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 류승연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로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를 일컫는다고 한다. 요즘 대한민국 젊은이들을 강타한 트렌드라고.

예를 들어 미래를 위한 주택적금을 붓는 대신 적금통장을 깨고 여행을 떠난다거나, 높은 임금의 안정적인 직장에 사표를 내던지고 가진 돈을 통 털어 자신만의 작업실을 차린다든가 하는 등의 삶의 태도를 말한다.

욜로 라이프가 확산되면서 TV에서도 욜로를 다룬 기획들이 눈에 띈다.

 

▲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하루는 거실에서 TV를 보던 남편이 흥분을 하기 시작한다. “누군 그렇게 살기 싫어서 안사는 줄 알아?” 무슨 일인가 들여다보니 욜로라는 명분하에 사고 싶은 것을 마구 사고, 하고 싶은 것을 거리낌 없이 하는 이들을 보고 있다. “아니 뭐 흥분씩이나 하고 그래. 그냥 놔 둬. 지금은 몰라. 어차피 그에 대한 책임이 다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걸.”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 베짱이는 게으르지 않다. 게으르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만 흘려보내는 걸 말한다. 베짱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게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오늘만 사는 태도로,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지 않고, 현재 자신의 행복에 충실했다. 이른바 욜로 라이프다.

그렇게 남편과 한참 동안 욜로 라이프의 부정적인 측면을 험담하고 있는데 문득 생각이 든다. 가만. 그러고 보면 나 역시 욜로 라이프 아니었나? 그 당시 그런 말이 없어서 몰랐을 뿐 내가 살아온 인생이 바로 욜로 라이프였잖아.

그랬다. 누가 누구를 욕한단 말인가! 내 스스로가 욜로 라이프를 살아왔으면서….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공부에 손을 뗀 나는 당시 세계를 강타한 보이밴드 ‘New Kids On The Block’에 미쳐 3년을 보냈다. 단순한 팬이 아닌 ‘극성 빠순이’랄까. 깨어 있는 모든 시간에 그들을 생각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연세대 농구부 ‘독수리 5형제’로 대상이 바뀌었는데 정신을 차린 건 고3이 되고 나서였다.

대학입시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1년 안에 지난 5년 간 배운 것들을 처음부터 새로 공부해야 했다. 그것이 중고등학교 시절 동안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낸 내가 지고 가야할 책임이었다.

대학에 갔다고 바뀌었을까? 아니 전혀! 연애를 시작했고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됐다. 지루한 전공 수업은 흥미가 없었다. 오늘만 사는 태도로 연애와 연극에 내 삶을 불태웠다. 그에 대한 책임은? 대학을 7년 다녀야 했다.

난 여대였다. 남녀공학이야 남자들이 군대도 갔다 오고, 어학연수도 갔다 오고, 휴학도 한 두 번 하다보면 7년 간 대학을 다니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군대 갈 일도 없는 여대에서 7년을 다니는 이는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다고 봐야겠지.

어찌어찌 졸업을 했다. 그럼 다음엔 뭐야? 직장이지. 직장 생활도 욜로 라이프.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보다 현재의 내가 하고 싶은 ‘좋아하는 일’에 집중.

3개월 동안 아르바이트 할 생각으로 입사한 학원 영업직이 재미있어서 2년의 시간을 그 곳에서 보냈다. 평생직장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기자나 앵커 등의 일을 언젠간 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은 하고 있었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되니 정작 기자생활을 시작할 땐 남들보다 출발이 늦었다.

이런 삶의 패턴은 소비패턴과도 이어졌다. 미래를 위한 투자? 그런 건 내 인생에 없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서른 한 살에 결혼을 하면서 나는 한 푼도 저축해 놓은 게 없었다. 아니, 한 푼도 없었다는 건 거짓말이고 아마 통장에 그래도 몇 만원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어쨌든 그런 나였기에 혼수와 예단, 예식 등 모든 결혼자금을 친정엄마가 혼자 부담했다. 월급을 받아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것도 아니었고 어디에 기부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버는 족족 내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내가 행복한 일에 아낌없이 소비했다.

다행히(?) 나와 정 반대 소비패턴을 지닌 남편을 만나 신혼 3년 간 4천 만 원을 저축할 수 있었다. 물론 강제적으로. 나는 입이 삐죽하게 나온 채로 월급의 일부분을 남편에게 내놔야 했다.

지금은 저축이란 걸 하고 싶어도 여유가 없어서 못한다. 다만 욜로 라이프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그간의 삶을 돌아보니 설령 여유가 있었더라도 내가 미래를 위한 저축을 꼼꼼히 잘 했을까 싶다.

그렇게 살아왔던 인생. 후회는 없다. 그 때 그 때마다 내 마음에 충실하게 열정을 불태웠기 때문에 지나간 과거에 후회나 미련이 남지는 않게 된 것이다. 아마 욜로 라이프의 긍정적인 측면이 이런 거겠지.

하지만 욜로 라이프의 부정적인 측면이기도 하면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그것. ‘책임’이라는 부분은 쉽게 생각하거나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인생을 ‘해야 할 일’ 대신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온 대가로 책임을 져야 할 시기마다 남들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했다. 책임이란 건 피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 나중에 더 크게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젊었던 그 당시 나의 욜로 라이프를 지켜보며 부러워하던 주변의 친구들. 자신을 위한 현재의 과감한 투자가 아닌 작지만 성실하게 미래를 위한 준비에 나섰던 친구들. 지금은 겨울을 맞은 개미가 되어 따뜻한 방에서 평온한 삶을 보내고 있다.

반면 노래만 즐겨 불렀던 베짱이인 나는 혹한의 겨울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그것이 현재의 내가 지고 가야 할 책임이다.

욜로 문화가 확산되면서 여기저기서 저명한 인사들이 사회현상에 대한 분석을 내놓는다. 눈에 띄는 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20년 전의 나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에 현재에 충실했었나?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러면 20년이 지난 요즘의 젊은이들은 높은 취업의 벽과 불행한 정치사 등을 이미 여러 번 경험하면서 점점 미래에 대한, 이 사회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게 된 건가? 그래서 현재를 즐기자는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는 건가?

만일 그런 거라면 욜로 선배로서 한 가지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건 바로 어째든 미래는 다가온다는 것이다. 미래는 현재의 내가 뭘 생각하고 내 형편이 어떤지 등에 관심이 없다. 그저 뚜벅뚜벅, 한 눈 팔지 않고 꾸준히 나에게로 걸어온다.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자신을 너무 억압하고 살 필요는 없지만 오늘만 살 것처럼 현재의 자신에게만 충실하게 되면 ‘책임’이라는 크나큰 한 방이 어느 순간 나타나 자신을 짓누르게 될 수도 있다.

책임이라는 건 피해간다고 피해지지 않는다. 누군가를 탓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부모나 친구 등 다른 이에게 떠넘기려 해도 할 수가 없다. 책임이라는 놈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지고 가야 하는 건 오로지 나 자신뿐이다. 당장의 행복에 취해 책임의 무게가 태산처럼 커질 때까지 방관하고 있으면 안 된다.

현재를 즐기는 것을 넘어 자신에 대한 책임까지도 질 줄 아는 현명한 욜로 라이프. 비록 나는 그리 못했지만 지금 욜로 족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무늬만이 아닌 진짜배기 욜로 족이 되기를 바란다. 책임질 줄 아는 어른으로서의 욜로 라이프를 즐기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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