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스님-2회

<1회에서 이어집니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스님

 

- 지난해의 촛불시민혁명, 어떻게 보는가.

▲ 그동안 제주 4.3항쟁과 2.28대구학생의거, 3.15의거, 4.19의거, 5.18광주항쟁,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거치면서 으깨지고 다져지고 재점검하는 숱한 과정 속에서 압축되고 성숙된 결과로 나타난 것이 촛불시민혁명이다. 1700만 명이라는 거대한 촛불민심은 수구적폐 세력의 끝판왕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수구세력과 진보세력 간 갈등도 컸지만, 조기 대선을 치르면서도 반공 이데올로기에 쏠리지 않았다. 국민들은 사상적 이념과 편협적인 지역감정에 치우치면 안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70년 적폐를 하루속히 청산하고 보다 민주화된 나라를 올바로 세워가야만 번영과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을 세계만방에 알린 계기가 됐다.

 

- 그 결과 새 정부가 들어섰다. 새 정부의 잇따른 개혁적 정책들, 역풍을 맞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가.

▲ 역풍은 지난 정권에서도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을 배제 못한다. 과거 신자유주의를 이끈 김대중 정부도 말로만 정치개혁을 외쳤었다. 반공법과 노동악법, 비민주적 헌법의 청산을 말했다. 그러나 집권 이후 이런저런 정책 등에 신경을 쓰다가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기회를 놓쳐버렸다. 당시 IT 등의 신지식인 육성이니 농업도 자본시장에 맡겨야 한다느니 하면서 세계화와 글로벌 경쟁논리를 강조했다. 그렇게 초기개혁에 실패했다. 정권 끝 무렵에 가서는 언론개혁을 하려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이번 정부의 경우 언론개혁과 관련된 얘기가 전혀 없다. 민감하고 무섭기 때문이다. 다행스런 것은 초기 개혁 노력이 DJ와 노무현 정권보다 확실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70%대의 지지를 얻고 있지만, 향후 계속해서 지지하는 시민의 힘이 약화되고 정책브레인 등 인적충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힘들 것이다. 1년, 2년, 3년 후 힘이 빠져 버리면 보수 세력이 재결집해 실패한 부분을 물고 늘어지려 할 것이다. 처음에 비해 못하게 되면 믿었던 촛불시민들도 분열되고, 재야지도자들도 흩어지게 된다. 정치진영은 다시 확연히 보수와 진보로 쪼개질 것이다. 촛불시민들이 새 정부에 강력한 힘과 지혜를 지속적으로 불어넣어줘야 한다.

 

- 제주 4.3항쟁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됐다.

▲ 예로부터 나라가 분열돼서 잘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때부터 북방정책이 시작됐다. 당시 신라와 백제는 분노한 민중들이 봉기하려 하면 그때마다 고구려가 쳐들어온다고 하는 전략을 써 먹었다. 근세도 마찬가지다. 제주 4.3항쟁도 그런 맥락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4.3항쟁은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운동이다. 한마디로 통일운동이었다. 이번 촛불항쟁과 같다. 이승만 정부의 부정부패 척결과 민주정권 수립의 정신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자비한 이승만 정권의 학살로 숱한 제주도민들이 죽어야 했다. 이런 역사를 재조명하기위해 지난 2014년 4.3특별법안을 통과시켰다. 희생자 명예회복과 유족지원의 근거를 마련했다. 또 국가추념일로 지정하기도 했다. 4.3항쟁이 정부수립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고 수립 이후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조항이 빠졌지만, 무고한 도민들이 학살된 현대사의 비극이자 민족의 비극이었다. 특별법까지 마련한 마당에 관심을 갖고 안고 갔어야 한다. 여기서 분리시킬 수는 없다. 그런 뜻에서 4.3항쟁도 민주화운동의 범주에 들어온다고 본다.

 

- 민주화가 통일에 미칠 영향은.

▲ 통일과 민주화를 통해 우리민족은 큰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통일이 되면 세계에서 남부럽지 않은 나라가 될 것이다. 분단된 남북이 하나가 됐다는 것은 더 커졌다는 뜻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후유증이다. 그러나 동서독처럼 차츰 해소돼 갈 것이다. 통일 이후의 후유증은 그래도 견딜 만하다. 맷집도 커지고 분단된 지금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우리 국민은 지금 한 몸에 두개의 지게를 지고 갈 수 밖에 없다. 통일과 민주화라는 지게다. 우리는 아직 완전한 민주화를 이루지 못했다. 완전한 민주화는 곧 통일이 이루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민주와 통일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국가보안법이나 노동악법 등 통일에 걸림돌이 되는 악법들이 많으면 민주화가 된 게 아니다. ‘의사민주화’(疑似民主化)일 뿐이다. 우리 민족 특유의 기질과 재능, 정신을 결집한다면 일본도 금방 따라 잡을 수 있다.

 

- 남북분단에 따른 비용부담이 크다.

