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가끔씩 존재하는 행복을 당겨서 사는 거야”
“인간은 가끔씩 존재하는 행복을 당겨서 사는 거야”
  • 김혜영 기자
  • 승인 2017.10.25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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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씨티알사운드 레이블’ 대표 황현우-2회

<1회에서 이어집니다>

▲ ‘씨티알사운드 레이블’ 대표 황현우

 

“19, 20살 쯤 부터는 단순히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았어. 그러다 게임이 재미가 없어진 거지. 그래서 베이스를 치게 됐어.”

어쩌다 음악을 하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대뜸 게임 얘기가 나온다. 필자는 사촌과 나이 차가 많이 나서 사촌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나는 자유분방한 라이프스타일을 지녔던 것만은 기억한다. 문득 ‘이거 기사에 실어도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도 꽤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터뷰 내내 사촌의 삶이 참 건강하고 좋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음악인이야’ 하면서 우쭐대는 거 있잖아. 난 그런 게 싫어. 음악보다 사람이 중요하지. 난 ‘베이스는 나의 삶이다’ 이런 게 아니고 그냥 치게 된 거야. 베이스는 원래 손가락이 잘 안 움직이는데, 하다가 되면 신나서 성취감이 있으니까. 근데 (베이스는) 치는 사람이 별로 없고, 잘 치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없어. 그래서 밴드를 하면 베이스를 들고만 있어도 같이 하자고 해. 그렇게 비슷한 수준의 밴드를 여러 개 하게 된 거지.”

게임이 질려서 베이스를 치게 됐고, 게임 레벨을 올리는 것처럼 재밌게 연습을 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악기를 꽤 오랫동안 연주해본 적이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이야기가 아닐까. 필자는 공부하는 학원을 다녀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악기나 미술은 꾸준히 배웠다. 처음엔 손이 마음을 따라주지를 않아서 답답하고, 특히 현악기는 손이 아프기까지 했다. 쉬운 곡으로 연주를 하니 재미도 없고. 그래도 꾸준히 연습하다보면 실력이 느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연습을 해서 곡을 마스터하고 새로운 곡을 찾아보기까지 했다. 내가 어떤 곡도 연주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고, 원하는 목표가 생기는 것이다. 그동안 미디어에서 ‘기타는 내 삶, 내 전부, 내 친구’같은 이야기만 줄곧 들었는데, 어쩌다 하게 됐는데 재미있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으니 신선했다. 음악인이 나와 멀리 떨어진 존재처럼 느껴지지도 않고.

“그렇게 밴드 베이스를 오래 쳤는데, 베이스가 재미없을 때가 있어. 소외감? 내가 연주하고 있는데 카메라는 딴 데를 찍는 거야. 또 게임하듯이 하면 재밌는데, 그러기엔 너무 어려워. 기타는 어떤 순간을 넘으면 잘 치는 경지에 오를 수 있는데, 베이스는 꾸준히 인생을 바쳐야하거든. 점점 더 잘 치기가 어려운거야. 효율성을 비교했을 때,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 베이시스트라는 꿈도 크게 있던 게 아니라서. 그냥 이 밴드에서 재밌게 잘 지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있던 거거든.”

정말 어디서도 듣지 못한 이야기이다. 간혹 인디밴드가 TV 매체를 통해 소개되면, 경제적 어려움이나 음악적 열정 등의 렌즈로만 비춰진다. 집안의 반대가 심했는데, 음악이 너무 하고 싶어서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는 그런 이야기들. 물론 실제 그런 인물들도 많고 우리나라 예술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마음 아픈 이야기다. 그럴수록 음악은 더 멀게 느껴진다. 내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 외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회와 인생을 한탄하며 멋있게 하는 그런 것. 어쩌면 그런 이미지 때문에 더 예술의 길을 선택하기도 어렵고, 즐기기도 망설여진다. 누군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질문하면 “전 음악 잘 몰라요”라고 한발 뒤로 물러서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공연이 끝나고 오빠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음악을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 들을 수 있었다. 음악이 얼마나 재미있어서 앨범을 만들고 공연까지 하게 됐나, 하는 생각으로 흥미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기타를 쳤는데 금방 늘었고, 노래를 만들게 됐어. 솔직히, 기타치고 싸이월드하면 노래가 만들어져. 싸이월드에 글을 쓰는 게 가사가 되는 거잖아. 그래서 싱어송라이터가 꿈이 됐고, 노래를 하다가 고은이를 만나게 된 거지.”

