 밝혀내 성과를 얻어냈으니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이제 대통령과 함께 고위 관료들이 저지른 범죄행위들을 낱낱이 밝히고 엄격한 사법처리를 통해 발본색원해야 한다. 다음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 감춰졌던 진실들을 밝혀내고, 역사 앞에서 촛불개혁이 바라는 진정한 걸음으로 가야 한다. 1단계 촛불시민혁명의 힘으로 헌재의 조기 탄핵 인용결정과 특검의 철저한 수사를 압박하고 범죄 관련자의 엄벌을 요구해야 한다. 또한 황교안 내각의 월권적 행동을 감시하면서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박근혜-최순실이 임명한 정부기관 수장들을 추방시키고 국민이 거부한 국정교과서와 노동개혁, 한·일위안부협상, 사드배치 폐기운동을 벌여나가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내부자고발센터 운영도 시급하다.

 

 

- 그 다음 단계는.

▲ 곧 대선국면에 접어들게 될 2단계 국면은 검찰, 언론, 국정원, 공직자선거법에 대한 강력한 개혁추진과 함께 박근혜-최순실 재산환수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재벌 정경유착의 온상이었던 전경련을 해체시키는 한편, 국회와 민간차원에서 ‘박근혜 적폐청산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요구하고 싶다. 마지막 3단계 과정은 차기정권 집권기가 될 것이다. 이때 구성한 국회 적폐청산특위를 통해서 양극화와 경제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부와 민간차원의 개혁 기구설립과 비례대표제와 국민소환제, 선거법개정, 그리고 개헌논의도 이뤄져야 한다. 경제파탄의 주범인 재벌개혁을 위해 지배구조개혁과 노동개혁을 반드시 이루고, 국가의 미래가 걸린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또 안보강화를 위해 미국이 가진 전시작전권 환수와 한·미군사동맹의 재확인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 제일 시급한 것은 북·미관계 정상화와 개성공단 재개, 남북경제협력이다. 이에 덧붙여 복지국가와 평화국가 건설을 위한 국민적 논의와 국가정상화를 위한 주요개혁과정에서의 국민의견 수렴도 중요하다.

 

 

- 이번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들은 재벌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특히 절감하게 됐다.

▲ 삼성 재벌비리가 밝혀진 시점에서, 국민 70% 이상이 현재를 재벌개혁의 최대 ‘골든타임’으로 보고 있다. 과거에 이건희 회장이 상속문제로 수사를 받았을 때 언론이 이 문제를 연일 보도했지만 당시 국민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그러나 이번 비리사건에서 국민인식이 180도 바뀌었다. 지금이 재벌개혁의 최적기로 여겨지는 이유다. 개혁의 방향은 재벌 편을 들어주던 정경유착 시스템을 과감히 뜯어고쳐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삼성 등 재벌총수들이 권력과 야합해온 세습의 폐해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불법·부패·세습이 고착화된 재벌들은 대한민국의 모든 경제 권력을 쥐고 전횡을 휘둘러왔다. 공정거래법상 재벌에 대한 상호보증지급을 제한하고 있지만 40여개 대기업들은 이를 무시한지 오래다. 3대에 걸쳐 상속을 완료한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힘은 모든 삼성계열사를 합친 것보다 크다.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과 삼성 이병철 회장이 야합해 만든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삼성을 낳은 자궁과 같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삼성은 전경련 탈퇴를 선언했다. 이는 그동안 축적된 힘이 커지면서 전경련의 힘을 굳이 빌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삼성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 재벌이 경제민주화 발목을 잡아왔다는 지적에 대한 생각은.

