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류승연

가슴 속에 불꽃이 타오르는 여자들이 있다. 그녀들의 열정은 ‘엄마’라는 한계도 뛰어넘는다. 그녀들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 열정을 마음 깊이 응원한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 와중에 ‘소소한 아이템으로 대박 친 창업맘’에 대한 기사를 의뢰받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시작한 소소한 사업이 빵~하고 터져 멋진 CEO로 성장한 엄마들을 인터뷰 하는 꼭지다.

그런 인물을 찾는 것부터 시작. 주변에서 찾아보려 하는데 한 명도 없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 나서 다시 일을 시작하는 엄마들이 보이긴 하는데 대부분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다.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의 현실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이리저리 수소문해서 세 명의 ‘엄마 CEO’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연락을 해서 인터뷰 약속을 잡고 그녀들을 차례로 만났다.

첫 번째 엄마는 아이들이 갖고 노는 크레용에 ‘혁신’을 더했다. 장난감 블록과 크레용을 결합해 갖고 놀기도 하고 그림도 그릴 수 있는 블록 크레용을 개발했다.

두 번째 엄마는 치아가 약한 아이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다가 아이들이 먹을 캐러멜과 사탕을 스스로 만들기 시작했다. 세 번째 엄마 역시 아이가 주스를 찾기 시작할 나이가 되면서 과일청을 만들어 주스 대신 먹였다.

자신의 아이를 위해 만들기 시작한 블록 크레용과 과일청, 캐러멜과 사탕. 엄마들은 만든 제품을 주변에 선물하기 시작했고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지면서 사업적 구상을 하게 되었다.

독박 육아로 아이를 키우면서 사업을 병행해야 했기에 아이들이 잠든 시간이나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을 이용해 집에서 제품을 만들었다. 따로 사업장을 낼 여력은 없어서 일단 인터넷을 통해 판매활로를 개척했다.

엄마표 정성이 깃들고, 기능적인 혁신까지 더해진 제품들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이젠 집에서 하는 수공업만으론 주문량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점점 자라 유치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엄마들은 당당히 사업체를 내고 성공한 CEO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녀들을 만나며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건 바로, 가슴 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여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녀들은 육아만으로는 행복하지 않았다. 천사 같은 자식들이 너무나 예쁘고 소중하지만, 육아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자신만을 위한 일이 필요했다. 무엇이든 몰두할 자신만의 시간이 절실했다. ‘엄마’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자신’으로서의 삶도 찾고 싶어 했다.

많은 여자들이 ‘엄마’라는 과정을 거치며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그 불꽃을 외면해 버릴 때, 그녀들은 보다 편한 길을 포기하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살아지는 인생이 아니라 스스로 사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녀들을 만나며 ‘사람’에 감동을 받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는 ‘전업맘’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전업맘’만으로는 가슴에 뚫린 구멍을 메울 수 없는 여자들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 여자들이 용기를 낸 것에 대한 얘기다. 육아와 가사라는 현실적인 난관 앞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돌파구를 찾은 용기 있는 여자들에 대한 얘기다. 내가 감동 받은 것은 그 지점이다.

그녀들의 모습에서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전혜린의 모습마저 본다. 살아지는 생이 아닌 스스로 사는 생을 살고자 했던 전혜린의 의지가 마치 유산처럼 창업맘들에게 새겨져 있는 것을 본다.

창업맘들을 만난 뒤 자극도 되고 내 자신의 인생도 되돌아보고 있을 때 뜻밖의 곳에서 또 다른 투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것도 바로 내 주변에서. 함께 술 마시며 놀던 동네 아줌마가 주인공이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4총사’로 불리며 동고동락을 함께 아줌마 일행 중 한 명. 동갑인 그녀와 난 유독 친하게 지내며 2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처음에는 서로를 “누구 엄마~”라고 부르며 예의를 지키다 밤에 만나 맥주잔을 한두 번 부딪히고 나서부터 스스럼없는 친구가 되었다.

하루 천개씩의 카톡을 주고받으며 수다를 떠는 날이 이어졌고 서로의 모든 것을 함께 공유했으며, 가족들끼리 함께 모여 놀러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친했던 관계지만 아이들이 서로 다른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각자의 삶이 바빠지면서 점점 연락이 뜸하게 됐다. 일반적인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듯 우리 사이의 거리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러다 며칠 전 그녀와 오랜만에 연락을 하게 됐는데 뜻밖의 얘기를 꺼낸다. 이 동네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어 남은 평생도 이곳에다 뼈를 묻을 생각을 하고 있는 그녀였는데 내년에 천안으로 이사를 간단다.

여동생이 작년에 천안에서 음식점을 냈는데 장사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여동생의 음식점을 맡아서 운영하고 여동생은 다른 곳에 2호점을 낼 계획이란다. 주말마다 기차를 타고 천안에 가서 동생 일을 돕고 오기에 그저 ‘착한 언니’ 정도로만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나름대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었던 모양이다.

“십 년만 고생하고 다시 올라 오겠다”고 말하는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멋져 보였다.

“이젠 내가 나서서 팔을 걷어 부칠 때가 왔어”라고 말하는 그녀는 마치 전쟁을 앞두고 있는 투사를 보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낯선 땅으로 모험을 그녀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여자의 삶이라는 게 그렇다. 아무리 명석하고 똑똑해도 육아와 가사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을 찾아간다는 게 쉽지 않다. 과거와는 달리 육아의 짐을 온전히 엄마 혼자 져야하는 독박육아의 시대에선 더 그렇다.

주변에서도 육아와 가사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안착해 버린 친구들이 많이 있다. 40대가 넘어가면서 굴레를 벗어날 생각도 해보지만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결국은 현재에 안주해 버리고 만다. 현재를 편안히 즐기는 것도 삶의 한 방법이다.

하지만 안주해 버린 그녀들도 대부분 꿈을 꿨다. 자신의 등에 날개가 달리는 꿈. 꿈만 꿨다. 어제도 오늘도 막연히 꿈만 꿨다. 날개가 달렸으면 좋겠다고 생각만 했다. 그 때문에 현재를 있는 그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여자들은 ‘용기’를 내야만 한다. 잔 다르크는 프랑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용기를 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여자들이 모두 잔 다르크다. 더불어 누구나가 될 수 있는 것도 잔 다르크다. 용기만 낼 수 있다면.

창업맘 중 한 명이 했던 말이 여운으로 남는다. 인터뷰 말미, 엄마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고 하자 일단 한 발을 내딛어 볼 것을 권한다.

“단 한 발이예요. 한 발. 그 한 발만 내딛으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보이거든요. 그런데 그 한 발을 내딛지 못하면 평생 모르고 사는 거예요. 다른 세계를.”

가슴 속에 불꽃이 이는 여자들이 있다. 육아와 가사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그 불꽃이 자꾸자꾸 타올라 육아만으로도 힘든 스스로의 마음을 더 힘들게 한다. 자꾸 옆구리를 찌른다. 그럴 땐 용기를 내야 한다. 그 불꽃이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러면 보일 것이다. 다른 세상이. 또 다른 행복이. 내 안에서 이만큼 커진 열정의 불꽃 덩어리가.

<류승연 님은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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