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칠순 할머니와 일본으로 떠난 여행길-2

아 차거.
유감스럽게도 빗방울이 떨어졌다. 일본에 있던 비가 한국으로 건너오던 중이다. 할머니 손을 잡고 공항을 빠져나오느라 새벽부터 정신이 없던 나는 빗방울을 맞고 그제야 깨어나는 기분이다. 환경오염으로 앓던 곳.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먹구름을 걷어낸 곳. 그 파란 하늘을 보고 싶었는데 비라니. 그러나 할머니는 개의치 않다는 듯 했다.
사실 지난밤까지도 나는 몹시 뒤척였다. 할머니는 부담을 주기가 싫었는지 가지 않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고, 나는 항공권의 예약취소 수수료나 호텔의 ‘노-쇼 비용’ 등을 설명하는 대신 조용히 챙겨야 할 일들을 하거나, 더욱 신난 척을 하여 관광지 얘기를 꺼내들었다.
에이, 애미랑 같이 가야지…. 
걱정. 미안함. 혹은 전혀 다른 그 복잡한 심경이야 이제 막 이십 대를 지나는 핏덩어리가 헤아릴 수 없겠거니와 이해하기엔 너무 촉박한 시간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할머니는 잊지 않고 여권을 수령해오시고 캐리어에 하나둘 당신의 짐을 늘리셨다. 애완묘 송이를 몇 차례 쓰다듬으며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이른 아침 비행이라 잠깐 선잠을 자고 부랴부랴 차를 타고 왔는데도 면세점 하나 구경할 시간이 없었다. 운 좋게 탑승게이트는 가까웠지만 J항공 좌석은 좁아 역시 가까운 나라를 고르길 잘했다, 싶었다. 앞뒤로 회사에서 단체로 나온 사람들이 왁자지껄 신이 났고, 덩달아 할머니와 나도 들떴다. 그때 비행기가 구름 위로 비행기가 떠올랐다.
와- 구름 위다. 구름 위. 혜리야, 저것 좀 보아라.
새벽에도 인파로 정신없는 공항을 숨가삐 빠져나오느라 그런 건지, 솜사탕 같은 구름의 형상이 그녀를 어린 마음으로 데려간 건지 발그스름하게 상기된 할머니의 뺨이 가까웠다. 하늘 보랴, 나를 보랴 입국신고서와 세관신고를 쓰는 동안 할머니도 바빠 보였다.
할머니 첫 비행기였나?
아니~ 제주도야 몇 번 다녀온 적 있지. 그건 뭐냐. 휘리릭 휘리릭 하네?
이거, 일본 들어갈 때 내는 종이. 안 물어볼 거 같긴 한데… 혹시 입국심사대에서 ‘왜 왔냐’ 묻는 거 같으면, 따라하세요! 트래블!
트래블? 트래블!

 

다행히 우산을 가져왔다. 비를 피해 호텔로 직행했다. 혼자 오거나 또래와 왔다면 두세 번은 고민해봤을 비싸고 평 좋은 호텔. 되도록 젊은 손녀랑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감각적이면서 활기차고, ‘목욕하러 일본 왔다’는 타이틀에 맞게 객실과 별도로 대중탕이 마련된, 그런 곳이었다. 간단히 비를 털어내고 캐리어를 맡기고 나서려다 1층 카페테리아가 너무 예뻐 두 여인은 엉덩이를 붙인다.
흥겨운 재즈가 카페테리아 안을 가득 메운다. 할머니는 다른 사람이 지나다니는 것을 볼 수 있는 창가 가까이 자리를 잡았다. 재즈의 흥이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을 알리고, 호텔 방에서 나오는 또 다른 외국인과 거리 속 걸음을 재촉하는 일본 사람들, 어설픈 일본어 주문에도 즐겁게 응대하는 직원들이 그녀의 눈에 담기고 특별한 배경이 된다. 나도 합세하여 카메라를 꺼내들고 마음껏 여행 기분을 낸다. 오늘 주인공은 할머니다. 오늘의 모델이자 가장 특별한 사진으로 장식될 주인공. 이제껏 늘 나에게 먼저 향했던 렌즈와 시선을 처음, 할머니에게 향해본다.
일본은 차가 다 미니네. 저 차들 좀 찍어라, 얘야. 너무 조그매, 귀여워. 검소하네, 한국 사람들 이런 건 배워야지. 여기는 사람들이 아저씨고 여자고 할 거 없이 친절하네. 매우 공손한 거 같아. 이 늙은이한테도 막 대하는 사람이 없네.
하고는 씽긋, 일본인의 서비스 미소를 따라해 본다. 할머니는 의외로 일본에 대한 반감이 거의 없다. 1947년이면 이제 막 광복을 하고 항일의 여파가 남아 있던 때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교과서 속 숫자와는 다른 삶의 모습들까지 가늠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암, 삶이 숫자로 분절될 수야 없지. 더구나 기억이 닿는 유년기 혹은 젊은 날에는 반일제보다 남북 전쟁과 민주화운동으로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겨누던 때일 것이다. 그래서 늘 할머니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내게 항상 조심하라고 당부한 적이 있었다. 나는 가장 안전하고 진보했다고 믿는 땅을 밟고 있으나, 실은 가장 위태로움 빗발치고 역동적인 사회를 온몸으로 받고 있기에. 
빗줄기가 약해질 때 즈음 거리로 나섰다. 

