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미투 운동’을 바라보며/ 류승연

미 투(Me Too)운동이 문화·예술계에서 처음 불거질 때만 해도 한 때의 지나가는 바람이려니 했다. “나도 당했다”는 몇몇 개인의 용기 있는 선언이 가십거리로 오르내리다 어느 날이면 또 다른 이슈에 묻혀 사라지겠거니 한 것이다.

그러던 미투 운동의 성격이 변했다. “나도 당했다”는 외침이 정치권으로 넘어가 강력한 차기 대선주자의 멱살을 흔드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한 때의 가십거리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회운동이다. 사회운동의 성격으로 가고 있다. 무언가 변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꿈틀대고 있다.

 

 

이 변화를 피부로 느낀 건 남편을 통해서다. 회사 전체회식을 다녀온 남편이 “무서워서 여자 동료 옆에는 아예 앉지도 않았다”고 말을 한다. 권력을 가진 누군가가 아니다. 평범한 회사원이 평범한 옆 자리 여자 동료를 대함에 있어 행동에 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일상에서의 모습에 변화가 온 것이다.

아하, 그렇구나. 이것이 개인의 고백일 때는 지나가는 이슈가 되고 만다. 하지만 사회운동 차원으로 확산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것은 특정한 누군가가 당한 특별한 일이 아니라, 너도 나도 당했고 누구라도 언제든 당할 수 있는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나도 “Me To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들이 생겼다. 권력적 구조에 의한 개인의 문제일 때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남의 일’이었다가, 사회운동 차원으로 확산이 되면서 나 자신의 문제로 넘어 오게 된 것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학교를 가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당시 16살이던 나는 30대 초반의 회사원에게 매일 성추행을 당했다.

처음엔 뭐가 뭔지도 몰랐다. 그저 아침마다 학교에 늦지 않기 위해 만원버스에 올랐고, 사람들 틈에 끼어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며 학교까지 가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상한 느낌이 든다. 어떤 아저씨가 팔꿈치로 가슴을 만지는 느낌이 든다.

만원버스라 실수로 몸이 닿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꼭 붙어있는 옆의 학생을 힘으로 밀어내며 몸을 옆으로 뺐다. 내가 비껴난 만큼 아저씨의 팔도 더 밀고 들어온다. 옆으로 더 간다. 팔이 더 밀고 들어온다. 그 때 알았다. 의도적으로 성추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여러 사람을 노리지 않았다. 나라는 타깃을 정해놓고 목표로 삼았다. 어릴 때부터 발육이 남달랐던 터라 그랬을 것이다. 건드리기 쉬운 고등학생이면서도 이미 풍성한 여자의 몸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그의 횡포는 심해져갔다. 버스가 커브를 돌아 모든 사람들의 몸이 한 쪽으로 기울어질 때면 그는 대놓고 자신의 팔과 어깨를 내 가슴에 대고 눌렀다. 나는 손잡이를 잡지 않은 다른 쪽 팔로 그를 밀어내려 하지만 눌러오는 힘을 당할 수 없다.

그를 의식해 가방을 앞으로 매고 버스를 탄 날이면 이번에는 그가 내 뒤에 섰다. 내 엉덩이에 닿은 물체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던 시절이다. 그저 무섭고 기분 나쁜 느낌. 도망칠 수도 없고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다.

부모에게도 말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요즘이라면 부모가 직접 어릴 때부터 성교육을 시키기 때문에 부모 자식 간 성에 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지만 그 시절 90년대엔 그러지 않았다. 부모님과 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아주 창피하고 금기시되는 일 같았다.

나는 아침마다 미친 변태가 나를 괴롭힌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혼자서 끙끙대다 방법을 택한 것이 지각을 하는 것이었다. 버스정류장 맞은 편에는 뉴코아가 있었다. 나는 집에서 일찍 나와 뉴코아 후문에 숨어 있곤 했다. 거기에서 버스정류장을 노려보며 변태 아저씨가 버스를 타고 먼저 떠나길 기다렸다. 그는 양복을 입고 있었다. 직장인이었다. 아침마다 여고생 가슴 만지겠다고 회사에 지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그가 떠난 걸 확인하고 나면 그 때야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다음 차를 타곤 했다. 그래서 지각이 잦았고 선생님에게 많이 혼났지만 누구에게도 이런 사정을 말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었다. 이젠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툭하면 만나는 게 변태들이다. 변태들은 늘 같은 행동을 했다. 주로 팔과 어깨를 이용해 가슴을 만지던가 뒤에 서서 엉덩이에 몸을 밀착시키곤 했다.

