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을 이유 없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닮아 보이는 이유는?
닮을 이유 없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닮아 보이는 이유는?
  • 김수복 기자
  • 승인 2017.08.28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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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칼럼> 완전한 몰락이 필요한 사람들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북한의 위원장 김정은, 이 두 사람은 닮아 보일 이유가 없는데도 닮아 보인다. 두 사람을 같은 화면에 띄워놓고 보면 형제 같은 느낌조차도 있다. 자녀를 열아홉 명쯤 둔 가정의 큰형과 막내아우쯤 돼 보인다고나 할까. 큰형은 대체로 봐서 나쁜 일이건 좋은 일이건 온갖 일을 다 하고 살아온 까닭에 세상이 조금은 만만해 보이기 마련이다. 귀염둥이 막내는 귀염만 받고 자란 까닭에 무서운 것이 별로 없다.

명분이야 어떻든 세계인을 인질로 삼고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는 이 두 사람을 함께 놓고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내가 소년이었을 당시의 한 삽화가 떠오른다. 아홉 살에서 열 살 즈음까지, 그러니까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 이 학년에서 삼 학년 사이 어느 지점이었을 것이다.

 

 

내가 학교를 가자면 지나쳐야 하는 우리 동네 앞 동네에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 당시의 나는 견문이 워낙 짧고 호기심도 깊지 않아서 쌍둥이가 무엇인 줄도 몰랐고 알고자 하지도 않았다. 가끔 혼자이기도 하지만, 거의 매번 함께 다니니까 쌍둥이란 으레 그런 것인가 보다 했을 뿐이다. 게다가 그들은 학년도 나보다 한 학년 아래라서 부딪히는 일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들 형제 중에 한 녀석이 어디서 무슨 얘기 끝에 그런 도발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들에게 나를 이긴다고 했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나한테 와서 그 말을 전해주며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너 정말로 쌍둥이한테 져?”

나는 그 말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진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는 알았다. 내가 누구한테 진다는 것은, 게다가 싸워보지도 않았는데 진다는 것은, 도대체가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더구나 그들은 나보다도 한 살이 어리다. 이게 무슨 게딱지같은 도발인가 말이다. 그래서 단호하게 “아니, 안 져. 내가 왜 져?” 하고 말았다. 그러자 아이들은 한 걸음 더 들어갔다.

“그러믄, 이겨?”

“이겨.”

이렇게 해서 일촉즉발의 긴장은 그 지루하고도 장대한 서막을 열었다. 아이들이 쌍둥이한테 가서 무슨 말을 하고 또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녀석들은 며칠 뒤에 다시 나를 불렀다. 불러 놓고 하는 말이, 쌍둥이가 나를 죽여 버린다고 했단다.

“죽여? 나를? 왜?”

“야 인마 네가 쌍둥이를 이긴다며?”

“이겨.”

“거봐. 그래서 죽인다는 거지.”

“그러믄 나도 쌍둥이 쌔끼들 죽인다.”

“정말?”“정말.”

내가 별다른 깊은 생각도 없이 뱉어낸 그 말은 다시 쌍둥이들 귀에 들어갔다. 그리고 쌍둥이들은 새로운 메시지를 전해 왔다.

“너 인제 큰일났다. 쌍둥이가 네 눈을 뽑아버린다고 했거든.”

“치이, 내가 먼저 뽑아버리면 되지.”

나는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눈알을 뽑는다는 것은, 죽인다는 것보다 울림이 훨씬 크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눈알을 뽑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이 실제로 뽑혀진 것 같은 아픔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굳이 안 해도 될 부언설명까지 했다. 손가락 두 개를 눈에 확 찔러 넣어서, 그렇게 쌍둥이들 눈알을 내가 먼저 뽑아버린다고, 자신만만하게 지껄인 나의 그 말은 다시 쌍둥이들 귀에 들어갔다. 정확한 기억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한 달 이상을 그렇게 메시지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어느 하루, 호밀밭 옆에서 딱 붙었다.

“네가 인마.”

“그래 뭐?”

“이걸 그냥 확.”“이게?”

