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류승연

 

가정 경제를 책임진 주부이다 보니 언제나 예산을 생각하고 움직인다.

매달 1일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는데 월초에는 외식도 자주 하고 사고 싶은 것도 망설임 없이 산다. 하지만 중순을 거쳐 월말이 되면 극도의 절약모드로 들어가 외식도 금지하고 식재료를 사더라도 한 푼이라도 싼 것을 찾는다.

물론 카드가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에는 얼마든지 초과지출을 할 수도 있지만 가급적이면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한다. 초과예산은 전부 가계 빚이 되기 때문이다.

 

▲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대선주자들의 육아정책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빛깔 좋은 과실들을 잔뜩 자랑은 해놨는데 어떤 예산으로 마련할 건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가정 경제도 몇 달만 잘못 운영하면 파산하기 마련인데, 나라 예산에 대한 고려도 없이 말만 먼저 내뱉고 보자는 모습이라니.

왜 나라 예산을 평범한 주부인 내가 걱정해야 하는 거지? 대선주자들의 싱크탱크, 정책팀은 다들 뭐하고 있는 거야? 우려스러웠다. 전부 말만 앞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육아정책을 살펴보며 가장 걱정됐던 건 아동수당 도입에 대한 부분이었다. 왜 자꾸 나라에서 돈을 주는 것으로 생색을 내려고 하는 걸까? 그 뒷감당은 어찌 하려고?

문재인 후보는 0~5세까지 월 10만원, 안철수 후보는 0~11세까지 월 10만원(소득하위기준 80%대상), 유승민 후보는 0~23개월까지는 40만원을 24~35개월까지는 2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홍준표 후보는 누리과정을 5단계에 따라 차등지원을 하는 대신 둘째 출산 시 100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래. 돈. 받으면 좋다. 세상에 공짜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꼬? 그런데 매달 10만원씩 받으면 앞으로는 애를 더 낳을 건가? 지금 저출산 문제가 매달 10만원씩을 못 받아서 발생한 건가?

왜 애를 안 낳는 건지, 저출산 문제의 핵심이 뭔지 후보들이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애를 낳아 키워본 지 오래돼서 그런 건가? 아니면 부모라는 직책을 얻기 위해 ‘정자’만을 제공했을 뿐, 바깥일을 핑계로 육아에는 전혀 참여해보지 않았던 걸까?

매달 십 만원이 없어서 애를 안 낳을까봐 나라에서 돈을 주려고 하는 걸까? 십 만원은 받아도 별 감흥 없고, 안 받아도 아쉽지 않은 애매한 액수다. 자. 그럼 유승민 후보의 공약대로 금액을 올려보자. 두 돌까진 매달 40만원씩이다.

호오. 애를 낳았다고 매달 40만원씩이 지원되면 그 때는 출산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 더 해볼 수도 있겠다. 40만원이면 적어도 기저귀와 분유값은 나라에서 주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 쌍둥이 출산 가정엔 월 80만원을 줘야 할 텐데, 대체 그 예산들은 어디서 마련할 건데? 또 담뱃값 올리고 소주값 올리게? 월급에서 떼어가는 세금액수 늘리고 공과금과 대중교통비도 올리게? 기저귀 값을 받는 대신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내야 할 세금도 왕창 올려버리면 어차피 가계의 부담은 다시 원점이 되는 것 아닌가!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이 돈이 될 수는 없다. 당장 생색내려고 돈 몇 푼씩 주겠다고 한 약속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육아문제, 저출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애를 낳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필요한 건 제도적인 변화지 매달 받는 돈 몇 푼이 아니다.

안타까운 건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육아 커뮤니티 두 곳에서 엄마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서도 대통령에게 바라는 육아정책 1순위로 ‘양육수당 확대’가 나왔다는 것이다. 육아 커뮤니티의 특성 상 아이들이 어린 엄마들이 많이 이용을 하기 때문에 당장 눈앞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택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제까지나 어리지 않다. 꼬박꼬박 자라나간다. 그리고 아이들의 성장 속도에 따라 엄마들이 바라는 정책들도 달라진다. 아이들은 커 나가고 그에 따라 바라는 정책들이 달라져도 엄마들의 삶은 바뀌지 않는다. 왜냐고? 아이들이 어리나 크나, 독박육아는 언제나 엄마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선.

엄마 품을 떠나 아이들이 안심하고 있을 수 있는 제도적인 사회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여자들이 더 이상 둘째 셋째를 낳지 않는다. 잘 다니던 직장도 포기하고 애 보느라 매어 산 세월이 얼만데 둘째 셋째를 낳아서 다시 또 처음부터 시작하란 말인가!

