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부유한데 국민은 불행, 극심한 빈곤과 불평등이 ‘헬조선’ 만들어”
“나라는 부유한데 국민은 불행, 극심한 빈곤과 불평등이 ‘헬조선’ 만들어”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17.11.2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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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1회

우리나라 복지정책은 의료보험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를 토대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와 무상급식, 보육정책, 노후보장, 교육, 지속가능경제정책 등이 이어졌다. 하지만 정치권의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과 융합은 미미하다. 탁월한 정치인 한 사람이 나서서 개혁한다 해도 거대한 변혁을 가져오기는 어렵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자 국민소득 2만8000달러 대한민국의 소득과 복지혜택은 기득권층의 전유물이 되었다. 무너진 소득체계와 양극화로 중산층은 몰락했고, 복지는 저개발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국사회는 경제학과 복지학이 분리된 채, 보수파는 ‘경제’를 진보세력은 ‘복지’문제로 정쟁을 일삼아왔다. 신자유주의와 경제만능주의 세력이 득세해온 세월, ‘경제파이’는 커진 게 없다. GNP와 소득이 늘어날수록 부의 양극화는 심화됐고 대다수 서민들은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했다. 지난해 10월 촛불이 켜졌다. 들불처럼 번져 온 세상을 밝혔던 촛불은 70여 년 동안 쌓여온 적폐의 완전한 청산을 부르짖었다. 촛불은 준엄한 시대의 명령이었다. 대통령을 끌어내렸고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다. 한국은 복지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이 어려운 과도기에 서 있다. 촛불이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는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복지문제 재정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많다.

“북유럽 스웨덴이나 덴마크 등 국가들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이룩했다. 미국과 영국은 선별적 복지국가의 길을 갔지만, 북유럽은 경제와 복지, 성장과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유럽만큼 한국도 복지재정이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는 하지 못했다. 경제와 복지를 지나치게 이분법적 논리로 봤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치권과 사회지도층이 통합적 사고를 해야 한다. 국민 행복과 불행의 열쇠가 여기에 달려 있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의 말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인간존엄-시민연대-사회정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단체다. 이상이 공동대표를 마포 사무실에서 만났다. ‘팟 캐스트’ 방송 때문에 늦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이 맑고 순수해 보인다. “철학과 정치, 경제, 복지, 노동 등 보통 사람들의 행복과 관련된 모든 분야를 통합적으로 포괄하는 것이 ‘복지국가’”라는 이 대표에게 복지문제와 경제, 양극화, 건강보험, 의료민영화 등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점을 심도 있게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다음은 심층인터뷰 전문이다.

 

▲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11월 2일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 2007년 출범한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복지국가 전문가이자 운동가로서 많은 역할을 해왔다. 저는 4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평생을 4급 지체장애인으로 살아왔다. 그런 여건이 빈곤과 장애, 질병의 고통을 잘 이해하는 계기가 돼주기도 했다. 어려운 환경과 열악한 조건들은 인간 자존감을 낮추고 불행을 만드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며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흙수저와 흙유전자를 타고날 수밖에 없는 열악한 구조다. ‘운’ 없는 사람들은 불행하게 살아야 한다. 이런 사회는 정의가 없다. 고교시절부터 정의 없는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의과대학에 들어갔지만 졸업 후 임상의사의 길을 포기했다. 환자치료도 중요하지만 사회를 치료하는 시민사회운동가의 길을 택했다. 사회보건운동이 나의 업이 되었다. 나의 그런 의지는 김대중 정부 때의 국민건강보험 강화와 의약분업제도 등 핵심적 의료정책에서 꽃을 피웠다. 노무현 정부 때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장으로 있으면서 ‘암부터 무상의료 복지정책’을 펼쳤다. 특히 4대 중증질환 보장강화의 경우 2007년 65% 수준을 달성해 복지정책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지금은 공직을 떠난 상태지만 앞으로도 국민의료복지와 국민행복을 위해 복지선진국을 만들어 가겠다.

 

- ‘복지국가론’을 주창해왔다.

▲ 우리나라는 갈수록 양극화가 빨라지고 있다. 경제성장의 열매는 대기업과 부자들이 가져간다. 서민들은 일자리가 불안하고 소득도 줄고 있다. 절대빈곤, 상대빈곤에 처한 서민들의 민생불안은 개선될 기미가 없다. 중산층도 무너졌다. 극심한 빈곤과 불평등은 국민 불행을 조장했고 ‘헬(Hell) 조선’을 만들었다. 일자리, 보육과 교육, 주거, 의료, 노후 등 민생 5대 불안이 고착화됐다. 연애와 결혼, 출산도 3포 시대다. 시장만능-경쟁만능의 각박한 사회에서 행복지수는 OECD 34개국 중 32위다. 나라는 부유한데 국민은 불행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생의 목적을 행복이라 생각한다. 행복한 삶은 내 이익만 추구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모두가 불행한데 나만 행복할 수 없다. ‘나와 우리’는 같은 공동체다. 고등학교 때 이것을 깨달았다. 언제나 ‘우리’ 모두를 위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고 부단히 노력했다. 의과대학 시절 민주사회를 위해 학생운동에 전념했던 것과 임상의사로서 탄탄대로를 포기한 것도 모두 ‘나와 우리’를 융합하려는 노력과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 의사의 길을 포기한 것 후회하지 않는가.

