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류승연의 아주머니

나는 초등 교육에 불만이 많은 초등학생 학부모다. 원래 1학년 때부터 불만이 있었지만 3학년이 되고 나니 이건 진짜 아니다 싶다. 대체 교육부는 아이들이 미래에 어떤 성인으로 성장하길 바라는가! 대놓고 불만 좀 얘기해야겠다.

아이들이 3학년이 되었다. 3월은 원래 바쁘고 정신없는 달이다. 학교에 내야 할 서류도 많고 학부모총회와 담임 상담, 새로운 반 엄마들과의 티타임 등 학교 일정도 많다.

엄마만 바쁘면 다행이다. 아이들도 정신이 없다. 학년이 바뀌면서 6교시를 하는 날이 생겨났고, 그에 따라 이후의 스케줄도 조정을 해야 했다. 게다가 ‘영어’라는 새로운 과목을 배우게 되었다. 이제 딸과 나는 머리를 맞대고 스케줄 조정을 하느라 골치가 아프다.

 

 

딸 학교의 학부모총회 날이다. 학부모 참관수업 이후에 곧바로 이어진 총회기에 무리 없이 참여를 할 수 있었다. 교장 선생님 말씀이 TV 모니터를 통해 흘러나온다. 교장선생님 말씀은 30년이 지나도 똑같은 것 같다. 어쩜 그렇게 듣는 이가 딴 생각하게 만드는 재주들을 지니셨는지…. 어쨌든 그렇게 1시간처럼 느껴지는 30분이 지난 뒤 담임선생님은 TV를 끈다.

이제부턴 온전히 담임선생님과 부모들의 시간이다. 담임선생님은 처음부터 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3학년이 되어 세 자리 수 더하기 빼기를 하고 있는데 한 자리 수 받아 올림, 받아 내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아이들은 2학년 때의 두 자리 수 더하기 빼기도 못하고, 3학년 때의 세 자리 수는 더더욱 못한다고 한다.

이대로 가면 4학년, 5학년은 말할 것 없고 이런 과정을 거쳐 사실상의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가 나오게 된다는 취지의 말을 한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뒤를 이어 나온 말이다.

“대학은 수학으로 가는 겁니다.”

이후로도 몇 번을 이어진 그 말. 대학은 수학으로 가는 것이라는 말.

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의 수학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앞으로 매일 학습지를 보내겠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들이 초등 3학년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학습지의 정답은 엄마들만 따로 보는 SNS를 통해서 공지하겠다고 한다.

어디 그 뿐이랴. 사회나 과학 같은 과목은 사실 문제집을 ‘열심히’ 안 풀어도 된단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수학을 공부하고, 독서를 시키라는 충고도 이어진다. 독서를 하는 이유 역시 수학을 잘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수학문제도 독해력이 있어야만 풀 수 있기 때문에. 독해력은 독서를 통해서만 향상될 수 있기 때문에.

사회나 과학 문제집을 푼다고? 생각도 못해 본 일이다. 왜 초등학교 3학년이 벌써부터 사회나 과학 문제집까지 풀어야 하는가! 집에 와서 읽고 싶은 책 읽고, 보고 싶은 TV프로그램 볼 시간도 모자란 아이들이 말이다.

수학도 그렇다. 초등학교 수학의 어려움에 대해선 누누이 말해왔다. 논리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요즘엔 우리 때처럼 그냥 두 자리 수 더하기 빼기, 세 자리 수 더하기 빼기만 가르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두 자리 수 더하기 빼기를 요상한 방법의 다양한 식으로 풀어내는 법을 가르친다. 우리 때는 배워보지 못한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딸이 모르겠다며 수학 익힘책을 가지고 오면 일단 나부터 공부를 해야 한다.

왜 이 식이 이렇게 바뀌는지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을 한다. 논리적 사고력이라면 평균 이상은 된다고 자부했던 나지만 초등학교 2학년 두 자리 수 문제 하나를 못 풀어서 쩔쩔매고 있다.

나는 화가 난다. 내가 못 풀어서 화가 난다. 논리적 사고력을 지닌 40대 어른인 나도 쩔쩔매는 수학 문제를 9살짜리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으니 화가 난다.

논리적 사고력은 꼭 그렇게 수학식을 복잡하게 꼬아 풀지 않아도 얼마든지 길러질 수 있다. 독서도 좋고, 다함께 머리를 맞대고 하나의 사건이나 이야기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방법도 좋다. 아이들이 보다 더 즐거운 방식으로 논리적 사고를 기를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텐데 왜 꼭 ‘수학은 논리’라는 공식에만 맞추어서 복잡하게 꼬아 놓은 수학문제로 논리적 사고력을 기르려 한단 말인가!

그러다 보니 이렇게 어른도 어려워서 쩔쩔매는 문제를 아이들이 풀고 있고, 아이들을 집에서 가르칠 여건이 안 되는 부모들은 수학 학원으로, 방과후 교실로, 공부방으로 아이들을 보낸다.