육아휴직 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 직장에 다녀도 마찬가지. 1년 내지 2년을 육아휴직으로 쉬다 돌아왔으니 이젠 일에 매달려야 한다. 동기들은 벌써 승진을 해서 앞서나가고 있을뿐더러 둘째 셋째를 가져 육아휴직계를 다시 낼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고 있는 신의 직장도 있지만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게 아니란다. 다른 팀원들은 일에 치어 정시 퇴근도 못하고 있는 판에 나 혼자 임신했다고 두 시간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못할 짓이란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환영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그러다보니 임신과 출산, 육아는 오로지 희생을 기반으로 한 엄마들의 몫이 된다. 아이는 예쁘고 천사 같지만 하나면 족하다는 인식이 늘어간다. 저출산 문제는 굳이 내가 감당하기 싫은 남의 문제가 된다.

육아정책의 기본은 아이를 마음 놓고 낳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이를 위한 사회적인 기반을 조성하는 데 정책의 포커스가 맞춰져야 한다. 사회적 기반이라는 건 당장 눈에 보이는 무엇이 아니다. 선거를 몇 주 앞두고 생색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저출산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매달 돈 얼마씩 주는 것으로는 안 된다. 하지만 새로운 공약이 아닌 현재 있는 육아휴직 제도만 잘 지켜져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작은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 공기업이나 대기업에선 육아휴직 제도를 사용하는 데 큰 문제가 없지만 대다수의 중소기업에선 아직도 ‘출산이 곧 퇴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일부 후보는 이를 위해 육아휴직을 했을 경우 인센티브를 주는 보상제를 공약했지만 그런 식의 보상제로는 변화가 미흡하다. 차라리 징벌제로 가는 게 낫다. 육아휴직 제도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회사에 강력한 세금폭탄을 먹이는 거다. 그 편이 현실적이다. 그래야 아빠들도 회사 눈치를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내가 임신했을 때의 일도 생각이 난다. 출산 후 1년 간 육아휴직을 한 뒤 다시 복귀하려고 했다. 그런데 인사팀의 총책임자인 여자 이사님은 나하고 마주칠 때마다 자신은 출산하고 3주 만에 다시 직장에 나갔다며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다행히 내 자리를 비워두고 기다려준 고마운 회사였지만 쌍둥이 육아는 2년까지 휴직기간을 늘릴 수 있었음에도 회사에서 허용한 시한은 1년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느린 아들’ 때문에 1년의 육아휴직 후 사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는 허다하다. 어린 유아를 종일제로 봐주는 어린이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내 여동생 같은 경우는 3살 된 조카를 어린이집에 3~4시까지 맡기고 그 이후부턴 이모님을 고용해 퇴근할 때까지 맡긴다. 직장에 나가기 위해 이중의 육아부담을 껴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이중부담을 껴안고라도 직장에 나갈 수 있으면 다행이다. 여러 사정상 그럴 수 없는 가정이 많기 때문에 결국은 엄마들이 집에 주저앉게 된다. 경력단절 여성이 된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난 뒤 다시 일을 해보려 하지만 그 때 가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비정규직 노동뿐이다. 상황이 이런 데 누가 애를 둘씩 낳고 셋씩 낳을 생각을 할까?

물론 후보들도 이런 문제를 의식했는지 국공립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늘리고 어쩌고 등등의 공약을 내놓긴 했다. 나는 이에 대해서도 보기 좋게 비웃어 주는 바이다. 왜냐면 예산을 마련할 방법을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는 한 실현 불가능한 약속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일례로 병설유치원만 봐도 그렇다. 지적장애를 가진 우리 아들은 한 자리 비어있는 병설유치원에 8명의 발달장애 아동들과 함께 배치를 받았었다. 9대 1의 경쟁. 그럴 바엔 특수학급을 하나 더 늘려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예산이 없어서 못 늘린다는 답변만을 받았다. 전국 어디나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병설유치원에 학급 하나를 늘리는 것도 예산을 못내 쩔쩔매고 있는 마당에 국공립 보육기관을 얼마까지 늘리고 어쩌고. 그러면서 일반 가정에 아동수당까지 주겠다고? 헛웃음만 난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와서 자신들이 공약한 내용들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생각 좀 하고 일을 진행시켰으면 좋겠다. 공약을 지키겠다고 무리하게 일단 추진하고 보자는 생각은 위험하다.

육아정책의 기본은 아이를 안심하고 낳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환경’에 방점이 찍혀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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