▲ 우리 민족은 지금까지 70여 년 동안 남북 간 ‘허리병’이 계속되고 있다. 온갖 병이 다 들었다. 두통, 치통, 생리통 등 안 아픈 곳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 러시아, 중국이 빨대를 꽂고 있다. 4대 강국들은 설사 통일에 찬성한다고 해도 자기 방식대로의 통일을 주장할 것이다. 과거 박정희 정권 때도 남북한 당국끼리 서로 빨대를 들이댔다. 최근에는 한·미·일 삼각동맹 안보체제가 더 강화되고 미국의 무기장사가 노골화 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제1의 미국 무기 구매국가다. 남북한의 수백 만 양쪽 군대병력을 30만 명 정도로 줄인다면 남한의 경우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할 수 있다. 노동자에게 무상으로 주택을 지어 줄 수도 있다.

 

- 사회문제를 짚어보자. 비정규직 문제 어떻게 보는가.

▲ 땅 파고 기계 돌리는 일하는 사람을 노동자라 말하고 근로자라 부르는데 이 말도 대단히 잘못된 말이다. 근로자란 글을 쓴다든지 하는 정신적인 근로행위를 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노동자는 길바닥에서 땅 파고 기계 돌리고 하는 산업역군들이다. 그런데 비정규직화 시켜서 노-노 갈등을 빚게 하고 있다. 게다가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아예 노동자에서조차 제외되는 상황이다. 물론 귀족노조 문제 등 반성할 부분도 있다. 노동투쟁에 자영업자나 소규모업체 등도 같이 포함시켜서 그들의 권익도 지키고 열매를 나눠야 한다. 대기업만 해도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되는 월급에 일은 더 많이 한다. 이래서 노동자들과 국민이 분열되는 것이다. 하층민은 하층민대로 힘들다. 자본가들은 오직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할 뿐이다. 최저층인 농어민과 노동자(비정규직)들은 결혼조차 꿈꿀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정부는 무조건 아이 많이 낳으라고 할 것이 아니라 육아를 위한 사회조직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남북분단 상황으로 인해 들어가는 국방비를 줄이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독재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이미 10만 달러 선진국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지경에 어떤 젊은이가 결혼을 하겠나. 성남시와 서울시가 청년실업자들에게 수당을 주려할 때도 오히려 국고손실에 세금 퍼주기라며 힐난했다. 수구세력들은 일제 식민시대부터 미국과 영국, 소련, 중국 등의 지배철학만 수용해 간교하게 국민들을 이간질하고 분열시켜왔다. 비민주적인 악법을 동원해 국민을 억압해왔다.

 

- 개인적 얘기를 듣고싶다.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계기는.

▲ 나 같은 산승(山僧)도 세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너무나 비이성적이고 반민족적, 반민주적, 반통일적이고 엄혹했던 1980년대였다. 당시 수많은 대학생과 청춘들이 잡혀가 다리가 깨지고 머리가 부서지고 의문사를 당했다. 애국청년들과 일반시민들을 ‘빨갱이’ 딱지를 붙여 잡아 죽였다. 간첩조작사건도 그렇다. 이는 국력낭비다. 1980년대 우리나라에는 두 개의 큰 사건이 있었다. 정치사회적 사건으로 5.18 광주항쟁이 있었고, 종교적으로 불교를 탄압한 ‘법란(法亂)’사건을 들 수 있다. ‘법란’은 전두환 정권이 불교를 약화시키고 진리의 집단을 군화로 무자비하게 짓밟은 사건이다. 새벽 4시를 기해 착검한 무장한 군인들이 전국 사찰에 침입해 스님들을 무단 체포했다. 불순한 유랑 잡승들이 사찰에 잠입했다는 등 8가지 이유를 들어 탄압했다. 이것은 포장전술에 불과했다. 5.18 광주학살 만행을 가리려고 꼼수를 부렸지만, 국민들이 귀를 막고 들어주지 않았다. 민심을 돌리기 위해 신도수가 제일 많은 불교를 희생양 삼아 탄압을 한 것이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불교뿐 아니라 기독교와 천주교도 검열하겠다고 했지만, 가장 힘이 약한 불교만 억눌렀다. 다른 종교는 전혀 건들지 못했다. 왜냐면 기독교와 천주교는 배후에 막강한 외세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영국과 미국 세력이다. 천주교 신부를 체포하려면 바티칸과 전화 통화를 통해 사전 조율을 해야 한다. 불교는 그런 힘도 없었고 저항을 못했다. 외세가 없는 불교는 역사적으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많은 피해를 입었다. 과거 이승만 정권 때는 토지분배를 한다면서 사찰 땅을 빼앗았다가 전국적으로 들고 일어나자 도로 반환한 일도 있었다. 일련의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민주화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영웅호걸 의식이 있어서가 아니고 정치적 야망을 위해서도 아니다. 광주사태만 하더라도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 1989년 의문사 한 조선대 이철규 열사 사건 진상규명촉구로 옥고를 치렀다.

▲ 지금까지도 책임자 처벌이 없다. 세월이 흐르면 내부에서 양심선언을 할 줄 알았다. 이철규 열사는 분명히 타살이다. 광주 무등산 밑 청옥동 인근 저수지에서 죽은 시체를 건져내는 것을 직접 목격했는데 팔다리에 막대기를 끼워 하는 일명 통닭구이 고문으로 사망했다. 얼굴은 물에 불어터져 형제를 알 수 없었고 눈알도 빠져 있었다. 시대도 변했으니 누가 나서서 양심선언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서 얼굴을 안 보여줘도 좋으니 양심선언 할 것을 호소했지만,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진상규명은 안 된 상태이고 의문사로 남아있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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