너는 한 번 본 길을 다 외우는 거냐? 어떻게 그렇게 쉽게 척척 길을 나서는 거냐, 허허.
할머니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나는 이동하여 걸을 때만큼은 휴대폰 지도에 집중했기에 할머니 목소리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여기서 병원을 돌아야 하는데….
병원? 이거 병원이네~ 여기는 임대 중인 아파트고. 저건, 무슨 마을 회관 같은 거네.
한자를 척척 읽어낸다. 새롭게 발견한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직관적 판단을 믿거나 철저히 GPS에 의존하여 길을 찾아다니던 나와는 달리 할머니는 지리로서의 풍경 자체를 읽어내려 했다. 이정표를 따라가거나 건물 하나하나 의미를 읊거나. 그게 신기해서 박수나 탄성을 내보이니 할머니는 어깨를 으쓱 세우고 더욱 목소리를 높인다. 활기찬 기운이 소리를 타고 빗방울을 타고 거리로 흐른다.
‘은하철도 999’ 작가의 본토지로 알려진 기타큐슈 중심가에는 이를 모티브로 한 모노레일이 있다. 비가 오는 날씨는 모노레일을 타고 시내를 구경하기에 적격이었다. 모노레일을 타고도 할머니는 보고 말하는 것을 쉬지 않았다. 엄마 말로는 할머니도 대단히 성실한 여행꾼이라, 어딜 갔다하면 몸을 아끼지 않고 구경에 몰두한다고. 
일본이나 한국이나 애들은 참 예쁘네, 예뻐.
물끄러미 멈춘 시선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에게 향해있다. 무릎 밑으로 내려온 교복 치마가 단정해 보인다. 꺄르륵 웃던 아이들이 시선을 느꼈는지 우리 쪽을 응시하여 저희들끼리 궁금증을 나눈다. 열차 안에는 헤드폰을 끼거나 영어사전을 들고 할 일에만 집중하는 학생도 더러 있다. 조용한 동네다. 이따금씩 울창한 산맥이 보이고, 강줄기가 나있다. 모노레일을 따라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금세 무광택의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소곤소곤 나누는 담화가 들려온다. “평화롭네.” 지극한 고요와 평온 속에 잠시 눈을 붙인다.

할머니는 전통시장에 크게 흥미를 보이지 않으셨다. “사람 사는 데야 다 똑같네.” “별로 싸지도 않아, 어유, 과일 하나에! 비싸, 비싸.” 오히려 재래시장이 아닌 쇼핑 단지를 좋아하셨다. 젊은 분위기와 새로움이 변화무쌍하게 터져나가는 곳. 탄가 시장을 한 바퀴 돌아 리버워크로, 고쿠라 성으로 다녀왔다. 그때 즐거움은 고조에 달하여 서로가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다 몇 백 장은 훌쩍 넘어버렸다. 처음엔 카메라에 서툴던 할머니도 곧잘 앵글을 잡아가며, 나중에는 확연히 내가 봐도 ‘나보다 잘 찍었네’ 싶은 사진들도 더러 있었다.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물이 얕게 머무른 곳을 참방거리며 좋아하고, 유리창에 쉬어가는 빗방울 소리에 감상적이던. 일본에 온 뒤로는 줄곧 ‘괜찮다, 좋다’는 말씀만 하셨던 할머니가 아쉬움을 토로한 건 그 때 뿐이었다. 내 사진을 찍을 때. 단둘이 해외에 나온 때의 손녀를 더 예쁘게 남기고 싶어서.
중간 중간 최대한 쉬어가며 느린 여행을 지키려했지만 귀가 무렵의 할머니는 많이 지쳐계셨다. 힘든 티를 내기 싫으셨던 건지, 자주 걸음을 멈추어 건물이나 가게의 상호를 읊었다.
“여기는 뭐하는 데지? 얘야, 여기 좀 봐. 여기 터널 같은 게 주차장인가 보다.” 그럴수록 나도 걱정이 되어 호텔로 모시려 재촉했다.
할미는 이제 안 아픈 데가 없어. …너는 네가 가진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모른다.
영차- 하며 무릎을 일으킨다. 나는 내가 가진 것, 내가 가진 것을 주신 할머니의 등을 바라보며 천천히 그 길을 따라간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