키가 엄청나게 큰 호밀과 수수가 함께 심어진 밭 앞에서 아이들은 왁, 왁, 미친 것 같은 소리를 질러대며 싸움을 부추겼다. 이제 싸움은 피할 수 없는 당위가 돼 버렸다. 붙을 때는 분명 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한참을 뒹굴다 보니 두 녀석이었다. 나는 한 녀석을 깔아뭉개고 있었고, 다른 한 녀석은 나를 깔아뭉개고 있었다. 나는 마침내 코피가 터졌고, 심지어는 귀까지 찢어졌다. 쌍둥이 중에 한 녀석이 귀를 물어뜯은 거였다. 한 마디로 말해서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나는 죽는다고 울어대기 시작했고, 승부는 결정 났다.

그렇게 해서 오래 끌어온 전쟁은 끝이 난 것 같았지만, 새로운 시작이 남아 있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인데 웬 커다란 여자가 호밀밭 옆에 서서 이놈이야? 이놈이 확실해? 하고 있었다. 키가 호밀만큼이나 크고, 덩치도 엄청나게 큰 여자였다. 여자의 치맛자락 뒤에 쌍둥이 두 녀석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덩치 큰 여자는 내 앞으로 쓱쓱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커다란 손바닥으로 내 뺨을 철썩, 철썩, 세 대나 올려붙이고 있었다. 나는 너무 아파서 두 손으로 뺨을 감싸 안고 휘청거리다가 쓰러졌다. 덩치는 쓰러진 나를 발길질로 아주 죽여 놓고 있었다. 그 바람에 나는 다음 날 학교에도 갈 수 없었다.

내 입으로 쌍둥이와 그 누나에게 얻어맞았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누군가에게 그 말을 듣고 와서 아버지에게 일렀고, 아버지는 “이런 등신 같은 놈, 왜 맞고 다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쌍둥이 누나처럼 자기가 쫓아가서 그들을 혼내주겠다는 호언도 없었고, 어떻게 하면 그들을 이길 수 있는지 비법 같은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원래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것을 내가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래서 얻어맞고도 억울함이며 슬픔 따위들을 혼자서 처리해내고자 했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얻어맞은 것도 모자라서 ‘등신’까지 되고 말았다.

등신이 된 것으로 끝난 것도 아니었다. 그 뒤로 쌍둥이는 나를 밥으로 알고 툭하면 발길질을 해댔다. 쌍둥이 둘이 함께 있을 때만 그러는 것이 아니고, 혼자 있을 때도 과감(?)하게 나를 밥으로 삼았다. 사실 그 시기에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쌍둥이는 위로 누나도 있고 형도 있어서 믿는 바가 굉장히 컸지만, 나는 누나도 없고 형도 없는 우리 집의 큰아들이었다. 게다가 쌍둥이가 사는 동네에는 그 또래의 남자애들이 엄청 많은 반면 우리 마을에는 남학생이 거의 없었다. 희한하게도 나와 학년이 같은 남학생은 우리 마을에 한 명도 없고 온통 여학생들뿐이었다.

쌍둥이는 내가 여학생들만 우글거리는 소굴에서 산다는 식의 비웃음까지 흘리고 다녔다. 운동장에서도 나를 발견하면 다가와서 이죽거리고, 이죽거리다가 귀를 잡아당기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그런 만행을 다른 아이들이 옆에서 지켜보다가 키득거리며 “수복이 빙신, 수복이 빙신”, 소리를 연호했다. 동급생도 아니고 한 학년 아래의 이를테면 동생들한테 당한 것이니 ‘빙신’ 소리를 들어도 내 입으로 할 말은 없었다.

피가 나게 얻어맞고 등신이 되고 빙신까지 돼버린 나는 이제 완전히 궁지에 몰린 형국이었다. 어쩌면 저것들한테 진짜로 맞아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나는 살아남을 길을 찾기 시작했다. 어디서 무엇을 보고 그런 아이디어를 짜냈는지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연필을 주목하고 있었다. 연필은 칼도 아니고 송곳도 아닌, 순수하게 그냥 학용품일 뿐 무기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연필을 주목했던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연필을 아주 뾰족하게 깎아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기회를 노렸다.

드디어 기회는 왔다. 그날이 아마 토요일이었을 것이다. 쌍둥이는 나보다 한 학년 아래라서 조금 일찍 수업이 끝났었을 것이다. 왜 그런 발상을 했는지 내가 알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죽어서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작은 뱀 한 마리를 발견했고, 그것을 ‘수복이 빙신 그 새끼’한테 먹이자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던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나를 기다리기 시작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 집으로 돌아가던 중의 나는 호밀밭 근처에서 놈들과 딱 부딪혔다.

“야 빙신, 이것 먹을래?”

