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목숨 앗아가는 악마의 이름, 현.장.실.습.
10대 목숨 앗아가는 악마의 이름, 현.장.실.습.
  • 정다은 기자
  • 승인 2017.12.07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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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잇따른 참사 현장실습 이대론 안된다

지난 11월 9일 제주시 구좌읍 음료제조업체 공장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이민호(18)군의 목과 몸통이 제품 적재기 프레스에 눌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군을 삼킨 기계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작업을 이어갔다. 이군은 사고 직후에도 몇 분간 혼자 방치됐다. 사건발생 열흘 뒤인 19일 그는 끝내 세상을 떠났다. 열여덟번째 생일을 4일 앞두고 있었다.

이군은 아침은 공장에서 제공하는 급식으로, 점심과 저녁은 매일 집에서 햇반과 라면을 챙겨와 때웠다. 밥값마저 아낄 만큼 돈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첫 월급을 탄 이후엔 100만원 짜리 적금을 들어 3개월간 꼬박 300만원을 모으기도 했다.

 

 

첫 월급 탔다며 부모님을 모시고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기름값 하시라며 틈틈이 아버지 용돈까지 챙길 만큼 효성이 깊었다.

사건 이후 이군이 일한 공장이 최소한의 안전 설비조차 갖추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군은 여러 차례 문제가 된 기계가 잦은 고장을 일으킨다고 상부에 보고했으나 해결되지 않은 것도 논란이 됐다. 또 1일 7시간 실습이 원칙인 학생에게 무려 12시간 동안 일을 시켜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군은 지난 8월에도 기계를 고치러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갈비뼈가 부러지는 산재를 당하기도 했다.

이 군의 사건이 사회적 문제로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경기도 안산의 한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고교생이 회사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달 16일 저녁 6시 10분께 안산시 반월공단의 한 플라스틱 제조공장 4층에서 특성화고 3학년 박군(18)이 스스로 뛰어내렸다. 박군은 공장 건물 앞에 있던 화물차 위로 떨어졌다. 그 사고로 다리와 머리 등을 크게 다쳐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다행히도 의식은 회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투신 직전 박군이 학교 담임교사와 전화 통화를 통해 ‘함께 일하는 선임직원에게 욕설이 섞인 지적을 받았다’며 괴로움을 호소했다는 진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업체 쪽은 “실습생에게 일을 가르쳐 주었을 뿐이며 직원들이 동생처럼 잘 대해줬다”며 부인했다.

더욱 심각한 건 이런 사고가 현장실습 고교생들에게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에만 손·발가락 절단 사고가 네 건 발생하는 등 현장실습 고교생의 산업재해가 줄을 이었던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이 군의 사건이 사회적 문제로 주목되지 않았다면 그대로 묻혀버렸을 사건들이다.

지난 달 29일 교육부의 ‘현장실습 사건·사고 현황’ 및 ‘2017 산업재해 학생 목록’에 따르면 올 한 해 모두 네 명의 고교생이 현장실습 도중 손가락 또는 발가락을 잃거나 다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달 17일 인천의 한 식품업체로 실습을 나간 박모군(18)은 고기 자르는 기계(육절기)에 걸린 고기를 빼내려다 왼손 손가락 세 마디가 잘려나갔다. 병원으로 이송돼 봉합수술을 한 뒤 현재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 2월 울산 특성화고에 다니는 3학년 김군은 전기 관련 업체에서 일하던 중 오른손 손가락 4개가 기계에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디지털콘텐츠과에 재학 중인 그는 현장 파견 당시 제품 도안 작업 등 안전한 업무에 배치됐다. 하지만 사고 하루 전부터 절단 작업을 배우기 시작한 것으로 교육부는 파악하고 있다. 산업체에 파견된 학생이 약속된 업무가 아닌 위험 업무에 배치된 것이다.

