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스님-1회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30년이 지났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민주주의는 끝모를 추락을 거듭했다. 정치와 경제, 언론, 문화 등 모든 분야의 암흑기였다. 국민을 속이고 눈을 가렸다. 경제는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블랙리스트’는 표현의 자유를 압살했다. 박근혜 정권은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산실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까지 검은 손을 드리웠다. 예산을 통제하고 정권 추종세력들을 뽑아 요직에 앉혔다. 반민주적 행태가 이어졌다. 역사의 시계는 그렇게 거꾸로 돌아갔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스님

 

새 정부가 들어선지 100일이 넘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누적된 어두운 그림자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다. 정치, 외교안보와 국방, 경제를 파탄 낸 후과(後果)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특히 개성공단 폐쇄 등 남북관계가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그로인한 안보-경제적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모든 분야에서 우위인 우리가 먼저 북한을 끌어안고 포용 못한 것도 원인이다. 물질-정신적으로 남한과 격차가 커지면서 북한은 계속 핵도발 책동을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체제불안까지 겹쳐 있다.” 지난 5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취임한 지선 스님의 얘기다. 지선 스님은 “향후 새 정부가 민주시민교육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며 “촛불시민혁명 정신과 맥을 전국 방방곡곡에 어떻게 뿌리내리는가에 따라 정권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라고 말한다.

전남 장성 출신인 지선 스님은 본래 산속에서 불법을 수행하는 산승(山僧)이었다. 그런 스님이 민주화운동 최일선에 뛰어들게 된 건 5.18 광주항쟁과 이철규 학생 의문사가 계기가 됐다. 스님은 남영동 대공 분실에 끌려갔고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지선 스님은 민주시민교육과 민주화가 완성돼야 통일도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남북한 안보문제와 관련해선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우려했다.

“북한은 늘 비상이다. 한·미 군대가 훈련 중에 북침한다면 끝장이라는 공포심에 핵무기에 ‘올인’하고 있다. 지금은 정치권이 나서 분단극복과 민주화, 평화통일에 매진해야 할 때다.”

지선 스님을 종로에 있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1987년 6·10민주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상임공동대표를 지냈고,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공동의장 등을 역임한 스님으로부터 민주화 운동의 역사와 현실, 새 정부의 역할, 남북관계, 불교의 사회참여 문제 등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심층인터뷰 전문이다.

 

- 얼마 전 독일에 다녀왔다.

▲ 세계한인정치인협의회 유럽독일지부 소속 여신도가 초청을 했는데 남편이 독일인이다. 19세 아들이 독일 괴테대학 4학년생이면서 최연소 시 부의장이기도 하다. 독일사회는 훌륭한 정치인을 키우기 위한 인재 발굴시스템이 발달되어 있다. 이 학생은 투표로 당선된 것도 있지만, 이런 사회적 제도 덕분에 일찍 발굴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 체류하면서 통일강연을 하고 여론도 들었다. 난민들의 성폭력 사건들에 대해 독일국민이 어떻게 인내하고 견디는가부터, 어린 학생 때부터 이뤄지는 합의제 정치제도 교육 등 여러 가지 정치시스템에 대해 듣고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동서독은 엄밀히 말하면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이라 불러야 맞다. 독일은 행정이 엄격해서 웬만한 사항은 시행하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통일을 했다. 한국도 통일을 하려면 어떻게 인내해야 하는가, 과거 동서독에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 등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통일강연에서 강조한 것은 무엇이었나.

▲ 국내법과 지역감정, 정치적 당리당략을 떠나 제 소신은 ‘자주-민주-평화통일’이 이뤄진 나라를 완전하게 민주화된 나라라고 보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선 확고한 종교적인 신념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자주-민주-평화통일’은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 이상으로 늘 점검하고 고민하고 실체를 볼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안 되면 통일도 어렵다. 이것은 전민련 당시부터 가졌던 나의 생각이다. 자주 없이 민주도 없고, 민주 없이 평화통일도 어렵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우리 민족과 우리나라가 처한 환경에서는 이 세 가지가 발전돼야 한다. 잘못하면 모든 것이 반쪽이 된다. 철학과 문학, 예술, 정치, 역사도 반쪽난다. ‘자주-민주-평화통일’이 이뤄져야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다.

 

- 독일 통일이 주는 교훈은.