한 번은 큰일이 날 뻔한 적도 있었다. 통금시간이 12시라 늘 마지막까지 아슬아슬하게 놀다가 11시50분이 되면 집 근처 지하철역에 도착하곤 했는데 그 날도 지하철에서 나와 집으로 걸어가는데 아파트 단지 안에 서 있던 어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집까지 남은 거리는 200여 미터. 그는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가 따라오는 게 느껴지면서 내 발걸음은 더욱 빨라진다. 그 날 따라 항상 제자리에 있던 경비아저씨도 안 보인다. 아파트 1층 출입구로 들어섰다. 우리 집은 3층. 순간적으로 판단을 해야 했다.

평소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까지 올라가는데 오늘은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나를 따라오던 남자와 단 둘이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1층에 서 있는 엘리베이터를 무시하고 계단으로 올라간다.

내가 계단을 오르면서 그의 발걸음도 빨라지는 게 느껴진다. 나는 더 조급해지고 걸음이 더 빨라진다. 내가 빨라질수록 그도 속도를 낸다. 1층을 오르고 2층이다. 이제 한 층만 더 가면 우리 집이다 싶을 때 뒤따라오던 그가 한 손으로는 치마를 들추고 다른 한 손으로는 팬티를 잡는 게 느껴진다.

그가 내 속옷을 손으로 잡는 순간 바로 위층에서 현관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난다. 그러더니 “승연이니?”라고 묻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순간 그는 손을 내린다. 나는 “네!”라고 대답하며 잽싸게 나머지 계단을 오른다. 거실에 있던 엄마는 복도에서 울리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 현관문을 연 것이다. 내 뒤에 있던 남자는 당황한 나머지 “어? 여기가 몇 층이지?”라며 혼잣말을 하는 듯하더니 4층으로 올라가 버린다.

엄마는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고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 때의 상황을 얘기했어도 될 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때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와는 성에 관한 얘기를 나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할 수 있는 미 투(Me Too)의 역사다. 젊은 시절 숱하게 마주친 온갖 변태들. 그들은 같은 직장 내에서 권력 관계에 의해 성추행을 한 것이 아니었다. 스쳐 지나는 일상에서 스쳐 지나는 많은 여성들에게 무차별적인 성 권력을 휘둘렀다.

그 때의 권력은 지위에 의한 권력이 아니다. 원초적이고 야만적인 완력에 의한 권력이다. 자신보다 완력이 약한 여성을 대상으로 놓고 가해를 한 것이다.

요즘의 뉴스를 보면서 그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 마주친 온갖 변태들. 지금은 누군가의 남편과 누군가의 아빠가 되어 있을 그들은 요즘의 뉴스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그들 역시 아내와 나란히 앉아 혀를 끌끌 차며 가해자를 욕하고 있을까?

미 투(Me Too) 운동은 특정한 개인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알고 보니 그것은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일이었고, 우리 사회가 가진 고질적인 병폐를 드러낸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운동의 성격으로 변해가면서 대한민국도 뭔가 변화가 되려 하고 있다. 평범한 회사원이 평범한 가장이 행동을 조심하게 되고, 아이들 키우며 사는 평범한 아줌마가 미 투(Me Too)라고 외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일부 남성들은 말한다. 이거 어디 불편해서 살겠냐고. 이젠 말도 편하게 못하는 분위기가 되었다고. 이것이야말로 역차별이자 여성들에 의해 역으로 행해지는 가해가 아니냐고.

그래.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불편해도 된다. 원래는 불편한 게 정상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오질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현실이 불편한 것이다. 자신들이 편하게 야만적인 완력을 휘두르고 있을 동안 수많은 여고생들은, 아가씨들은, 아줌마들은 불편함을, 불쾌함을, 두려움을 감수하며 살았다. 그러니 이제부턴 당신들이 불편해도 된다. 그래야 당신의 딸이, 당신의 아내가 안전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미 투(Me Too) 운동이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내 딸이 지하철과 버스에서 성추행 당할 위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초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특별한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사회운동으로 전 세계에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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