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한 ‘특권’ 휘두르는 국회의원들을 아십니까?
가장 위대한 ‘특권’ 휘두르는 국회의원들을 아십니까?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7.05.1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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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1회 / 이석원 언론인

 

세계 최고의 복지 시스템을 가진 나라 스웨덴은, 시민들이 누리는 복지 혜택을 만들고 적용하고 유지하는 이들의 부단한 노력과 자기희생이 존재한다. 그들은 ‘국회의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언뜻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혹시 대한민국의 그것과 다른 존재인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같은 존재다. 거의 같은 일을 한다. 그런데 그들은 다른 존재이기도 하다. 유사 이래 최악의 국정 농단 사태로 인해 헌정사상 첫 파면 대통령을 만들어낸 대한민국. 새 대통령을 탄생시키며 해야 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인 가운데도 중요한 어젠더 하나가 개헌이다 보니 ‘세계에서 가장 특권 없고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국회의원’을 보유한 스웨덴의 시스템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 스톡홀름 구시가지인 감라스탄 입구에 있는 스웨덴 국회의사당 건물

 

‘세계에서 가장 특권 없고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국회의원?’ 사실이 그렇다. 스웨덴의 국회의원을 우리의 ‘그것’과 같은 선에 놓고 생각하면 머리가 뒤엉키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한국의 국회의원 1명이 1년에 가져가는 돈(세비)은 모두 2억348만원에 이른다. 상여금을 포함한 연봉 1억3796만원에 의정활동 경비 9251만 원이 합쳐진 금액이다. 그런데 스웨덴의 국회의원은 연봉으로 72만 크로나, 우리 돈 약 9000만원을 받는다. 한국과는 달리 관용차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의회에서 반경 50km 밖에 거주하는 국회의원에게는 별도로 월 8000 크로나(우리 돈 약 100만원)를 주거나 아니면 작은 아파트(방 하나에 거실 하나가 딸린)를 빌려준다. 그런데 ‘액면가’로도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GNI)이 이제 겨우 2만 7000달러인 한국과 5만 달러인 스웨덴이라면 ‘액면가’만으로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게다가 스웨덴은 우리와 달리 상시회기제다. 모든 스웨덴 사람들이 휴가를 가는 7, 8월 두 달을 제외하고 스웨덴 국회는 1년에 10개월 동안 회기가 이어진다. 이런 상태에서 스웨덴 국회의원들은 재임 4년 동안 1인당 평균 87개의 법안을 발의한다. 지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스웨덴 국회에서는 1인당 200개 이상의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이 43명, 150개~199개 법안을 발의한 의원도 47명이나 된다. 최고 기록은 4년 동안 무려 437개의 법안 발의다.

그런데 스웨덴의 349명 국회의원은 개인 보좌관이 없다. 우리 국회의원이 보좌관 2명, 비서관 2명, 그리고 기타 비서와 운전기사 등 국회 사무처에서 임금을 지급하는 보조 직원 7명까지를 둘 수 있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스웨덴 국회의원은 소속 정당 차원의 정책 보좌관 몇 명을 의원들끼리 의논해 도움을 받는다. 즉 수십 개에서 200여개에 달하는 법안을 만들면서 스웨덴의 국회의원은 직접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고, 이해 당사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한다.

이쯤 되면 스웨덴 국회의원이 상당히 고된 직업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 문제는 특권도 없다는 것이다.

국회가 있는 스톡홀름에 거주하는 국회의원의 경우 원칙적으로 버스나 전철, 트램 등의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해야 한다. 어쩌다가 혹시 택시라도 타면 곤란해진다. 비용을 국회에 청구할 경우에는 적어도 3장 이상 분량의 사유서를 작성해야 하고, 자기 돈으로 처리한다고 해도 시민들이나 국회 사무처, 또는 소속 정당 관계자가 이를 알면 적절한 변명거리를 대야만 한다. 1995년 당시 부총리였던 모나 살린이 업무용 신용카드로 토블론이라는 막대 초콜릿을 산 것 때문에 부총리에서 물러난 ‘토블론 스캔들’을 생각하면 기가 막힐 노릇인 거다.

국회의원이 업무상 해외 출장을 가더라도 항공편은 ‘경제성, 시간, 여건 등을 고려해 가장 저렴하고 가장 빠르며 친환경적인 운송수단을 이용해야 한다’는 의원활동지원법 규정에 따라 이코노미 좌석을 이용한다. 물론 법의 규정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항공사 홈페이지를 이용한 항공편 예약 보다는 저가 항공 예약 사이트인 ‘스카이 스캐너(Sky scaner)’를 애용한다. 그것도 본인이 직접. 물론 출장지 호텔에 대해서도 의원활동지원법은 ‘중간 수준’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식사도 ‘일반 공무원 수준’으로 정해져 있으며, 혹시 초청자가 숙소나 식사를 제공하는 경우 이는 전체 출장비에서 실비로 공제한다.

 

▲ 스웨덴 국회 본회의장: 스웨덴은 국회의원 수가 모두 349명이다. 국회의사당 내부는 일반 관광객에게도 거의 매일 개방되고, 국회의사당 견학은 실제 국회의원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보니 스웨덴은 매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자발적 ‘불출마’가 많다. 평균 30%가 넘는다. 즉, 4년 국회의원 한 후 그만두고 본업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매 선거 때마다 100여 명에 이른다. 꼭 그렇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개중에는 ‘힘들어서 못해먹겠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스웨덴에서는 국회의원을 대표적인 3D 직종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대기업 과장 수준의 연봉을 받으면서도 눈치 보느라 제 돈도 제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은 연중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휴가를 7, 8월이 아니면 쓸 수도 없는, 그래서 특권은 없고 의무만 강요되는 스웨덴 국회의원을 왜 하려고 들까? 그들은 자신들에게는 절대적인 특권이 있다고 얘기한다. 스웨덴 국민 1000만 명에게는 없지만 자신들 349명에게는 있는 특권, 바로 ‘입법’을 얘기하는 것이다.

1932년 사민당이 처음으로 집권을 하면서 스웨덴은 복지 국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페르 알빈 한손 총리에서 시작해 타게 에를란데르 총리에 와서 구축한 ‘정권과 재벌과 노동조합의 살트셰바덴 협약’은 스웨덴을 세계 최고의 복지 국가로 만들었다. 에를란데르의 비서 출신으로 후임 총리에 오른 올로프 팔메는 조금이라도 남아 있던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모두 없애면서도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게 만들었지만 그 속에서 스웨덴의 국회의원들은 스웨덴의 복지를 위한 법안들을 계속 만들고 고치고 완성해 왔던 것이다.

349명의 그들이 얘기하는 ‘스웨덴에서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는 지상 최대의 특권’은 바로 그것이다. 전용 승강기를 탄다거나, 주차 금지구역에 주차를 한다거나, 공항에서 귀빈실을 통해 검색도 받지 않고 통과하는 그런 특권을 누릴 시간도 없었던 그들은, 그야말로 시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특권으로 ‘만끽’하며 지금의 스웨덴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들은 무한한 행복을 느끼면서 어떤 이는 4년 만에 특권을 내려놓기도 하고, 어떤 이는 총리에까지 올라 그 무한한 특권을 더 누리고 있는 것이다.

최순실과 박근혜 국정 농단 사건은 ‘특권’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그건 개인의 욕망을 위한 특권이지 대한민국 5000만 명을 위한 특권이 아니었다. 그 ‘빌어먹을 특권’ 때문에 난리가 났던 나라,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에 정치의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 스웨덴의 복지는 부러워할 일이 아니라 적합한 정치로 그렇게 만들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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