어쩌다 베이시스트에서 프로듀서까지 하게 됐는지를 물었더니, 앨범 협업을 하다가 만난 최고은씨가 계기였다고 한다. 그때 오빠는 다른 팀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어서 최고은씨의 앨범에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게 됐고, 그렇게 최고은씨의 첫 번째 앨범에서 프로듀서가 되어버린 것. 일에 재미를 느껴 계속 최고은씨의 프로듀서로 일을 하게 됐고, 연출 감독까지 알게 돼서 연극음악도 하게 됐다. 보통은 씨티알사운드에서 곽푸른하늘, 밴드 도마, 여유와 설빈 등의 음악인들을 프로듀싱하는데, 공연기획도 마찬가지로 일이 생기면 하게 된다.

“나는 사대보험도 없는 프리랜서야. 사실 무직이지.”

수입에 관한 질문을 했더니, 그렇게 일이 생기면 돈을 버는 것이라고 한다. 고정적인 수입원이 없으면 불안하지는 않느냐는 질문이 자연스레 뒤따랐는데, 사촌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불안함은 공포이고 공포는 미래예측에서 오는데, 자신은 어차피 신이 아닌 사람이라 미래예측을 못하니 상관이 없단다. 미래예측이나 공포는 비효율적이라고.

“인생은 ‘어쩌라고’야.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거지. 옆 사람과 함께할 수 있으면 제일 좋은데, 함께하지 못하면 피해만 안주면 되는 거야. 난 다른 사람들이랑 기준점이 달라. 주변 친구들은 나보다 더 잘 벌지만, 시스템이 요구하는 소비 체계가 있어서 버는 만큼 많이 써. 근데 나는 그런 게 없지. 물론 담배세, 주류세, 커피세 다 내고 살아. 세금 다 떼고 돈 주니까 나도 세금을 내면서 사는 거지. 근데 돈을 별로 안 써. 옷 산 게 10번도 안 될걸? 난 그래서 이렇게 살 수 있는 거야. 물론 한 푼도 못 번다고 생각하면 큰일 나겠지만, 그냥 ‘어떻게든 벌겠지’ 하고 살아.”

필자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명문대학’을 다니는데, 학년이 높아질수록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가 부정적으로 변했다. 신입생 때는 꿈과 낭만에 젖어 하고 싶은 일과 동아리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고, 다음 해에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친구들과 학점 관리에 여념이 없는 친구들로 나뉘었다. 그리고 지금은 취업 걱정이 대부분이다. 술자리에 빠지는 법이 없던 친구도 고시원과 학원을 전전하고, 필자가 대학생 기자로 일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인턴이야?’, ‘돈 얼마나 받아?’, ‘언제까지 일하는데?’ 등의 무의미한 질문이 오간다. ‘왜 그 일을 하게 됐어?’, ‘재미있어?’가 아닌.

그런 점에서 사촌의 이야기는 숨통을 트이게 해줬다. 그는 사회에서 스스로 책임을 지고 사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 사회는 ‘누구를 위해서’가 빠져있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게 ‘자신’이 아닌 ‘소수의 누군가’를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조금 다른 길을 택하게 됐다고. 물론 본인이 남들과 똑같은 사람이라면 똑같이 살아도 되는데, 자신은 다른 사람이었던 것뿐이라고 한다.

그렇게 다른 길을 택하게 됐을 때 주변의 반대나 부정적인 시선이 있을 법 한데, 그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물론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것이냐는 갈등은 있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난 강압적으로 혼난 게 아니고 같이 싸운 거야. 어른도 아이니까. 엄마는 엄마를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고, 엄마 나이를 처음 사는 거잖아. 인간은 힘드니까 서로 응원하면서 살아야 해. 죽을 수도 없잖아? 죽으면 다음 일을 예측할 수 없으니까, 다음 지옥이 있을지도 모르는 거니까 할 필요 없는 거고. 인간은 가끔씩 존재하는 행복을 땡겨서 사는 거야.”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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