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홍 체제’ 체질 개선
이변은 없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지난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 대표를 새로운 선장으로 뽑았다. 홍 대표는 조기 당직 개편 등 체제 안정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홍 대표가 부산·울산·경남(PK) 인사들을 중심으로 진영을 새롭게 꾸밀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보수정치권의 위기를 맞아 홍 대표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 나갈지 이목이 집중되는 분위기다. ‘홍준표 체제’의 앞날을 전망해 봤다.
“라이벌조차 없었다. 지금은 홍 대표외엔 대안이 없다는 게 당 분위기인 것 같다.”
자유한국당의 홍 대표 선택은 과거 '집단지도체제' 때와 달리 '단일지도체제'하에선 새로운 정국을 예고케 한다. 홍 대표의 의중에 따라 당 체질이 신속하게 탈바꿈될 수 있다.
홍 대표는 부산 출신의 이종혁 전 의원을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했다. “PK지역은 최고위원이 없다”고 했던 홍 대표로선 하루만에 바뀐 파격 행보였다. 이 최고위원은 부산 부산진을에서 초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당 부설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을 역임했다. 홍 대표는 경남지사 시절 그의 정무능력을 인정해 경남도 정무특보로 영입한 바 있다.
이 최고위원은 “PK 민심을 당에 전달하고, 한국당이 부·울·경 보수세력의 중심으로 다시 일으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당의 핵심 기구로 부상한 '혁신위원회'에는 지난 대선 때 홍 후보의 정무특보를 지낸 정오규 전 한국공항공사 감사의 합류 가능성이 거론된다. 홍 대표와 친분이 두터운 김영호 전 감사원 사무총장도 당직에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당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엔 중립 성향의 김정훈 의원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김 의원은 원내수석부대표와 정책위의장, 국회 정무위원장 등 요직을 거친데다 정치색도 비교적 엷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친박과 친홍의 갈등 사이에서 당 화합의 적임자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대표 비서실장에는 경남도 행정부지사를 지낸 윤한홍 의원이 거론되고, 재선의 윤영석 이채익 의원도 중용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바른정당 “멸종된 공룡의 길”
홍 대표의 거침없는 행보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당내 반발에도 핵심측근을 지도부에 입성시켰고 정우택 원내대표와의 호흡도 이상징후가 포착됐다.
홍 대표가 이종혁 카드를 밀어붙인데 대해 반발도 적지 않다. 홍 대표는 이 전 의원 임명 이유를 PK지역 배려로 설명했지만, 당권을 쥐자마자 핵심 측근을 지도부에 임명했다는 점에서 불협화음도 터져나왔다.
김태흠, 이재만 최고위원 등은 최고위에서 이 전 의원 임명에 반대했다. 김 최고위원은 “PK 배려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이 전 의원은 홍 대표의 핵심 측근 중 핵심으로 그를 임명하면 여러 가지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며 “지금 지도부에 원외인사가 많은데 또 원외 최고위원을 임명하면 정치적 무게감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또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정 원내대표의 발언이 길어지자 다음으로 마이크를 잡은 이현재 정책위의장을 향해 “1분만 말해라. 너무 길다”고 요구했다. 이 정책위의장뿐 아니라 다른 참석자들도 발언 시간을 조절했다는 후문이다.
홍 대표의 ‘나 홀로 길’은 결국 정 원내대표와의 충돌로 이어졌다. 홍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예방 뒤 “인사청문회를 해서 부자격자임을 알려도 임명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현행 제도”라며 “판단은 국민 몫이고, 우리가 당력을 쏟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부자격자 임명 철회’를 외치는 정 원내대표와 다른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그는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과의 면담에서도 “당의 방침과 대치되는 원내활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의원들의 소신은 존중하지만 당이 나아갈 방향과 대치하는 일은 자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원내대표는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임명 강행에 반발해 의총을 소집, 추경안·정부조직법 심의를 전면거부하기로 결정했다. 당의 두 리더가 출발부터 티격태격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이다. 정 원내대표는 “원내 일은 제가 하는 것”이라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홍 대표 선출로 한국당과 바른정당 간 보수적통 경쟁도 본격적으로 재개됐다. 홍 대표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지도부를 예방하지 않으면서 민주당만을 상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바른정당 흡수론자인 홍 대표의 선출로 바른정당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바른정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성명서를 통해 “홍준표의 극우강경 노선은 멸종된 공룡의 길”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대선 패배 이후 새로운 길을 준비 중인 홍 대표의 실험이 어디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