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류승연

 

문득 궁금해진다. 다른 이들도 인생을 싸워가며 사는 걸까? 아니면 나에게만 인생이 전투인 걸까? 매일을 부딪치고 이겨내며 싸워나가야 하다 보니 언제나 전투력이 충만해 있어야 하고 때로는 그로 인해 힘이 부치기도 한다.

인생은 그냥 살아지는 것일 수도 있을 텐데…. 에휴, 곱고 귀여운 할머니로 늙는 게 꿈이었는데 이러다가는 욕쟁이 할머니만 안 되도 다행이지 싶다.

일반학교 특수반에 다니고 있는 아들을 장애인들만 다니는 특수학교로 전학시키기로 했다. 여러 사정이 있기 때문인데 간단히 정리하자면 ‘일반 사회로의 진입에 실패’ 쯤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그동안 아들을 일반 사회 안에 편입시키기 위해 해왔던 노력도 노력이지만 그 과정에서 겪은 마음고생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와서 뭔 일을 벌이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흔적을 남기고 싶다. 우리 아들이 이곳에 왔다갔다는 흔적일랑은 남겨야지.

제2의 우리 아들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학교 측에 요구사항을 전한다.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인식 개선을 위한 ‘장애 이해 교육’을 건의한다. 아예 특수반이 개설돼 있지 않은 곳이면 모르되 특수반이 있고 장애 아이들이 일반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받는 학교라면 달라야 한다고.

더는 고개 숙인 죄인으로 살지도 않는다. 그동안은 아들이 통합 수업 중에 일반 아이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늘 전전긍긍했는데 이제는 고개를 뻣뻣이 들고 교정을 걷는다. 오가다 마주치는 학부모들 앞에서도 당당하다. 더는 미안해하지 않는다. 아니, 당신들이 나에게 미안해 했으면 좋겠다.

장애는 나쁜 무엇이 아니다. ‘특성’일 뿐이다. 나와 다른 특성을 가진 인간을 가까이에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 산교육의 기회를 놓친 건 당신들이다. 슬퍼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자녀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당신들이다.

전학이 결정되고 나서, 나는 투사가 된다. 두 주먹을 꽉 쥐고 마음가짐을 달리하고 학교에 들어선다. 아들이 하교하고 난 이후에도 교사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이후의 일을 상의한다.

전투력을 100%로 충전시키고 일을 진행해 나가지만 가끔씩 마음이 무너지려고 하는 순간이 있다. 기분전환 차 홀로 노래방에 가서 이 노래 저 노래를 부르는데 ‘혼자가 아닌 나’를 부르다 말고 울컥한다. “더는 약해지지 않을게. 많이 아파도 웃을 거야~”라는 가사가 나오자 울컥해서 더 이상 노래를 잇지 못한다.

아들의 일은 일대로 처리하면서 내 스스로의 인생도 개척해 나간다.

지난달부터 이용하기 시작한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 이제 아들도 활동보조인과 함께 하는 일상에 제법 익숙해졌다. 나 없이 활동보조인과 하교를 하고 치료실에 오간다. 많아진 자유시간 동안 나는 내 일을 찾아 나선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고, 아들의 정신연령은 더더욱 어리기 때문에 직장에 취업을 해서 출퇴근을 할 수는 없다. 프리랜서로 일을 늘려갈 방법을 찾는다.

차라리 어디든 한 회사에 취업을 해서 정치부 기자로 복직을 한다면 그나마 자리가 있을 것 같다. 이제 정치는 싫어. 죽어도 안 할 거야. 출퇴근도 안 돼.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프리랜서여야 해.

내 조건에 딱 맞는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벌써 몇 년이던가. 경력 단절 기간.

경력 단절 기간만 긴 게 아니다. 요즘엔 왜 이리 글 잘 쓰는 사람이 넘쳐나는지. 때때로 반할만큼 글을 잘 쓰는 일반인들을 보면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아니 이 사람은 직업도 따로 있으면서 왜 이리 글까지 잘 써? 글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뭐하고 살라고!

그렇다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무기력하게 있을 수만은 없다. 내 삶을 개척해 나가는 건 나만이 할 수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맥주 CF에서.