그렇게 해서 이런 말까지 나오게 되는 것이다. 대학은 수학으로 가는 것이라고. 수학을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수학에 모든 걸 쏟아 부으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자. 여기서 질문 하나가 있다. 지금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는데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이상의 수학을 사용하는 사람 있으면 손 한 번 들어보시라. 일상생활에서 근의 공식을 사용하고 루트를 사용하는 사람 있으면 “저요~!”하고 손 한 번 들어보란 말이다.

우리나라 교육에서 마음에 안 드는 게 바로 이 부분이다. 수학 수준이 너무 높다.

왜 다른 나라에서는 대학생이 되어 배우는 수준의 수학을 우리나라는 중고등학생 때 가르치는 것이며, 실용수학이 아닌 말을 복잡하게 꼬아 놓은 수학문제를 ‘논리력 수학’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감싸 어린 초등학생들이 수학의 노예가 되게 한단 말인가!

왜 초등학교 3학년이 “대학은 수학으로 간다”는 걸 인지해야 하고, 이를 위해 수학에 올인해야 한단 말인가! 초등학교 3학년의 수학은 더하기 빼기 잘하고 가게에서 거스름 돈 계산만 잘하는 수준이어도 된단 말이다.

차라리 수학에만 그렇게 매달리라고 하면 또 하겠다. 그래. 수학만이 전부라면 그렇게 하겠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수학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3학년부터 영어가 시작된다.

영어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도 배웠다. 그런데 알파벳과 문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노래를 배우고, 문장을 통으로 외워서 놀이를 하는 식으로 배웠다. 부담도 없고 좋다. 대신 그렇게 배운 영어는 계속 사용하지 않으면 금방 까먹는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자 유치원까진 제법 뭐라고 쏼라쏼라 하는 것 같던 딸은 그 때까지 배웠던 모든 영어를 다 잊어버렸다.

남들은 1학년부터 영어 학원도 다니고 방과후 수업도 다니고 하는데 나는 ‘공부’ 학원은 최대한 늦게 보내자는 생각에 예체능 학원만 보냈다. 방과후 수업을 들어도 영어나 수학이 아닌 방송 댄스나 아나운서 스피치 등을 신청했다.

하지만 이젠 수업 시간에 영어를 배운다. 나는 영어만큼은 학원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한다. 발음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영어는 얼마든지 부모가 가르칠 수 있지만 나는 내가 가르치지 않기로 한다.

요즘 아이들은 마치 원어민 같은 혀 꼬부라진 발음을 어릴 때부터 익힌다. 우리 때와는 또 달라진 모습이다. 그런데 콩쿨리쉬의 정석인 내가 영어를 가르치게 되면 딸의 혀 꼬부러진 발음은 엄마표 콩쿨리쉬 발음으로 변질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발음을 위해 영어는 학원을 택하기로 한다.

기존에 다니던 피아노와 태권도 학원에 영어 학원 하나를 추가했더니 딸의 스케줄이 꼬인다. 하루에 학원 두 개까지는 소화가 가능한데 3개는 무리다. 엄마가 직장에 다니지 않는 한 오후 5시에는 집에 와서 저녁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난 이제 고작 열 살 된 딸이 밤까지 학원 뺑뺑이 도는 걸 원치 않는다.

그러다 보니 피아노와 태권도 중 하나를 그만둬야 할 처지에 놓였다. 피아노는 정서적 안정감을 위해서, 태권도는 매일의 운동량을 충족시키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보내고 있었는데 ‘공부’ 때문에 두 개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니 속상하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지금 다니고 있는 세 개의 학원 중 하나를 포기한다고 치자. 그래도 끝이 아니다. 5시에 집에 오면 씻고 밥 먹고 나서 숙제를 해야 한다. 일기도 쓰고 독서록도 써야 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내 준 수학 학습지도 풀어야 한다.

밤 9시가 넘으면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해야 하는데 집에 있는 4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이제 고작 열 살 짜리 아이가 바쁜 스케줄에 치인다. 집에서 편하게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시간도 없다.

TV도 마찬가지. TV는 안 볼수록 좋은 것이지만 매일의 스트레스를 풀고 바쁘게 움직였던 심신을 편하게 쉬게 해주는 차원에서라도 한 두 프로그램쯤은 보게 해주고 싶은데 이젠 그럴만한 시간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초등학교 3학년의 일상이다. 왜 열 살 짜리 아이가 이런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학교 교육은 이런 식으로 흘러가게 해 놓고선 사교육을 근절하자고 말은 잘한다.

그 뿐이랴. 국가는 이 아이들에게 4차 산업혁명의 일꾼이 되길 바랄 것이다. 너희들이 국가의 미래라며 창의적인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랄 것이다.

학원 뺑뺑이에 치여 사는 아이들이, 수학 문제집에 머리를 파묻고 있던 아이들이 창의적인 어른으로 자란다고? 퍽이나 그러겠다.

아이들이 숨 쉴 틈 좀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수학에 올인하는 초등학생이 아니라 읽고 싶은 책 마음껏 읽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이야기하고, 즐겁게 놀 수 있는 방향으로 학교의 교육방침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제발 교육부가 진짜 중요한 게 뭔지 깨닫고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아주머니'는 아직은 주인공이 아니지만 머지않아 니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얘기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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