이런 사고들이 밝혀지는 가운데, 지난 1월 23일 전북 전주시 아중저수지에서 10대 홍모양의 사체가 발견된 사건도 다시 떠오르고 있다. 홍양은 전주의 한 이동통신업체 콜센터 직원으로 근무하며 평소 강도 높은 업무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콜수를 다 못 채웠다”는 문자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상사들의 업무 압박에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했다. 그는 “(해지 고객들을)많이 방어하지 못하면 위의 상사들한테 많은 압박을 받는가 보더라”며 “(딸이 집에 와서)소비자 입장에서는(욕하고 심한소리 하고) 그럴 수가 있는데 상사들이 위에서 압박 주는 건 정말 못 참겠다고, 스트레스가 너무 쌓인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 회사에서 일하다 숨진 직원은 홍양 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4년 10월 22일 이 회사 ‘SAVE팀에’ 근무하던 A양(30)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A양은 죽기 전 ‘부당한 노동행위와 수당 미지급이 어마어마하다’는 유서를 남겼다.

스무살도 안 된 홍양을 A양 같은 베테랑들도 힘들어하는 곳에 투입한 것이다. 힘든 부서는 서로 안 가려고 하다 보니 현장실습생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현장실습생들의 안타까운 사고소식이 잇따르면서 지난해 구의역에서 일어난 현장실습생 사건에도 다시 관심이 모이고 있다. 지난해 5월 서울메트로 2호선 구의역에서 김모(19) 군이 사망했다.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역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을 보지 못하고 사고를 당한 것이다. 이 사고는 서울메트로 하청업체 은성PSD 소속 현장실습생이던 김군이 ‘2인1조 작업’ 규정과는 다르게 혼자 바쁘게 일하다 변을 당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었다. 숨진 김군의 유품은 가방에서 나온 컵라면과 숟가락 뿐. 안전장치 하나 없이 끼니를 굶어가며 일하던 김군은 끝내 ‘정규직’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현장실습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지난 한 해 동안 6만 여 명의 고교생이 현장실습을 나갔다. 현행법은 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고 1일 7~8시간, 주 35~40시간 외에 야간, 휴일 실습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의 실태조사 결과, 238개 기업이 실습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95개 기업이 법정시간을 초과해 실습을 시켰으며 27개 기업이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법정시간 초과실습으로 처벌을 받거나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과태료를 낸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실습생에 대한 임금체불, 안전교육 미실시에 대한 벌칙 규정도 없었다.

현장실습 환경도 나아지지 않았다. 업체들은 실습생을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저임금의 값싼 노동력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다. 노동력을 착취하는 도구쯤으로 여기는 행태와 사고가 여전하다. 그만큼 장시간에 걸쳐 위험한 노동환경에 노출되기 쉽다. 이번 이군의 사고 역시 현장실습생에게 원칙적으로 지도 능력을 갖춘 담당자를 배치해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사고가 나도 도움의 손길을 기대할 수 없었다.

꽃을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10대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기업체에서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다. 현장실습이 아니라 죽음실습을 배우러 가는 10대들. 그들의 안전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첫 사회생활이라며 들뜬 마음을 품고 뛰어든 그들에게 돌아온 것이라곤 처참한 죽음뿐이었다. 부당한 노동과 위험한 작업환경을 부담시키는 현장실습제도의 폐지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자 이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가 현장실습제도 폐지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지난 1일 정부는 김상곤 부총리 및 교육부 장관 주재로 열린 사회관계장관 회의에서 ‘고교 현장실습생 사망사고 관련 향후 대응방안을’을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교육부는 조기 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을 2018년부터 전면 폐지한다. 현장실습생의 안전을 도모하고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직업훈련과 역량강화 목적인 ‘현장실습제도’가 학생들의 노동 착취로 변질되자 아예 폐지시키기로 한 것이다.

단, 교육프로그램에 따라 실습 지도와 안전 관리가 확보된 ‘학습 중심’의 경우에만 이를 허용하도록 했다.

현장실습 도중 학생 인권 침해나 안전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즉각 학생들을 복교 조치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또 업체에서 ‘현장실습 표준협약서’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해야 한다. 학생들이 실습현장에서의 고충을 털어놓을 수 있는 ‘현장실습 상담센터’도 운영할 예정이다. 대책은 마련됐지만 실효성은 미지수다. 대책이 현실이 되었을때 문제는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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