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갈노> 이수호 칼럼

서울 살이 35년여 만에 노원구 아파트 밀집지역에서 마포구 성미산 자락 다세대주택으로 집을 옮긴 지도 2년이 넘었다. 아파트 보다는 생활은 조금 불편했지만 2년 마다 이사를 하거나 전세 값을 올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현실 앞에 우리 부부가 큰 마음먹고 결단한 것이었다.

집은 좀 허술했지만 산자락이라 주변이 온통 초록이어서 나는 좋았다. 아내도 생필품 등이 전에 살던 곳 보다 비싸다느니 모기 등 벌레가 많다느니 불평이 제법이더니, 그래도 창만 열면 푸른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오고 문만 나서면 언제나 가벼운 등산도 할 수 있어 점점 정이 붙어가고 있다. 거기다가 아내를 더욱 기쁘게 한 것은 집 옆의 조그만 빈 땅이었다. 집 옆으로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제대로 흐르게 배수구를 만들었는데, 그 배수구와 우리 집 벽 사이에 좁고 길쭉한 아무 쓸모없는 땅 두어 평이 생긴 것이다. 우리가 처음 갔을 때는 누구도 관리를 하지 않아, 이름 모를 풀들이 지나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와 엉겨 지저분했다.

 

 

청소를 하던 아내가 여기에 꽃이나 채소를 심으면 어떻겠냐고 해서 참 좋겠다고 했더니, 그 다음 해 봄에 공사 폐자재와 돌 등이 엉겨서 척박한 땅을, 산 흙을 가져다 메우고 나뭇잎 썩은 거름도 가져다 넣고 해서 몇 고랑 보자기만한 밭을 만들었다. 그리고 꽃씨도 뿌리고 상추나 열무 씨도 뿌리고, 고추, 가지, 토마토, 들깨 모종도 몇 포기 심었다. 아침저녁으로 물도 주니 제법 파릇파릇 자라는 것이었다. 도회지에서 자라고 생활해서 식물 재배나 농사일을 모르는 아내가, 신기해하며 즐기는 것이 나로서는 은근히 좋았다. 지저분하던 공터도 깔끔하고 보기 좋았다. 거기다가 주변에서 자생하는 머위나 돌나물 민들레 등이 어울리니 제법 그럴 듯했다. 그런데 바로 집 가이라 그늘이 져 모종들이 웃자라 넘어질 것 같았다. 아내는 막대기로 정성껏 세워 주었다. 그렇게 해 놓고 보니 제법 밭처럼 보였다. 그게 문제였던가 보다.

어느 날 물 주러 아침에 나가보니, 구청에서 <경작금지 안내>라는 경고 팻말을 하나 세워 놓았다. ‘재해 예방을 위하여 사방사업을 시행한 곳으로 산지관리법에 따라 무단경작은 불법행위임을 알려드립니다. 무단경작 행위 시 관련 법률에 의거 고발 등 행정조치 할 계획이오니, 경작물을 ㅇㅇ일까지 제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특별시 마포구청장’ 우리는 “참 법이 대단하군. 꽃이든 푸성귀 등 심는 게 여러모로 훨씬 좋은데, 불법행위라니 어쩔 수 없지”하며 옮길 수 있는 고추나 가지 등은 큰 화분에 심어 현관 앞으로 옮겼다. 그러나 웃자라버린 토마토나 뾰족뾰족 올라온 상추나 돌나물 머위 등은 할 수 없이 그냥 두면서, 구청에서 연락 오면 잘 얘기해 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뒤 다시 보니, 그 작은 빈 터를 모두 파헤치고 아주 쑥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른바 경고했던 행정조치를 한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법 집행 앞에 망연자실했다. 이런 일방적 조치가 그 법의 입법취지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이런 법 집행으로 얻을 수 있는 법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되물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법의 집행 과정에서 발생할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과 손해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닌지 안타깝기만 했다. 뽑혀서 짓밟혀버린 불긋불긋 익어가던 세 포기 토마토는 잘 못 집행한 사형집행처럼 다시 살릴 길이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시뻘겋게 드러난 흙에 다시 고랑을 내고 누가 또 쓰레기를 버리기 전에 늦은 코스모스 씨라도 뿌리기로 했다.

이 일을 당하며 해고 조합원 9명 때문에 어이없이 법 밖으로 쫓겨나 법외노조가 되어 있는 전교조 선생님들의 얼굴과, 집시법 위반 등으로 무려 3년 형이나 선고받고 지금도 감옥에 있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얼굴이 자꾸 겹쳐 보이는 것은 나만일까 생각해본다.

<전태일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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