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네 번째 구속 ‘후폭풍’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판사는 지난 22일 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번 구속으로 노태우 전두환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네 번째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는 부끄러운 역사는 계속됐다. 지난해 3월 31일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된지 1년여 만에 참담한 기록을 남기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박 전 대통령처럼 지지그룹의 반대 목소리도 크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엄정한 법 집행을 요구했다. 이 대통령 구속을 둘러싸고 계속되는 의혹과 정치권의 움직임을 살펴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속했던 친 노무현 그룹은 한 때 ‘폐족’으로 불릴 만큼 몰락했지만 화려하게 부활했다.

하지만 친박근혜 진영과 친이명박 그룹은 이미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힘을 잃었다. 구속 과정에서 드러난 파장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이계는 정치권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만큼 존재감이 없다.

이 전 대통령에게 치명타틀 날린 사람들이 그의 최측근들이었다는 사실도 한 이유로 불린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도 사면초가로 몰리는 중요한 이유”라며 “결국 가까운 사람에게도 마음을 얻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2일 밤 “범죄의 많은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고, 피의자의 지위, 범죄의 중대성 및 이 사건 수사과정에 나타난 정황에 비추어 볼 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으므로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장 동부구치소에 수감됐다.

구속영장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국고손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특경법 횡령·조세포탈,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 14개 안팎의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혐의의 핵심은 110억 원대에 달하는 뇌물수수와 350억 원대 횡령이다.

이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다스의 실소유주가 아니라가 목소리를 높여 부인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밝혀진 사실들은 의혹에 신빙성을 높여줬다.

삼성 측의 다스 소송비 60억 원 대납 혐의 등을 소명하는 데 필요한 전제조건은 이 전 대통령이 다스 실소유주라는 것이다. 때문에 법원도 일차적으로 이 전 대통령이 다스 실소유주라는 전제 조건에 동의한 것으로 분석된다.
 

힘 잃은 ‘강력 부인’

이 전 대통령에게 직격탄이 된 측근들의 진술도 구속영장 발부로 일정 정도 신뢰성을 확보하게 됐다.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의 22억 5000만 원 수수 혐의 등에 연루된 측근들의 진술이 ‘진실 규명’ 차원에서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검찰 조사에서 이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줬다는 뇌물공여자나 중간 전달자들은 대부분 혐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모르는 일이다”며 혐의를 줄곧 부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준 사람과 본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최장 20일간 이 전 대통령의 신병을 확보한 상태에서 기소를 앞두고 보강 수사를 벌일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 장기화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고려할 때 검찰이 기소를 서두를 수도 있지만,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기소는 4월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필 입장문을 공개했다. 그는 여기서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심정이고 자책감을 느낀다”며 “내가 구속됨으로써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가족의 고통이 좀 덜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심정을 전했다.

이 전 대통령으로선 자신을 보필했던 인사들의 증언이 뼈아프다. 김백준 전 청와대 기획관,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조카인 이동형 다스 부사장, 김주성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권승호 전 다스 전무, '금고지기'로 알려진 이영배 금강 대표,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이 모두 이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

맏사위 이상주 삼성전자 전무도 기업으로부터 5억 원 가량을 전달받아 이 전 대통령 측에 넘겼다고 인정했다. 큰형 이상은 다스 회장은 2008년 특검 때와는 달리 다스 운영에 이 전 대통령의 개입을 인정했고 논란의 도곡동 땅도 본인 소유가 아니라는 취지로 조사에 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대통령의 부인이 ‘대답없는 메아리’로 끝난 이유다.

이 전 대통령의 구속에 청와대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라며 말을 아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비롯 대부분의 야당들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명확한 진실규명이 필요하다는데 목소리를 같이 했다.

자유한국당만이 “의도적으로 피의사실을 유포해 여론을 장악한 후,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구속시켰다”며 “예견된 수순이었지만 무척 잔인하다”고 반발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눈물이 자꾸 흐른다. 지금 이 순간 결코 잊지 않겠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 전 대통령의 구속은 지방선거를 준비중인 보수 정치권 전반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남길 전망이다. 또 한 번의 부끄러운 역사가 한국 정치 지형도를 어떻게 바꿀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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