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지는 지구촌 경제 장벽

 

‘장미대선’ 너머 한국경제가 넘어야 할 또 다른 장애물이 아른거리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거세지고 있는 ‘보호무역주의’가 그 것이다. 무역업계에 따르면 지구촌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서 우리나라 경제에도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최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한국은 30개국으로부터 187건의 수입규제 조치를 받고 있거나 관련 조사가 진행 중이다. 여기엔 반덤핑 관세, 세이프가드 등이 포함됐다. 한국 경제가 전방위적으로 압박받고 있는 경제 사안들을 들여다봤다.

 

 

한국 경제를 향한 지구촌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와 비교할 때 규제국수는 비슷하지만 규제 건수는 2016년 말인 184건보다 늘었다. 한 달 간격으로 한 건씩 늘어나는 추세라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올해엔 호주 2건이 제외됐지만 대신 터키 2건, 인도 중국 일본 1건이 늘었다.

가장 압박을 받고 있는 품목은 철강과 금속이다. 절반 가까운 89건에 이른다. 화학 품목이 53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들 세 품목에 대한 수입규제 조치가 전체의 75%를 차지하는 셈이다.

특히 미국의 입바람이 거세다. 철강과 금속 분야에선 미국의 규제 건수가 18건으로 가장 많았다. 화학 분야에서는 중국과 인도가 26건으로 절반에 이른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반덤핑, 상계관세 절차법을 강화하면서 다른 나라들도 수입규제 조치를 강화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미국 상무부는 이와 관련 “조사대상 수출기업이 정보제공 요구에 최선을 다해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덤핑마진을 산정하기도 했다. 무역업계에선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비관세장벽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입장이 곤란스러워졌다고 우려하고 있다.

중국과 무역하고 있는 50대 남성 K씨는 “롯데의 사례처럼 소방법이나 식품위생법으로 공격하면 피할 방법이 도무지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사드보복도 중요한 이유지만 자국보호주의가 강하게 깔려있다는 얘기다.
 

중, 다양한 ‘사드 보복’

이 같은 보호무역주의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한 각 기업들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으로 고전 중인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현지공장 건설 등을 통해 유럽과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선 상황이다.

이와 관련 삼성SDI와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은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 시장을 찾고 있다. 오는 2020년까지 중국의 보조금 정책 자체가 폐지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들의 추격전도 거세다.

이에 따라 국내 배터리 업계는 수출시장 다변화 등 체질 개선을 고민 중에 있다. 기술 개발과 함께 공격적인 투자로 생산능력을 늘릴 계획이다.

이처럼 틈새를 찾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중국 정부의 견제가 가장 큰 이유다. 한국 기업들의 중국 전기차 배터리 인증은 실제로 지난 1년 넘게 답보상태에 빠졌다.

삼성SDI와 LG화학은 지난해 6월 중국 정부의 4차 인증에서 탈락했으며 지난해 연말엔 중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할 전기차 모델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국내 업체 배터리가 적용된 전기차가 모두 제외됐다.

중국이 경우 전기차 제조사는 국가보조금을 받고, 판매상은 지방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중국정부의 입김이 강할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손실도 늘어나는 추세다.

삼성SDI의 중국 실적은 지난해 386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LG화학 역시 지난해 중국 사업에서 175억원의 순손실액을 기록하는 등 하락세다. SK이노베이션은 아예 중국 전기차 배터리 생산 합작공장의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도 했다.

중국 대신 눈독을 들이는 곳은 유럽이다. 삼성SDI는 4000억원을 투자해 헝가리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계획대로 되면 유럽 공장은 2018년 하반기에 가동될 예정이다.

LG화학도 지난해 10월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전기차 배터리 공장 기공식을 가졌다. 2018년 하반기 생산가동을 목표로 총 4000억원이 투입됐다.

전자업계도 보호무역주의 바람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거론하며 분위기 몰이에 나선 것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전자업계는 미국측의 주요 공격대상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국내 업체들은 대비책으로 미국내 현지공장 설립에 나서는 등 고민이 적지 않다. LG전자는 가장 먼저 미국 현지 공장 설립을 확정했다. 미국 테네시 주 클라크스빌에 신규 가전공장을 짓고 세탁기를 생산할 예정에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미국 가전업체의 반덤핑 제소 공세가 거세지면서 현지 생산 방안을 검토해 왔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도 고민이 깊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자신의 트위터에 삼성전자가 미국에 공장을 지을 수 있다는 언론보도를 인용하면서 “생큐 삼성”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오스틴의 반도체 공장 보완 투자와 함께 지난해 인수한 미국 가전 브랜드 데이코의 냉장고 현지 생산을 결정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미국 앨라배마주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를 돌며 용지를 둘러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이 북미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만큼 미 공장을 통한 생산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분기 미국 생활가전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은 18.8%로 1위였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미국 업체인 월풀을 제친 만큼 견제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 현지생산의 경우 인건비가 멕시코의 6배, 베트남의 10배에 달하는 등 어려움도 적지 않다.
 

철강 “미, 직접 투자 어려워”

철강업계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미국은 최근 들어 국가안보를 이유로 철강제품 수입을 제한하는 움직임을 강화해 왔다. 국내 업체에서 생산하는 열연 강판, 냉연 강판 등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최근엔 선재까지 반덤핑 조사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비롯 수입 철강 제품에 대해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한다는 행정각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국가 안보에 큰 위협이 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해당 제품에 대해 수입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듯 미국에 철강 생산 공장을 짓는 것은 쉽지 않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 등 철강 빅3 CEO들은 지난달 회동에서 “미국에 직접적인 투자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철강업계는 올 들어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미국의 반덤핑 판정이 강화되면 다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업계에서 기업 차원이 아닌 정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이 언급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날로 높아지는 ‘보호무역주의’의 파고에서 한국 경제가 새로운 항로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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