▲ 참고 견디고 기다리는 것이다. 입술을 깨물고 인내하면서 어떻게 통일을 해야 하고, 어떻게 온전한 나라를 만들 것인가를 부지런히 고민해야 한다. 독일의 경우도 단순히 합해져서 통일이 된 게 아니다. 당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은 정치적으로 여러 면에서 지금의 우리보다 더 악조건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토록 쉽게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겠는가. 철저하게 준비했기 때문이다. 통일을 위해 어떤 부분은 비워 놓기도 하고 민족적인 과제들은 뒤로 미뤄놓기도 했다. 통일 전 독일엔 수십만 명의 외국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소련군만 20만 명이었다. 그리고 강대국들은 모두 통일을 반대했다. 하지만 동서독 지도자들의 굳은 결의가 결국 뜻을 이루게 한 것이다. 지도자가 그만큼 중요하다. 독일 민족끼리 동질성을 찾아 강력히 밀어붙이니까 외국군도 어쩔 수 없이 묵인했다. 이런 점을 배워야 한다.

 

- 우리는 어떤가. 남북통일을 위해 뭘 해야 한다고 보나.

▲ 먼저 정치인과 국민들이 부단히 연습해야 한다. 남북분단 상황에서 점철되어 온 강대국들의 정치농단에 놀아나지 말고 자주국가가 되어야 한다. 남북통일은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종식된다는 건 아니다. 사회주의의 경우 이론적으론 훌륭하고 좋았지만, 그것을 하겠다고 한 사람들이 실패한 것에 불과하다. 원리를 그대로 공정하게 적용하지 않았고 지배체제로 독식한 게 문제였다. 그동안 세계가 70년 사회주의를 해보니 전혀 맞지 않았고 그래서 폐기시켰다. 이렇듯 어떤 특정한 이데올로기는 민중 즉, 국민의 고통을 해방시킬 수도 있지만 동시에 고통을 줄 수도 있다. 한쪽 이데올로기에 치우치면 절대 안 된다. 우리나라도 지금까지는 세계 제일의 반공극우 정권으로만 치우쳐 왔다. 특정 이념에 치우쳐 종북이니 빨갱이니 해서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악용해 왔다. 그런데 지난 촛불시민혁명 때는 묘하게도 그런 종북몰이가 작동하지 않았다. 그만큼 이제 성숙해졌다는 반증이다.

 

-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동전의 양면이다.

▲ 세계 각 나라들이 정치경제적 혼란에 봉착하게 되면 사회주의는 다시 부활하게 된다. 자본주의가 언제나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자본주의가 그동안 숨 쉬며 잘 굴러온 것도 알고 보면 복지정책 등 좋은 내용들을 사회주의에서 배운 덕분이다. 독약인 사회주의 이론이 자본주의에서는 약이 됐다. 독이 오히려 약이 된 것이다. 다음이 종교다. 이 세상 모든 이데올로기는 필요가치가 없으면 사라지기 쉽다. 하지만 없애고 싶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써보니까 맞지 않았을 뿐이다. 맞는 것은 살려나가는 가운데 종교도 이데올로기화 되었다. 이런 종교 이데올로기는 인류의 마지막 때까지 갈지도 모른다. 너무 어려운 문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기독교 근본주의와 이슬람과의 분쟁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 남북은 어떤가.

▲ 남북한은 정치체제와 관습이 다르다. 그러면서 남과 북은 유사점도 많다. 북한은 정치적 세습체제를 확고하게 구축했다. 남한은 재벌세습과 교회의 종교세습 등이 이어지고 있다. 70년이 넘도록 남북은 점점 갈라져왔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다른 민족으로 바뀌고 이질화 된다. ‘이민족(異民族)화’ 돼온 게 문제다. 언어와 체제, 미풍양속, 역사, 문화도 변질될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우위인 우리가 먼저 북한을 포용 못한 것도 원인이다. 물질과 정신 측면에서 갈수록 북한은 반발할 것이고 도발책동을 더하게 된다. 북한이 핵개발에 매달리는 것도 체제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이 1주일 또는 한 달 가까이 진행되면서 북한은 늘 비상 상태다. 혹시라도 한·미 군대가 북침하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핵무기를 놓으면 끝장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지배 체제라도 살아남게 하기 위해 벼랑 끝 전술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 불안을 우리가 나서서 제거해줘야 한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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