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어, 안배워도 되지만 배우겠다면 공짜로!!
스웨덴어, 안배워도 되지만 배우겠다면 공짜로!!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7.10.30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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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스웨덴으로의 이주를 준비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이 스웨덴어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처지다보니 그보다 더 생경한 스웨덴어는 스웨덴 이주의 심정적인 장애 요소였다. 하지만 어차피 다 저질러 놓은 일. 스웨덴어를 독학으로 공부할 수 있는 책을 찾아보았다. 우편으로 받아본 책 안의 스웨덴어는 의외로 낯설지 않았다. 일단 알파벳을 사용하고 있는 거야 모든 라틴어나 게르만어 계열의 언어들은 마찬가지일 것이고, 어순도 영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발음이 문제였다. 영어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발음, 도저히 우리의 구강구조상 소화할 수 없는 발음들이 적잖았다. 언뜻 독일어와 비슷한 면도 많게 느껴졌지만, 고등학교 때 잠시 배운 독일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고, 그래서 결국 책을 접고 인터넷을 뒤져 서울에서 스웨덴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겨우 하나 찾았다. 인터넷으로 수강 신청을 하고 약속된 날 어학원을 찾아갔다. 조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나의 스웨덴어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런데 스웨덴어 강사 왈 “스웨덴에 가면 공짜로 스웨덴어를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 헤르무즈 : 스웨덴에는 각 코뮌과 연계된 여러 개의 성인 교육 기관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헤르무즈는 여러 개의 학교로 나뉘어 SFI를 비롯해 여러 부문의 성인 교육을 담당한다.

 

스웨덴은 세계 최고의 복지 국가다. 그런데 그 복지란 비단 스웨덴 시민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웨덴에 일정 기간 이상을 거주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진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SFI라고 불리는 초기 이민자 교육 복지다. 스웨덴어로 ‘이민자를 위한 스웨덴어(Svenska för Invandrare)’의 약자인 SFI는 말 그대로 스웨덴으로 이민 온 사람들의 초기 스웨덴어 교육을 말한다. 물론 전 과정이 무료다.

SFI는 스웨덴에 1년 이상 거주할 수 있는 거주허가를 받은 만 16세 이상인 사람(주재원, 유학, 취업, 사업 등으로 일시 이주한 사람들 포함)이 우리의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퍼스널 넘버(Personal Nummer)라를 부여받으면 누구든지 신청해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스웨덴의 기초자치단체인 코뮌(Kommun)에서 담당하고 있다.

스웨덴이 이민자를 위한 스웨덴어 교육을 시작한 것은 이미 1960년대부터다. 스웨덴은 일찌감치 이민 정책에 대해 개방적이었다. 그러나 언어 소통이 문제. 결국 이민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노동력 부족을 해소해주는 요소는 되지만 언어 소통으로 인한 사회 갈등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집권 사민당 정권은 이민자들에게 스웨덴어 교육을 시켜줌으로써 이민자들의 스웨덴 사회 편입을 수월하게 하고, 자칫 벌어질 수 있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이후 특히 아랍 지역의 이민자들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그들에 대한 스웨덴어 교육은 복지 서비스 차원이 아니라 사회 분화와 갈등을 막기 위한 필수 요소가 됐다. 그래서 스웨덴 정부는 SFI를 스웨덴의 정식 학교 교육 시스템의 일부로 배치했다.

2016년부터 SFI는 스웨덴 각 코뮌의 콤북스(Komvux)라고 불리는 성인교육기관이 담당한다. SFI를 단지 기초적인 스웨덴어 교육에 머물게 하지 않고, 대학을 포함한 상급 교육기관으로의 진학은 물론 직업 교육으로 이어지게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 즉 일정 기간 SFI를 마치면 본인의 희망에 따라 성인 고등학교나 대학교로 진학해 공부를 계속할 수도 있고, 콤북스의 다른 교육 서비스를 통해 또 다른 언어나 취업을 위한 각종 기술을 배울 수 있게 한 것이다.

 

▲ SFI 게시판 : SFI는 단순히 스웨덴어를 무료로 가르치는데 그치지 않는다. 이민자들이 경제적인 안정을 취하기 위한 취업 정보와 더 공부를 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학교 진학에 대한 정보도 제공한다.

 

스웨덴 정부로부터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은 이민자들에 대해서는 더 특별한 혜택이 주어진다. 난민은 SFI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재정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초기 정착 자금 지원의 일환이기도 한데, 실제 경제적인 환경이 열악할 수밖에 없는 난민들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SFI 과정을 수료하지 않고 계속 머물려는 난민들도 생겼다. 그래서 스웨덴 당국은 SFI를 다닐 수 있는 시간적 제한을 뒀다. 무한정 SFI 지원금만 받으려고 하지 말고 수료 후 취업을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 것이다.

SFI를 수료할 정도가 되면 스웨덴어의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해진다. 스웨덴에서는 설령 스웨덴어를 못해도 영어만으로도 생활에 큰 지장은 없다. 하지만 최근 스웨덴 사람들의 이민자를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있어서 스웨덴어를 전혀 못하는 이민자와 스웨덴어를 할 줄 알거나 배우고 있는 이민자를 달리 대하는 추세다. 스톡홀름의 대표적인 SFI 중 하나인 헤르무즈(Hermods)의 교사인 리나 안데르손 씨는 “스웨덴에서 스웨덴의 복지를 함께 누리는 사람이라면 스웨덴의 말을 조금은 배우려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그들의 의무는 아니지만 함께 사는 지혜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SFI에서 스웨덴어를 배운 후 나중에 SFI의 교사가 된 사람도 있다. 이란 출신 SFI 교사인 니마 라자이 씨는 “SFI에서 스웨덴어를 배운 후 나중에 스톡홀름 대학교에서 공부했고, SFI 교사가 됐다”며 “스웨덴인이 되기 위해 스웨덴에 왔는데, 스웨덴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모순이다”고 SFI를 다녀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물론 SFI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특히 학력이 높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SFI가 교육의 질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고, 진도가 너무 느리며, 효과적인 학습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특히 학교에 따라 교사의 잦은 교체와 일관성 없는 커리큘럼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유료로 스웨덴어를 배우는 폴크스유니베르시테텟(Folksuniversitetet)에 다니기도 한다. 이곳은 한 학기 수업료가 5500크로나(한화 약 75만원) 정도로 비싼 편이지만 학습 집중도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의 SFI는 스웨덴에 완전히 정착하려는 이민자는 물론 일정 기간 스웨덴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스웨덴 사람들도 SFI는 비스웨덴인이 스웨덴 사회로 편입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인식하고 있다.

스웨덴의 영주권이나 시민권 심사에는 스웨덴어 구사가 평가되지 않는다. 스웨덴은 외국인이면서 스웨덴 시민이 되려는 사람에게조차 스웨덴어를 강요하지 않는다. 언어는 본인의 선택으로 놔두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완전히 무료로 스웨덴어를 가르쳐 주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것은 스웨덴이 비슷한 수준의 복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북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도 특별히 비교되는 부분일 것이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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