쌍둥이 중에 한 녀석이 막대기에 걸쳐 든 뱀을 내 앞으로 쑥 내밀며 다가왔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아마 이 초나 삼 초쯤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초나 삼 초쯤이 지난 뒤에는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뱀이 아마 내 몸의 어딘가에 닿았을 것이다.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 넣어둔 끝이 아주 뾰족한 연필을 꺼내들었고, 그리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뱀을 든 녀석은 아니었다. 뱀을 든 녀석의 바로 옆에서 야비한 표정으로 킬킬거리는 녀석을 표적으로 삼았다. 녀석의 어디를 어떻게 찔렀는지 알 수도 없이 그냥 콱 찔러 넣고, 그리고 뺐다. 연필을 빼는 순간 피가 얼핏 보인 것 같기는 하지만, 그 피를 내가 확인할 틈은 없었다. 연필을 빼자마자 야비한 녀석은 데굴데굴 굴러대며 죽는다고 소리를 질렀고, 나는 그 소리에 놀라서 죽는다고 달아나 버렸으니까.

이렇게 해서 나의 모퉁이학교 시절이 열렸다. 집에서는 학교에 간다고 씩씩하게 나오지만 학교와는 영 다른 오솔길이나 방죽 혹은 시냇가의 인적이 없는 곳에서 드러눕거나 쪼그리고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방식의 자연학습을 스스로 개발해서 열심히 정진하는 그런 학교 말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에 관한 뉴스가 부쩍 많아진 요 며칠 까마득한 옛날의 개인사가 떠오른 이유가 무엇인지는 나도 사실 모른다. 뭔가 접합점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 뭔가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다만 하나 배경이라는 단어 정도는 언급할 수 있을 것 같다. 트럼프는 미국의 대통령이고, 김정은은 북한의 최고 통치자이다. 둘 다 배경이 참 좋다.

김정은의 배경이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북한이 중국을 의심하고 경계한다고는 하지만 중국이 북한을 사랑하고 싶어 하는 한 그 자체가 훌륭한 배경으로 작동되는 역설을 낳는다. 트럼프의 배경은 두 말이 필요 없이 미국이다. 자본주의의 종주국이요 세계경찰을 자임하는 미국인들의 자부심이 없다면 트럼프는 존재하지 않는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공통점은 굉장히 선명하다.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러므로 너는, 혹은 너희들은 무조건 내 말을 듣고 따라야 한다는 것. 요컨대 철두철미하게 자기중심적이다. 이 말은 당연히 자국 중심이라는 표현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정치란 결국 그런 것일 게다. 입으로는 세계 평화가 어떻고 우주가 어떻고 떠들어댄다 해도, 궁극적으로는 내 이익이, 내 나라의 이익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인간인 이상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볼 때 트럼프와 김정은의 정치는 일정 부분 성공했고, 성공해 가고 있다고 여겨진다.

정치의 본령에서 한참 뒤떨어진 정치 집단이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 아니 미국과 북한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아가지 못할 것처럼 방정을 떨어대는 이 집단의 구성원들은 미국 대통령이 뭐라고 한 마디 하면 열광하고,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뭐라고 한 마디 하면 또한 열광하는 것으로써 자신들의 존재증명을 삼을 뿐 국가와 민족의 미래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전두환이 만든 옛 민정당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 사람들은 종북과 포퓰리즘, 이 두 개의 단어가 아니면 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매우 특이한 성격파탄자들이기도 하다. 이런 성격파탄자들을 그동안 꾸준히 국회로 밀어 올린 지역민들은 대체 무슨 알약을 얼마나 받아먹고 그렇게도 심하게 눈이 멀어버렸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성격파탄자들의 상징적인 인물 박근혜의 몰락이 지역민들의 눈을 조금이나마 뜨게 했으니 역설도 이런 역설이 없다.

하지만 아직 성공한 것은 아니다. 성격파탄자가 성격파탄인 이유는 그들이 공공의 이익에는 별 관심이 없는 반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나라를 팔아먹은 전력조차 있다. 그들의 손에 다시 칼을 쥐어줘서는 안 된다. 그들을 그나마 사람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완전히 몰락시켜야 한다. 어정쩡하게 용서하면 그들은 다시 칼춤을 추고자 하겠지만, 완전히 몰락시켜 놓으면 엉금엉금 기다가 흙속에 박힌 진주를 발견하듯이 더러 인생의 참맛 같은 것을 깨닫고 왈칵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는 그야말로 사람 같은 사람이 나오기도 할 것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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