다시 전투력을 채운다. 아무 것도 없는 내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나길 바라며 싸울 준비를 한다. 이력서 따위는 던져 버린다. 지금 내 나이에 필요한 건 이력서가 아니다. 내가 살아온 삶이 곧 내 이력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나를 알릴 수 있는 ‘특별한’ 자기 소개서다.

구인광고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공채 같은 건 쳐다 볼 필요도 없다. 내가 일을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회사를 먼저 찾는다. 이리저리 검색을 통해 인사권을 쥔 자의 이메일 주소를 찾아낸다. 무작정 이메일을 보낸다.

공채기간이 아닌 것도 알고, 현재 빈자리가 없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분명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자기소개서를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나를 Keep해 놓으라. 언제든 빈자리가 생겼을 때 써먹을 수 있는 인재로 쟁여놓으라.

사실 이런 건 20대에나 통하는 일일 지도 모르겠다. 잘 봐줘도 30대 초반? 불혹을 갓 넘긴 41살의 아줌마가 하려니 낯간지럽기도 하다. 하지만 내 스스로가 개척하지 않으면 내 삶은 언제나 제자리일 수밖에 없다. 매 순간 삶이란 것과 싸워가며 한 발씩 내딛어야 한다.

절실함이 통했을까? 당당함이 먹혔을까? 응답이 온다. 당장 취재 일정이 잡혔다. 이렇게 빨리 외부 일정이 잡힐 줄 알았다면 살이라도 빼놓을 걸. 밤 11시를 넘겨 습관적으로 먹어대던 쥐포와 젤리가 떠오른다.

아침마다 띵띵 부은 얼굴. 남편은 얼굴 살이 디룩디룩 쪘다고 놀리곤 했는데 이건 찐 살이 아니다. 염분 때문에 부은 얼굴이다. 오늘부터라도 안 먹어야지. 냉장고에 숨겨놨던 쥐포는 남편한테 주고 싱크대 서랍장에 숨겨놨던 젤리는 딸에게 줘버려야지.

내 삶과 싸워나가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하나씩 하나씩 일이 풀려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의문도 든다. 다른 이들도 다 그런 건가? 왜 나는 힘들게 싸워나가야만 하는가?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평안하기만 하다. 자신의 인생과 맞짱 뜰 일이 없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편하게 아이들을 키우고 백화점에도 가고 1년에 한 번씩은 해외도 나간다.

직장맘이라도 마찬가지. 10년 넘게 해 온 익숙한 업무들을 순조롭게 처리해 나갈 뿐 매 순간마다 싸워나가야만 인생이 개척되지도 않는다. 어제는 오늘과 같고 내일도 모레와 같은 일상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안 곪은 가정이 없고 사정없는 사람이 없다고는 하지만 진짜 그런 건가? 혹시 나만 이렇게 투사로 사는 거 아니야? 이렇게 매 순간이 치열한 삶은 어쩌다 내게 온 것인가? 아니면 내가 선택한 것인가?

아무래도 내가 선택했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돌이켜보면 난 언제나 투사형 여성들에 매력을 느꼈다. 가장 좋아하는 인생 캐릭터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이었고, 20년 전에 처음으로 만든 이메일 주소에도 스칼렛의 이름을 넣었다.

영화를 봐도 투사형 여성이 나오는 영화가 좋았다. ‘헝거게임’을 처음보고 열광했던 건 내가 바라는 현대판 투사가 여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즉시 책을 구해 전권을 다 읽었는데 마지막인 3권에서 여주인공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걸 보며 책을 집어던져 버리고 싶었다. 약해진 마음으로 방황하는 건 내가 바라는 투사형 여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성격이 투사형이거나 싸움닭인 것도 아니다. ‘목소리 미인’이란 말을 들을 만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하고 필요한 순간에 얼마든지 충만한 애교와 콧소리를 내기도 한다. 아, 앞서 한 말 중에 정정. 목소리 미인이 아닌 목소리‘만’ 미인.

어쨌든 그렇게 날마다 싸워나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냥 살아지는 것보다는 내가 스스로 살아가는 게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때때로 싸움의 무게가 버겁기도 하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으니 오늘도 한 발을 내딛는다. 내일도 또 한 발.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더 이상 싸워나가도 되지 않는 날이 오겠지 하는 바람을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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