▲ 한국의 경제민주화가 실패한 것은 부도덕한 재벌 때문이다.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도 재벌과 은행들에 의해 빚어진 사태였다. 대마불사 식으로 세를 불려나간 재벌기업들은 은행으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대출받았다. 은행 등 거의 모든 금융권이 덩치가 큰 대기업을 믿고 돈을 뜯길 위험도가 낮다는 인식하에 ‘묻지마 대출’을 해주면서 화를 키웠다. 당시 대부분의 재벌들은 은행 돈을 빌리려 혈안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은행이 대출상환 독촉을 하게 되면서 외환위기를 불러들였고 이것이 확산되면서 터진 것이다. 당시 금리도 30% 이상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특히 현대와 대우 같이 부실했던 재벌들은 30% 악성고금리에도 불구하고 대출을 받아갔다. 그렇게 부실은행과 대기업 회사채 시장이 마비되면서 국가전체가 파국을 맞았다. 국가파탄을 맞은 YS 정권에 대한 불만여론이 비등해지면서 재벌개혁을 촉구했지만 재벌의 힘에 밀린 정부 여당이 강력하게 추진하지 못했다.

 

 

- DJ 정부 초대 경제수석 당시 개혁반대 세력에 의해 밀려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 IMF이후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에서 나는 청와대 초대 경제수석을 맡고 있었다. 외환위기 와중에 의욕적으로 개혁의 칼을 높이 들며 강력하게 추진을 했지만 무소불위한 재벌의 힘은 집중적인 로비를 통해 김대중 정부와 여야 정치권을 이미 장악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천거하려는 경제관료 인사 임명안에 부적격 사유를 들어 여러차례 극렬하게 반대표명을 했다. 그러자 반대세력들이 연일 내게 공격과 비난을 가했다. 결국 반대파 힘에 밀린 김대중 대통령이 굴복하다시피 하면서 3개월 만에 나를 다른 부서의 수석으로 좌천시켰다. 이렇게 해서 정부의 재벌개혁이 주춤한 상태가 돼버렸다. 물론 그 당시에도 재벌기업에 대한 부채비율 감축개혁안이 있었다. 당시 대우 김우중 회장이 과도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결국 경영일선에서 손을 뗐다. 그런 후 김 회장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자발적으로 해외로 도피하듯 빠져나갔다. 누가 나가라고 압박한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러고서는 몇 년 후 귀국해서는 김대중 정권이 대우재단을 해체시켰다는 말을 했다. 해외로 자진 도피했던 사람이 그렇게 발언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대우는 현대에 이어 두 번째로 빚이 많았다. 대우는 하루하루 기업어음 만기일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단기악성 부채마저 끌어다 쓸 여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그렇게 해서 시장의 자율적 판단에 의해 최종부도를 맞은 것이다.

 

 

-언론의 재벌 관련 보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 요즘 꽤 공정성으로 인기를 끄는 한 방송사 프로그램 진행자와 함께 한 달여 전쯤 2시간 동안 경제현안 등에 관해 인터뷰 녹화를 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내가 말했던 내용은 단 1초도 방송에 나가지 않더라. 진행자는 녹화 전 삼성 등 모든 재벌들이 최순실 게이트 사건의 최대 피해자라는 발언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어서 거절했다. 그래서 방송자체를 삭제해버린 것 같다. 이렇듯 현재 재벌입장을 들어주는 언론이 90% 이상이다. 심각한 문제다. 심지어 JTBC까지 이재용 부회장 편을 들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 세상에서 한겨레, 경향신문 등 진보언론들도 믿기가 어렵다. 종편도 마찬가지다. 물론 언론이 광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생리가 강한 것은 십분 이해한다. 진보성향인 경향신문도 지난 1월 1일자 1면에 5단으로 삼성광고가 나갔고, 몇 일후 한겨레에도 삼성광고가 나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지러운 삼성의 시국상황에 편승한 언론의 속보이는 광고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국내의 보수와 진보언론 대다수는 대기업 광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비리를 덮는 조건으로 그에 상응한 대가를 얻는 언론의 속성 역시 변하지 않았다. 언론의 광고 의존적 시스템 때문에 재벌의 입장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 긴급사태에 빠진 삼성은 언론의 여론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진보 언론에게마저 광고라는 통 큰 먹잇감을 던져주는 것이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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