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고통하다, 그리고 기억하다
함께 고통하다, 그리고 기억하다
  • 김혜영 기자
  • 승인 2017.04.1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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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세월호 3주기를 보내며 / 김혜영

 

“당시 저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어요.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 사고 소식을 접했던 기억이 정말 선명해요. 저도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정말 남일 같지 않았고 충격적이었어요. 언론의 오보도 믿겨지지 않았죠.”

 

 

2015년의 여름날, 안산의 세월호 분향소에서 학우들과 함께 일부 유가족들을 만났다.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아이들보다 고작 한 살이 많은 신입생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말씀에 어렵게 마이크를 잡고 입을 뗐다.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을 애써 모른 척 하며 울음을 꾹 참았는데, 힘겹게 눈물을 그치고 막 대화를 시작해보려는 분위기를 망칠 수는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저 그 당시에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만 정리되지 않은 언어로 전달할 뿐이었다.

정말, 아직까지도 2014년 4월 16일 교실의 분위기와 선생님의 표정 하나하나까지 다 기억이 난다. 참사 소식을 듣자마자 교실에 몇 초간 정적이 흘렀고, 컴퓨터 사용 금지를 담당하는 학생이 예외적으로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에 들어갔다. 수업이 시작되면 선생님과 함께 뉴스를 봤고, 쉬는 시간이 되면 학생들끼리 새로운 소식을 찾아보았다.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붕괴 사건을 겪은 선생님들의 반성적인 이야기를 들었고, 늘 활기찼던 점심시간은 울음소리와 기도소리로 가득 찼다. 하루 종일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처럼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뉴스에만 귀를 기울였다. 당시 잠자는 시간을 1초라도 줄이려 노력했던 수험생이었는데, 그날 하루만큼은, 아니 당분간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지냈다. 세월호 세대인 필자의 세월호는 아직도 선명한 기억 그 자체였다.

“정말 죄송하지만…제가 무엇을 해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요. 리본을 달고 분향소에 오는 것 말고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조심스럽게 드린 질문에 유가족들은 언론에서 보인 것처럼 뚜렷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머뭇거리고, 미안해하고, 조심스러워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진실에 관심을 갖게 도와달라고, 우리가 진실을 밝히는 데 계속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셨다. 이런 사회에서 살게 해서 어른으로서 미안하다는 사과 뿐, 함께 투쟁하자는 당연한 부탁을 들을 수 없었다. 분향소에선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의 자리에 사진 대신 흰 배경이 자리했기에, 아버지가 직접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며 꼭 기억해달라고 하실 뿐이었다. 기억과 관심, 당시 일부 유가족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는 두 단어로 정리될 수 있었다.

 

 

그 후 학내 세월호를 기억하는 모임에 들어가 여러 활동에 참여했다. 모임의 이름에도 ‘기억’이 들어가 있었고, 세미나와 같은 활동의 이름에도 꼭 ‘기억’이 자리했다. 이상했다. 기억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왜 이토록 기억에 집중하는 걸까. 행동과 실천을 말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6년, 2학년이 되어 소수자 신학 강의를 들었다. 강의 구성원 대부분이 노란 팔찌와 리본을 하고 있었는데, 교수님은 항상 초췌한 모습이었다. 강의 때마다 이번엔 어떤 현장에 다녀오셨는지 생생하게 이야기해주셨는데, 대부분이 세월호와 관련된 것이었다. 참사 이후 단 하루도 세월호를 잊은 적 없다는 교수님은 세월호 이후의 신학을 하려 노력하셨고, 함께 고통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셨다. ‘함께 고통하다’라는 말은 ‘compassion’에서 온 것인데, 우리나라 성서에서 ‘자비’로 해석된 단어이다. compassion은 어원에서 알 수 있듯 함께(com) 고통하다(passion)라는 뜻이고, 자비처럼 시혜적인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강의에서 이 단어를 배우면서, 함께 고통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했었다.

강의 중 가장 인상에 남은 건 세월호 유가족들이 너무 많은 전문 용어를 알고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배나 선박 사고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던 이들이 온갖 전문 용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할 정도로 공부하고 연구했다. 그들은 고통과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도움을 받아야하지, 거리로 나와 투쟁하고 직접 발로 뛰어 수사하고 감시해서는 안 됐다. 그 일은 공무원이, 해당 담당자가, 혹은 시민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당사자운동이란 얼마나 당사자에게 폭력적인 일인가. 그러나 인터넷의 댓글에는, 아니 당장 필자의 주변만 하더라도 세월호를 지겹다 말하는 이들이 있고 노란 리본 하나 다는 것도 눈치를 봐야했다. 강의실의 담론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았다.

 

 

그제야 왜 우리가 ‘기억’을 중시했는지 알 것 같았다. 참사 그날 우리가 느낀 것을 기억하고, 유가족의 아픔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다른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를 온전히 기억할 수 있는 교실을 지키고 싶었고 노란 리본으로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었다. 왜곡된 시선과 소비로 점철된 현대의 이야깃거리들이 아니라, 당시의 기억으로 움직이고 희망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2017년 4월 16일, 벌써 1000일이 지났고 3주기가 되었다. ‘Remember 0416’에는, ‘기억하자 세월호’에는, 2014년 4월 16일에 우리가 느낀 것을 기억하고, 현재에도 계속되는 유가족의 고통을 기억하고, 미래에 세월호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기억될 수만 있게 노력하자는 세 시제의 뜻이 담겨있다. 우리, 기억하자. 세월호를 기억하자.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으며,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니.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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