▲ 임상의학 전문의사의 길을 갔다면 행복을 누렸을 것이다. 물론 의사에게 병원의 환자진료는 중요한 업무다. 진료와 치료는 의사의 천업(天業)이다. 하지만 소외된 환자가 더 중요하다. 아예 병원을 찾을 수 없는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환자의 생명이 내겐 더 중요하다. 소외된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의료기관을 찾을 수 있고,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선진보건의료 제도의 개선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더 나은 복지사회를 만드는데 내 모든 삶을 투입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들이 공익적 삶을 택하게 만들었다. 시민보건운동가이자 보건의료정책 연구자로서 한 눈 팔지 않고 오롯이 걸어왔다. 이런 노력 덕분에 1998년 전문의 최초로 DJ정부 전문위원이 되었고 역사적인 복지개혁을 위해 아낌없이 나 자신을 던졌다.

 

- 한때 보수정권에 의해 공안사범으로 몰리기도 했다.

▲ 김대중 정부 당시에 의료보험통합운동 성과에 힘입어 국민건강보험제도 창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의약분업’도 정책집행의 중심에 있었다. 어느 사회든 찬반이 있기 마련이지만, 사회적으로 의료대란 내홍을 겪기도 했다. 그 후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바뀌면서 집권여당과 의료계 우파세력이 나를 ‘의료계 5적’으로 몰았다. 내가 추진했던 의보통합과 의약분업 등이 거센 정치적 ‘후폭풍’을 맞으면서 사회주의정책으로 매도당했다. 경찰청 대공분실로 끌려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됐다. 무죄가 확정될 때까지 8년간 피 말리는 긴 재판을 감내해야 했다. 지루한 세월이 흘러 무죄로 판결났다. 지금도 변하지 않는 나의 소신은 우리가 원하는 행복한 삶은 복지국가가 구현될 때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나와 우리’라는 연대와 융합하고 소통하는 민주적인 ‘우리’다. 이런 목표를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양극화를 넘어서는 복지체제구축이 일관된 나의 신념이다.

 

- 국민건강보험은 박정희 정권 때 처음 실시됐다.

▲ 국내 의료보험법은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1963년 12월 제정돼 1964년에 실시됐다. 그러나 속빈 강정이었다. 사회보장적 차원의 정책도 아니었고, 경제사회적 여건에 맞는 국민적 요구와 전혀 달랐다.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의 속성상 사회정의구현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만든 졸작이었다. 당시 어려운 국가경제상황을 볼 때 법적강제성도 없는데다 가입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그런 상태가 13년간 지속되다가 1977년에 500인 이상 사업장과 공단 근로자를 대상으로 현대적 의료보장제가 실시됐다. 당시 500인 이상 고용사업장 19개 조합과 공단 내 486개 직장의료보험조합이 설립됐다. 그러나 예산이 없던 정부는 의보재정 지원을 하지 못했다. 정부는 골격만 세우고 의료시스템 관리만 맡았다. 궁여지책으로 ‘사용자-근로자’가 반반씩 부담했다. 일부 지식인들과 보수진영이 국민건강의료보험제도가 박정희 정권이 만든 것이라고 말하지만, 애초부터 일반 ‘서민용’이 아니었다. 혜택도 전체 엘리트족 8.8%를 위한 것일 뿐이었다.

 

- ‘선별적 복지’가 보수진영의 모토다.

▲ 박정희 정권은 안정된 고소득 직장의 중상층에게만 의료혜택을 주었다. 중화학공업 기술자를 위한 건강정책에 집중했다. 유신체제의 엘리트집단만 ‘케어(Care)’ 했을 뿐, 집권기간 내내 ‘서민복지’는 없었다. 복지재원이 생기면 모두 중화학공업에 쏟아 부었다. 한마디로 너무나 차별화된 ‘엘리트보호정책’이었다. 사회 불평등은 더 심화됐다. 국민복지에 돈이 집행되지 않았다. 중요한 점은 이 법정의료보험제도가 박정희 군사정권의 정통성 부족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산업화에 정권의 명운을 걸었고 자본의 축적을 필요로 했다. 동원 가능한 국내외 자본을 끌어들였고, 저축과 기업투자를 장려했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로환경에 내몰렸다. 박정희 정권은 산업화에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림자도 짙었다. 국민은 가난해졌고 저임 노동자 양산에 불평등은 심화됐다. 보수정치권이 이런 유산들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2회로 이어집니다.>

 

이상이 대표는…

경희대 의대-대학원 예방의학 의학박사
서울대 보건대학원 보건학 석사-예방의학 전문의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복지국가정치추진위원회 대표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사회’ 상임운영위원장
2007. 국회사무처 등록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창립
2011?2013. 동아일보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 2회 선정
2014. 경향신문 ‘국민이 뽑은 드림내각’ 복지부 장관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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